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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키 Dec 24. 2023

세계

막시밀리안 렌츠

푸른 옷을 입은 여인들 중 몇은 춤을 추고, 몇은 그에게 다가가지만, 남자는 오직 자신의 '세계'에 빠져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꽃이 만발한 들판도, 향기도 그의 손에 들린 담배 연기에 가려진다. 자기 세계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우울의 서정이 고혹적이고 환상적인 색채를 등지고 있다. _작품 해설, 『365일 모든 순간의 미술』


*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Maximilian Lenz <A World>, (1899) 출처: Wiki



+ 하루키 감상

1899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활동하던 막시밀리언 렌츠는 이중적 성향을 보입니다. 낮에는 활발히 사람들과 교류하며 작품 활동을 했지만, 밤이 되면 혼자만 사용하는 방에 들어가 스스로를 고립시킵니다. 일체의 외부 세계와 접촉을 삼갑니다. 2층. 문 하나. 창문 하나. 의자 하나. 한쪽 벽에는 완성된 혹은 미완성된 그의 그림들이 여러 겹으로 놓여 있습니다.


달이 보이지 않는 밤. 별빛이 매혹적입니다. 가족이 모두 잠든 깊은 밤. 고요함. 밤하늘 아래 2층 지붕 높이까지 자란 키가 큰 나무에 시선이 고정됩니다. 하지만 형태와 색이 불투명해 없는 것 같기도,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 밤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셨습니다. 귀를 쫑긋 세워 어둠에 귀 기울입니다.


얼마쯤 지났을까. 막시밀리언 렌츠는 몸을 움직여 한쪽에 놓인 그림들을 뒤적이기 시작합니다. 잘 보이지 않는, 별빛이 닿지 않는 이곳. 손가락 끝의 감각과 직관. 짙은 그림자 안에 감춰진, 그림을 집어 올립니다.


별빛에 그림을 비추자 <세계A World>가 나타났습니다.



&



1. 계절의 위치는 여름이 끝나가는 어디쯤, 하늘은 파랗지만, 밤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듯 어둑어둑합니다. 들판엔 프리지아 꽃들이 가득 피어 있어요. 흰색 프리지아, 상상의 장소 같기도 한, 프리지어 들판 뒤에는 몇 그루의 붉은 나무들. 주변을 더 자세히 살펴보았어요. 키 작은 올리브 나무들도 보이는 것 같아요.  


2. 시선은 전경에 놓인 한 남자와 4명의 여자에 멈췄어요. 녹색 빛이 감도는 중절모. 붉은 넥타이, 하얀 와이셔츠. 투 버튼 감색 정장, 갈색 트렌치 가죽 코트를 걸치고 있습니다. 한 손엔 시가가 들려 있고 한 손은 주머니 속에 있어요. 중후한 브라운 턱수염과 눈빛을 갖고 있는 남자. 이상한 점을 발견했어요. 살이 비치는 파란색 드레스를 입은 4명의 여인이 초록 이파리와 분홍색 장미꽃 봉오리가 뒤섞인 가지를 들고 남자를 쳐다보고 있는 것을. 그녀들의 표정에는 즐거움, 호기심이 담겨 있어요. 남자의 시선은, 무심할 뿐입니다. 발밑의 프리지아를 봅니다. 4명의 여인은 실재하는 걸까요? 남자는 여인들의 시선을 알고 있을까요?


3. 어디선가 소리가 들립니다. 맨발로 프리지아를 밟는 소리, 머리카락이 찰랑이는 소리, 파란색 드레스가 몸의 움직임에 따라 펄럭이는 소리, 웃음소리와 나지막이 소곤거리는 소리도 들립니다. 프리지아 향이 그윽합니다. 여인들은 파란 옷을 입은 요정일지도,


4. 남자는 고독해 보입니다. 프리지아에만 관심을 보이는 남자. 여인들은 『한여름밤의 꿈』(셰익스피어, 1595) 속 '사랑의 즙*'의 원료인 팬지pansy의 의인화 같아요. 장난기 가득한 요정들은 고독한 남자를 사랑에 빠뜨리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봅니다.


