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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허실 Jun 26. 2020

이제, 퇴사합니다.

퇴사일기


퇴사- 낯선 단어다. 적어도 나에게는 퇴사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퇴사한지 네 달이 지났지만 아직 이 말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바로 일하게 되었고 십년이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내 몸과 마음을 위탁한 공간이어서 그런 걸까. 사소한 공간 하나하나부터 교육과정, 생활규칙 등 내 손을 거치지 않은 것들이 없는데 아마도 떠나보내는데 시간이 조금 걸리나보다.


내가 좋아서 청춘을 갈아넣으면서 일한 직장이었고 그만큼 내 일터에 대한 자부심도 있었지만 아쉽게도 끝은 좋지 못했다. 갑작스런 퇴사 과정에 대해 할 말은 참 많지만 굳이 구구절절 말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다만 그 과정에서 몇가지 교훈은 얻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믿음은 절대적이지 않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말랑말랑한 내면을 가지고 있는 어린 시절에는 외부의 자극에 쉽게 생각이 바뀌고 말투도 바뀐다. 하지만 어느 정도 삶의 방향성이 생긴 이후에는 삶의 형태와 생각이 잘 바뀌지 않는다.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은 틀린 말이 아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고쳐쓸 수도 없다. 내 마음에 드는 사람은 있을 수 없지만 역할에 어울리는 사람을 찾아서 내 사람으로 만들 수는 있다. 중요한 것은 한 번 실망하거나 배신한 사람에게 다시 믿음을 주면 안된다는 것이다. 사람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반드시 똑같은 행위를 반복하게 되어 있다.


`

며칠 전 그냥 심심해서 타로카드로 스스로 점을 본 적이 있다. 내가 그 동안 해온 일들을 바탕으로 새롭게 할 일들을 기획하는 중인데 하고 싶은 일도 많고 생각이 하나로 잘 모아지지 않아서 확신이 들지 않았다. 과거, 현재, 미래 카드를 뽑아봤더니 순서대로 15번 악마카드, 소드 5번 카드, 14번 절제카드가 나왔다.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새로운 일을 하고 싶어도 하기 어려웠던 과거와 퇴사의 과정에서 깔끔하게 정리하고 나오기는 했지만 서로에게 상처만 남은 현재가 먼저 떠올랐다. 미래에 대해서 절제와 중용, 균형과 조화를 뜻하는 14번 카드가 나온 것을 보면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던 사람과 사람, 일과 일의 조율을 잘 해야 한다는 뜻인 것 같다. 타로 카드 한 구석에 보이는 왕관 모양의 해로 가는 길이 먼 것을 보면 인내심도 조금 필요할 것 같다.


`

퇴사를 하자마자 새로운 일에 도전해보고 싶어 재미있어 보이는 곳에서 바로 일을 시작했는데 상식 이하의 일처리 방식에 고민고민하다가 얼마 전 그만 두었다. 이제 백수 생활한지 20일째인데 백수 생활은 한가하면서도 한가하지 않다. 분명 시간이 많은 것 같아 보이지만 하루가 금방 지나가고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다. 하지만 덕분에 일 년 반만에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게 되었다. 이 기회에 프리랜서로 일을 해 볼까.


일을 그만두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든다는 것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눈에 보이는 일이야 금방 정리를 할 수 있지만 마음에 남아 있는 일을 정리하는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 정리가 끝났다. 늦은 감은 있지만 진짜 작별을 고할 시기이다.


이제, 퇴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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