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은 당신의 퇴사 이유에 관심이 없다
퇴사를 한 지 2년이 지났다. 퇴사 과정이 아름답지 않았지만 어딘가에 풀어내기도 참 애매하기도 해서 할많하않의 자세로 꾹 참고 지냈다. 하지만 나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감정의 덩어리들을 흘려보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퇴사 4개월 차에 아래와 같은 글을 썼다.
그 당시에는 나름 객관적으로 정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다시 보니 글 곳곳에 감정의 덩어리들이 여기저기 묻어 있다. 인간이 죽음을 받아들이기까지 '부정, 분노, 타협, 우울증, 수용'의 단계를 거치듯이 퇴사를 받아들이는 과정에도 비슷한 단계가 필요하다. 퇴사 상황에 따라, 근무 연수에 따라, 사람의 성향 차이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나의 퇴사 과정을 단계로 구분해 보면 '자유, 불안, 분노, 수용, 시작' 정도인 것 같다.
퇴사와 동시에 해방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나 불안해졌다. 따박따박 들어오던 월급이 사라지자 그동안 나의 자존감을 지켜주었다고 생각했던 내 능력이 생각보다 보잘것없어서 화가 났다. 결국 나의 부족함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그제야 나는 낯선 세계에서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었다.
새로운 삶에 어느 정도 적응하고 나니 퇴사 과정에서 했던 나의 불안정한 마음 상태가 떠올랐다. 시간이 많이 흐른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내가 그 당시의 나를 바라보면서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더 시간이 흐르면 이 감정마저도 사라질 것 같아서 지금이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퇴사 이후 행동에 대해 기록해 본다.
퇴사 과정이 아름답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필수로 거치는 코스가 바로 '사람에 대한 원망'이다. 그리고 누군가 나의 분노를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직장 안에서도 나와 가까웠던 사람들에게 그 마음을 풀어내기도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당신의 퇴사 이유에 1도 관심 없다. 위로와 공감의 말은 들을 수 있겠지만 그때뿐이다. 시간이 지나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어 버린다. 가슴속의 분노는 직장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풀어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다른 쪽으로 생각해 보면 인간관계란 언제, 어떻게 다시 맺어질지 모른다. 지금은 별로라고 생각한 사람도 오랜 시간이 지나 전혀 다른 곳에서 협력 관계로 만날 수 있다. 그래서 퇴사 과정은 아무리 엿같아도 겉으로는 좋게 마무리하는 것이 좋다.
다만 어떻게 해도 다시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그냥 손절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 같다. 일말의 가능성 때문에 불안감과 불편함을 감수하고 사느니 그냥 가능성을 날리고 마음 편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좋지 않을까. 일의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내면의 평화다.
나는 비영리 교육기관에서 10년을 일하다가 퇴사 후 전혀 해보지 않은 분야에서 일을 시작했다. 게다가 영리를 추구하는 일이었다. 비영리 관련 일을 하면서 항상 영리를 추구하는 일의 속성이 궁금했고 익숙한 세계보다 미지의 세계에서 새로운 도전을 하는 게 더 재미있을 것 같았다. 시작할 당시에는 아래와 같이 페북에 소박한 포부를 올리며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했다.
기존에 하던 게임을 계속할 수도 있었지만 그냥 새 게임을 시작하기로 했다. 기존 판에서는 고렙이라고 자부했는데 새로운 판에 들어오니 쪼렙으로 변했다. 나이 40을 앞두고 쪼렙이라니, 나름 신선하다.
그런데 신선하기는 개뿔,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얼마 있지 않아 저 글을 쓴 내 손가락을 부러뜨리고 싶었다. 그동안 자존감이 정말 높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전혀 모르는 분야에서 나이 마흔에 20대 같은 쪼렙 취급을 받으니 자존감 떨어지는 소리가 매일매일 들렸다. 직업 분야를 완전히 바꾸면 기존의 경력을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생각보다 감정의 스크래치가 많이 난다는 것을 저 때는 알지 못했다.
그 순간 10년의 경력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이 참 많았던 이전 직장에서의 삶이 그리워졌다. 그때에는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었고 일의 전반적인 프로세스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일 자체를 내가 컨트롤할 수 있었다. 그동안 퇴사를 한 사람들이 이전 직장으로 복귀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미련들도 순간의 감정일 뿐이다. 지금은 그 당시 과거를 다시 선택하지 않은 나에게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은 낯선 세계에 적응하며 쌓인 새로운 경험으로 인해 내 삶의 반경이 더 넓어졌다. 조직의 미래에만 집중하던 내가 이제는 나의 미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10년 후, 20년 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 많은 고민과 상상을 할 수 있어 내 삶은 더 풍족해졌다.
개인 경험에 따라 다르겠지만 퇴사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은 완전히 다르다. 만나는 사람도 다르고 하는 일도 달라지기 때문에 사고의 틀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과거의 성공이 지금의 나를 보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하나의 조직에서 오래 있었던 사람일수록 이전 직장에서의 경험과 프레임으로 새로운 세계를 보려고 한다. 나도 그랬다.
다른 사람이 나의 퇴사 이유에 1도 관심이 없듯 내 과거의 직장 경험에 대해서도 큰 관심이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새로운 세계를 탐험하기로 마음을 먹었다면 우선 그 세계의 룰을 잘 지키는 것이 적응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생각해 보면 20대에는 경험이 많지 않아 내가 만나는 모든 세계가 낯설고 이해 불가능의 영역이었기에 룰을 지키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마흔 즈음의 나는 새로운 룰을 기존의 내 경험으로 평가하고 관성대로 움직이려는 경향이 강했다. 이래서 나이가 들면 꼰대 소리를 듣는 것 같다.
과거에 어떤 대단한 일을 했든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내 과거에 누군가 알아서 존중을 표한다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묻지도 않았는데 굳이 생색내며 내 경험을 타인에게 강요한다면 시간이 지날수록 본인의 입지만 좁아질 뿐이다. 그 상태를 빨리 벗어나지 못한다면 결국 어디에도 적응하지 못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만 끼치는 프로 불편러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서론 중반까지는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하거나 창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2-3년에 한 번씩은 퇴사를 생각했다. 하지만 마흔 즈음에 실제로 퇴사를 해보니 지금은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된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퇴사 2년 차, 아직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N잡 프리랜서가 하는 생각 치고는 너무 낭만적인 걸까. 하지만 과거보다 시간의 여유가 많아진 지금,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함께 생각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 가족들이 있어서 지금은 조금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