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대상 진로 수업 <인턴십> 수업 레시피
직업은 진로가 아닙니다
17살 이상의 고등 과정을 운영하고 있는 대안학교들 중에는 인턴십 프로그램을 수업으로 진행하는 곳이 꽤 있습니다. 기간은 학교마다 다른데 짧게는 3-4주에서 길게는 3개월까지 직업 현장과 연계해서 교육을 진행합니다. 제가 일했던 대안학교에서도 2009년부터 인턴십 프로그램을 꾸준히 진행했고 저는 총 5번 인턴십을 담임을 역할로 운영했습니다.
참고로 대안학교에서 진행하는 인턴십 프로그램은 현재 고용노동부와 기업, 특성화고와 연계해서 진행하고 있는 '일학습병행제'와 모양만 비슷한 뿐 전혀 다른 프로그램입니다. 대안학교에서의 인턴십이 성인 이후의 진로 선택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진로탐색'에 초점을 두고 있는 반면 일학습병행제는 학교에 배운 기술로 직접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게 연결해 주는 진로 선택 즉, '취업'에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인턴십은 세상 속에서 자신의 길을 찾기 위해 일정 시간 동안 자신이 평소 꿈꾸고 있던 진로 현장에서 직업체험을 해보는 교육 프로그램입니다. ... 인턴십 활동을 하면서 자신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잘하고 무엇을 못하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은지에 대해 많은 고민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 속에서 새로운 삶의 가치를 확인하고 일하는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고민을 곱씹어 보며 타인의 꿈을 통해 자기의 꿈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게 됩니다.
<인턴십 프로그램 안내문 중>
고등 과정의 청소년들의 진로 고민을 하다 보면 크게 2가지 부류로 나뉩니다. 졸업 이후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서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거나 반대로 미래에 대한 장밋빛 미래만 상상하는 경우입니다. 인턴십 프로그램이 좋은 점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진로에 대한 경험적 지식을 제공한다는 점입니다.
처음에는 인턴십 현장에 나가서 일하는 것 자체를 불안해하는 아이들도 일에 적응을 하고 관련 학습 쌓으면서 자연스럽게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반대로 희망 직업이었던 곳에서 직접 일해보니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라 진로 고민의 방향을 변경하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가령 게임 기획자가 꿈이었던 한 아이는 게임 개발 회사에 인턴십을 다녀오고 나서 바로 꿈을 접었습니다. 본인은 게임을 할 때 재미있지 만드는 것에는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죠. 반대로 문화기획 활동에 관심이 많아서 독립예술기획사에 인턴십을 다녀온 한 친구는 5년이 지난 지금 또래 청년들과 함께 문화 기획 일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학교 교육과정 중 개인적으로 인턴십 프로그램을 가장 좋아했습니다. 뜬구름 잡는 진로 얘기에 현실감을 제공해 주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그 과정에서 본인이 진짜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 그 일을 통해 정말 이루고 싶은 본인의 꿈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깊은 질문을 던질 수 있습니다.
인턴십 교육 프로그램의 핵심은 인턴십 기간을 잘 보내는 것이 아닌 준비와 마무리를 더 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현장을 찾는 과정은 자기 이해를 바탕으로 아이들 스스로 찾아야 하며 인턴십 활동을 통해 얻어온 각자의 경험 온전한 본인의 실력으로 남을 수 있도록 좋은 질문들을 던져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준비 기간은 대략 최소 2달 정도를 잡는 것이 좋습니다. 충분한 면담을 통해 아이들의 성향, 취향, 좋아하는 것들을 파악하고 수업 과정에서 현장 탐색 및 답사, 섭외 과정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현장과 아이의 주파수도 맞아야 하기 때문에 때로는 교사가 아이와 동행하거나 또는 별도로 사전 답사도 가야 합니다.
마무리 기간에는 일, 노동, 최저생계비, 복지, 복리후생, 노동조합 등 일에 대한 기본 개념과 아이들의 직업 현장과 관련된 내용들을 통해 관련 학습을 진행하면 좋습니다.
학교가 아닌 현장의 기준으로 바라보면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고등학생 한 명과 함께 일을 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 굉장한 업무 저하 상태를 가져옵니다. 당연히 안 받는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기 때문에 현장 섭외 과정은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현장 섭외 연락도 학생이 합니다.
때문에 현장 입장에서 인턴십 프로그램에 대해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기초 자료가 필요합니다. 채용 과정의 입사지원서처럼 아이 스스로 자기소개서를 미리 작성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아이가 현장에 연락을 취하는 적절한 시점에 교사가 이 모든 상황을 현장과 자세하게 소통하는 것이 좋습니다.
