아이에게 내 약점을 투사하다
나의 육아우울증 극복기 16
100일 즈음부터 슬슬 시작됐던 아기의 낯가림은 돌이 가까워지니 '절정'에 달했다. 낯선 사람을 보면 아예 인상부터 찌푸리고, 혹여 손이라도 대면 소스라치게 울어댔다. 가장 곤란했던 건 돌 기념사진을 찍을 때였다. 웬만한 아이들도 엄마아빠와 함께 찍는 가족사진부터는 무난하게 촬영이 된다는데, 우리 아기는 엄마 아빠 품에 안겨서도 스튜디오 직원들과 눈만 마주치면 통곡을 하는 탓에 돌이 지나서까지 촬영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코로나 때문에 아이들이 외출을 못 해서 낯가림이 심해요", "보통 돌 사진은 길게는 두 돌까지 찍을 각오도 하셔야 해요", "서너번 넘게 재촬영 하는 아이들도 은근히 많아요"라는 말들을 들었지만 사실 그리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미 울고있는 내 아이에게 내 어릴적 수줍고 내성적이던 모습을 겹쳐 보고 있었다. 그것은 깊은고민이고 큰 두려움이었다.
스무 살이 다 되도록 내 가장 큰 걱정거리는 입시도, 적성 찾기도 아닌 바로 성격개조였다. 나는 첫 '사회 생활'을 시작한 유치원 시기부터 또래와 어울리는 걸 못 했다. 당시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심리상담 등도 그리 활성화되지 않았을뿐더러 자녀교육에 크게 관심이 없었던 우리 부모님은 그저 '크면 나아지겠지'라는 말로 모든 문제를 그냥 방치하기만 했다. 점점 학년이 올라가면서 기센 아이들은 나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고 중학교에 올라가서는 '왕따'로 찍혀 고통스러운 등교를 해야 했다. 용기를 내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니가 못나서 왕따 당하는 걸 나보고 어떡하라고? 누가 지고 오래?"라는 말만 돌아올 뿐이었다.
나는 결국 믿을 건 나 자신밖에 없다는 마음으로 성격 개조에 나서야만 했다. 시중에 있는 처세술 책과 성격 관련 책은 모두 읽고, 심지어 필사까지 하고, 요즘 말로 '인싸'같은 아이들의 행동거지와 사고방식을 모방하면서 후천적인 성격을 만들어갔다. 그렇게 뼈를 깎는 십여년의 시간이 지나고, 과도기였던 20대 초반이 지나 얼추 20대 중반께가 되자 나는 '성격이 참 밝다'는 말도 제법 듣는 일반인이 되었다. 나는 여전히 인싸는 아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새로운 집단에서 사람을 사귀는 걸 어려워하지 않는다.
출처: 셔터스톡
나의 성격 개조 프로젝트는 비록 해피엔딩으로 끝났지만, 그 과정이 무척 지난하고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내 자식은 똑같은 길을 밟게 하고 싶지 않았다. 아이 성격이 나를 닮아 내성적일까봐 걱정이라는 말에 "크면서 스스로 노력하면 괜찮아져요"라는 말은 전혀 위안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불안했다. 노력하면 나아지긴 하겠지. 하지만 난 그놈의 노력을 하느라 죽을 고비를 몇 차례나 넘겼다. 남들은 거저 얻는 것 같은 일상생활 능력을, 나는 피를 토하는 노력으로 얻었다. 남들이 입시에 매진하고 학창시절의 추억을 쌓는 동안 나는 내 성격을 끊임없이 검열하고 전쟁과 같았던 학교생활을 오롯이 혼자 감당하느라 피가 마르는 느낌이었다. 30대 중반에, 원가정의 불화와 결혼 후에는 심한 육아우울증까지 겪은 나로서도 내 인생에 가장 고통스러웠던 시기를 꼽는다면 단연 10대 이전이다.
결국 내 '저주받은 유전자'는 내 아이까지 고통에 빠지게 할 것인가. 아이의 소심해 보이는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지나칠 정도로 고민에 빠졌다. 아이의 낯가림이 영원히 나아지지 않으면? 학교 들어가서까지 계속 겉돌고 무서워하면? 혹시나, 만약 나처럼 학교폭력 피해자가 되면? 어떻게 하지? 아이 성격이 나를 닮을까봐 심하게 걱정하는 나에게 남편이 말했다. "여보, 지금 아기 개월수에 낯을 가리는 건 정상이야. 지금 여보는 아기에게 여보의 고통을 투사하고 있는 거야."
그렇다. 고민이 길어져봤자 어차피 돌쟁이 아기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닥 없었다. 게다가 지금의 상태로는 알 수 있는 것도 한정적이다. 아기의 낯가림은 커 가면서 저절로 없어질 수도, 혹은 아닐 수도 있다. 나처럼 심한 사회부적응을 겪을 수도 있지만 그 정도는 아닐 수도 있다. 남편 역시 내성적인 편이지만 나보다는 안정적인 정서를 가지고 사회성도 있는 편이다.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 만약 우리 아이가 어릴 적의 나처럼 또래 사귀기를 어려워하거나 낯을 가린다고 해서 "얘는 성격이 대체 왜 이럴까"라며 책망하지 않아야겠다. 어릴 적 우리 부모님처럼. 나는 성격 때문에 자주 꾸중을 들었고 그 때문에 내성적인 성격이 더 위축됐다. 정말 안 좋은 점은, 습관적으로 자기검열을 하다 보니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내가 예민한건가'하고 자꾸 '화 낼 자격'을 찾다 보니 자기 표현을 하지 못했다. 사회에 나오고 나서야 다른 사람들은 자신이 부당함을 느낄 때 바로 표현을 해서 자기 몫을 받는다는 걸 알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럴 일은 없길 바라야겠지만, 만약 우리 아이가 학교폭력 등을 당했다면 아이를 책망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 가해자에게 사과를 받고 합당한 처벌을 내릴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아울러 우리 아이는 올바른 심리적 보살핌을 받을 수 있도록, 필요하다면 치료를 받거나 좀 더 나은 교육환경을 찾는 등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다할 것이다. 아이는 절대 저절로 크지 않고, 크면 다 나아지는 게 아니며, 고통을 겪는 아이에게 '자유방임'은 답이 되지 않는다.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향의 아이로 수십년간 자라 오면서 내린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