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갓 대학생이 되었을 때는 먹고 마시고 노는 재미로 살았다.
스물여섯 살 신입사원이 되었을 때는 사회생활의 쫄깃한 긴장감과 함께 새로운 경험을 하는 재미로 살았다.
스물아홉 살 경력이 좀 찬 직장인이 되었을 때는 업무량이 많아도 일하는 재미로 살았다.
서른두 살 이것저것 취미 생활을 하며 여유를 즐기는 재미로 살았다.
서른여섯 살 뒤를 돌아볼 줄 아는 재미로 살고 있다.
앞만 보던 삶이었다. 늘 졸업을 하면 입학이 기다렸다. 퇴사를 하면 입사가 기다렸다.
열심히 앞을 보며 달리는데 두 손에 쥔 건 크지 않더라. 모래알처럼 쥐어도 흩어졌고, 많이 쥐려고 할수록 잃는 것도 많았다. 그래도 더 빨리 달리면 될 줄 알았다.
지난날 분주한 삶만이 열심히 사는 것이고, 잘 사는 것이고, 내세울 수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이 내 머릿속에 새겨 놓은 진정한 멋진 어른이었다. 시간이 흘러 서른 중반에 들어서니 그때의 생각에 완벽히 동의할 수 없었다. 앞만 보느라 나는 오히려 가난해졌기 때문이다. 내 앞에 있는 사람만 쫓아가다 보니 남과 비교하는 버릇이 들었다. 비교는 스스로를 절망에 빠뜨리는 가장 큰 무기였다. 내가 정해놓은 '잘 산다는 것'의 이미지가 결국 마음을 빈곤하게 만든 것이다.
내 앞에 있는 무언가 또는 누군가를 쫓아가기만 하는 일상이 얼마나 허무하고 슬픈가. 인생의 주체가 '나'여야 하는데 ‘타인’이 되는 삶이 더 불쌍하지 않은가. 빠르고 느린 것, 크고 작은 것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서른여섯의 나에게는 말이다. 적어도 나를 절망으로 내몰지 않는 것, 희망에 굳건히 서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요즘 나는 내가 흘리고 온 것을 주우러 가기도 하고, 놓친 것을 채워 넣기도 한다. 앞으로 열 걸음 걸었으면 한 번씩 뒤를 돌아본다. 적절한 타이밍에 슬쩍. 내가 쌓아온 것들이 생각보다 많더라. 직접 부딪히며 터득한 삶의 방식과 지혜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값진 것이었다. 내 마음이 두둑해지더라.
스무 살 때보다 융통성이 생긴 서른여섯 살은 마음이 지치는 일은 유연히 피해 간다. 여전히 머리랑 손은 바쁘지만 마음만은 적정 속도를 유지하며 과속하지 않는다.
운전할 때 백미러를 보는 것이 필수인 것처럼 살아가면서 한 번씩 뒤를 살펴보자. 내 삶을 안전하게 돌보고 있는지, 작은 행복도 소중히 여기며 살아왔는지 생각해 보자.
뒤를 돌아보는 재미, 이것 참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