현장에서 업무 협약서를 요청하는 곳도 있습니다. 협약서 양식을 가지고 있는 곳도 있지만 아닌 곳은 문서 자체를 요청하기 때문에 제가 사용했던 협약서 양식도 함께 공유합니다.
1. 현장에 나가는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세요
신입사원으로 처음 일할 때 생각나시나요? 첫 출근 전날 불안해서 잠을 못 자거나 열정과 패기로 막상 일을 시작해도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게 없어 하루 종일 컴퓨터 화면만 쳐다보며 좌절하던 경험이 모두 있을 겁니다. 아이들도 동일한 어려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럴 때 본인의 신입 시절을 떠올리며 아이들이 힘들어할 것 같은 시점에 공통 문자, 개별 문자를 통해 적절하게 연락을 해주면 좋습니다.
저는 인턴십 시작 전 주 마지막 금요일에 항상 작은 파티를 합니다. 그리고 파티 도중에 학교에서 제공하는 인턴십 활동비를 한국은행에서 빳빳한 새 돈으로 바꾼 후 직접 쓴 편지와 함께 봉투에 넣어서 아이들에게 줍니다. 새로운 세계로 모험을 떠나기 전 기본 아이템을 장착하는 거죠.
교사의 별 것 아닌 이런 사소한 행동에도 아이들은 큰 위로와 힘을 받습니다. 그때 쓴 메시지들을 모두 기록해 두었는데 모두 옮겨 오기에는 너무 내용이 길어서 직접 쓴 편지 중 일부 내용만 공유합니다.
인턴십을 준비하는 학생에게 보내는 편지
그대 자신의 영혼을 탐구하라. 다른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말고 오직 그대 혼자의 힘으로 하라. 그대의 여정에 다른 이들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라. 이 길은 그대만의 길이요, 그대 혼자 가야 할 길임을 명심하라. 비록 다른 이들과 함께 걸을 수는 있으나 다른 그 어느 누구도 그대가 선택한 길을 대신 가줄 수 없음을 알라. | 인디언 속담
거침없이 현장 섭외를 하면서 실패해도 좌절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음 ㅋㅋ 그런 도전 정신과 호기라면 어디를 가더라도, 무슨 일을 하더라도 즐겁게 재밌게 일할 수 있을 거야. 인턴십 다녀오면 패션 사진작가님도 한 번 만나러 가자 :)
프랑스식 정통 디저트라니! 내가 ‘르헤브’를 살며시 제안했지만 너의 뚝심으로 더욱 멋진 곳을 섭외했다는 것 자체가 멋지다고 생각해 :) 계속된 섭외 실패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계속 연락하는 모습도 멋졌고 ㅋㅋ 그런 뚝심과 배포가 현장에서 분명히 통할 거야! 잘 배워와 ㅋ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섭외 연락해줘서 고마워. 섭외 과정이 어려워서 심리적으로 많이 부담이 되었을 텐데 그래도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정말 멋졌음 :) 인턴십 활동보다 섭외 활동이 나중에 너에게 정말 큰 경험과 자산이 될 거야. 베리베리베~~~리 굿!
요리에 대한 너의 관심이 미술랭 스타와의 만남으로 이어지게 되었군 ㅋㅋ 압구정이라는 문화, 고급 레스토랑 분위기라는 것이 처음에 다소 낯설게 다가올 수 있겠지만 너의 단단하고 튼튼한 내면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너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줄 거야. 그곳에서 너의 진가를 보여줘!
언제나 다른 사람의 말에 귀 기울여주는 너에게 전.장.연은 좋은 인턴십 현장이라고 생각해. 실제 사회에서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 그런 어려운 일을 하는 사람들과 일하면서 연대하고 나누고 협력하는 방법 잘 배워 오기를! 알이즈웰~
미술에 대한 너의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이 이렇게 예술 커뮤니티로 이어지게 되었네 :) 재미있는 프로젝트에 바로 참여할 수 있어서 더 좋은 것 같아 ㅋㅋ 세상 속의 예술은 어떤 모양새를 갖추고 있는지, 난 어떤 예술가가 되고 싶은지 충분히 고민해보고 상상해보고 오기를!
2. 일과의 매칭보다 멘토와의 호흡이 더 중요합니다.
인턴십의 성공 여부는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잘 찾아서 하는 것보다 현장에서 어떤 멘토를 만났는지가 더 크게 작용합니다. 하고 싶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현장에서 멘토를 잘못 만나면 하고 싶은 일도 하기 싫은 일이 되기도 합니다.
사전에 현장을 섭외하는 과정에서 아이들에게 이런 부분을 자세히 알려주고 사전 답사 과정에서 현장 멘토와 미팅을 할 때도 교사가 이 부분을 꼼꼼하게 체크하는 것이 좋습니다.
3. 부모님들에게도 별도의 안내문이 필요합니다.
직업과 진로를 바라보는 아이들과 부모의 시선은 매우 다릅니다. 아이들의 온전한 힘으로 인턴십의 모든 과정을 잘 마무리할 수 있게 잘 지원해주는 부모님들도 있지만 때로는 활동 과정에 직접 개입을 하며 갈등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살아온 시대가 다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현상이지만 그 과정을 잘 해결하지 않으면 아이들에 상처로 남게 됩니다.
인턴십 시작 전 부모님들에게 인턴십의 취지를 잘 설명한 안내문을 발송하는 것만으로도 이런 불필요한 갈등을 줄일 수 있습니다. 제가 사용했던 안내문 내용을 공유합니다.
인턴십을 여행하는 부모님들을 위한 안내서
인턴십 교육과정은 학교의 다양한 교육과정을 통해 학생 스스로 터득한 배움의 정수를 ‘세상’이라는 리얼 맵에서 적용해보는 과정입니다. 학교라는 울타리가 있다고 하지만 리얼 세상에서 직접 겪는 ‘일’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해당 현장에서의 열정적인 멘토링과 가정에서의 든든한 응원이 있기에 아이들은 인턴십 활동을 통해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부모님들의 인턴십 교육과정에 대한 부족한 이해와 피드백으로 학생들이 인턴십을 진행하면서 마음이 힘들어진 경우가 있었습니다. 아이들이 자기 스스로 정한 길을 온전히 제 힘으로 걸을 수 있도록 그림자 같은 지원 부탁드립니다.
> 철이 없어 보여도, 아이는 미성년이 아닙니다.
인턴십 프로그램은 현장 섭외부터 전화연락, 현장 업무, 마무리 활동까지 학생 스스로 진행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현장 업무의 경우에 활동 시간은 현장 업무 시간을 준수하고 있으며, 간혹 현장에서 야근이 있을 경우 늦게까지 일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일하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속상한 마음에 집에 와서 다양한 형태로 속풀이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학생 대신 해결해주려고 하기보다는 자녀가 성장하는 과정으로서 받아들여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때는 따뜻한 위로와 공감의 한마디면 충분합니다.
> 평가는 A부터 Z까지 돌아보고 해도 늦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인턴십을 다녀온 경험으로 인해 미래의 직업이 정해지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인턴십 프로그램은 ‘진로선택’이 아닌 ‘진로탐색’에 초점을 맞추고 진행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봄학기 포트폴리오 수업을 통해 자기 배움의 과정을 기록하고 여름학기 인턴십 수업과 연계하여 관심 직업 현장을 검색하였고 가을학기 섭외 과정을 통해 인턴십 현장을 확정했습니다. 올해부터는 인턴십 일지가 페이스북 페이지가 아닌 내부 업무용 메신저인 ‘아지트’로 공유하게 됩니다. 활동 과정에 대한 공유는 연말 발표회 때 함께 할 예정입니다. 학생의 활동 과정 중 종종 몇 가지 눈에 보이는 결과만 보고 인턴십 전반에 대해 평가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학생들의 보이지 않는 노력과 숨은 활동까지 꼼꼼하게 살펴보고 평가하는 세심한 배려를 부탁드립니다.
> 여전히, 직업에 귀천은 없습니다.
어른들이 바라보는 직업의 세계와 학생들이 바라보는 직업의 세계는 그 결이 많이 다릅니다. 그래서 학생들의 선택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학생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피드백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어른들이 보기에 부족하고 불안해 보여도 학생들은 오랜 고민 속에서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인턴십 현장을 찾아내곤 합니다. 시대상이 변해도 세상의 모든 직업은 그 존재 자체로서 귀하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학생들이 선택한 직업군을 존중해주시는 것만으로도 좋은 직업 가치관 교육이 될 수 있습니다.
모든 파일은 무료로 공유합니다. 다만 좋아요와 공감 댓글은 글을 오래오래 재미있게 쓸 수 있는 동기가 됩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좋은 수업을 위해 노력하시는 모든 선생님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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