* 잠자는 사람의 눈꺼풀 위로 팬지pansy 꽃 즙을 떨어뜨리면, 눈을 떴을 때 처음 본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 화가 - 막시밀리안 렌츠Maximilian Lenz(1860 - 1948, 오스트리아)

[전기]


막시밀리안 렌츠는 1860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태어나 부유한 가정에서 자랍니다. 어렸을 때부터 미술에 관심이 많았고 부모는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격려합니다.


1878년 렌츠는 빈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 아카데미는 당시 유럽에서 가장 명망 있는 미술 학교 중 하나였으며 엄격한 커리큘럼으로 유명했습니다. 렌츠는 여러 유명 예술가 밑에서 공부를 합니다.


[중기]


1880년대에 들어서면서 렌츠는 학문적인 화풍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법을 실험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유럽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인상주의 운동에 관심을 갖습니다.


이 시기 렌츠의 그림은 느슨한 붓질과 밝은 색채가 특징입니다. 그는 종종 풍경과 도시 풍경을 그리며 주변 환경의 분위기와 정취를 포착합니다.


1897년 렌츠는 오스트리아에서 현대 미술을 장려하는 예술가들의 모임인 빈 분리파의 회원이 됩니다. 빈 분리파는 전통적인 학문적 예술을 거부하고 새로운 예술 사조를 수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또한 1926년, 화가 아이다 쿠펠비저와 결혼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후기]


렌츠는 새로운 스타일과 기법을 계속 실험합니다. 특히 전통적인 기법보다 감정과 개성을 강조하는 표현주의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예술가로서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을 겪었고 유럽에서 파시즘이 부상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이 시기 많은 친구와 동료들이 박해를 받거나 살해를 당합니다. 1948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사망합니다.


+ 비평적 관점


일부 비평가들은 그의 목판화 작업을 거칠고, 숙련된 화가의 것이라기보다는 아마추어 작품에 가깝다는 평을 받기도 했습니다.



* * *


+ 회화 스타일


1. 사실주의


사실주의는 현실을 최대한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19세기의 인기 사조였습니다. 렌츠의 사실주의 그림은 디테일에 집중하고 빛과 그림자를 사용하여 깊이감과 사실감을 만들어내는 것이 특징입니다. 렌츠는 주로 일상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을 주제로 삼아 그들의 표정과 감정을 매우 섬세하게 포착합니다.


2. 상징주의


상징주의는 19세기 후반에 등장한 사조로, 예술을 통해 삶의 영적이고 신비로운 측면을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렌츠의 상징주의 그림은 상징과 알레고리를 사용하여 더 깊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의 주제는 종종 신화적이거나 환상적이며, 생생한 색채와 대담한 붓 터치를 사용하여 몽환적인 분위기를 연출합니다.


렌츠의 상징주의 그림은 영성과 오컬트에 대한 그의 관심이 나타난 것이며, 그는 예술이 의식의 더 높은 영역에 접근하는 수단이 될 수 있고, 문자 그대로의 표현할 수 없는 심오한 진리를 전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3. 표현주의


표현주의는 20세기 초에 등장한 사조로 예술가의 내면의 감정과 경험을 예술을 통해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렌츠의 표현주의 그림은 대담한 색채, 왜곡된 형태, 표현적인 붓놀림이 특징입니다. 그의 주제는 종종 움직이는 인물이며, 역동적인 구도를 사용하여 에너지와 움직임의 느낌을 만들어냅니다.


그는 예술가 내면의 생각과 감정을 반영한 예술을 통해 관객과 더 깊은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 의식 안의 미술관


판화, 유화 등 다양한 시도를 한 것 같습니다. 사실주의와 표현주의, 상징주의를 넘나드는 렌츠. 신비롭습니다.

출처 : Wikiart






"바그너의 부인이자 리스트의 딸인 코지마 바그너는

1870년 12월 크리스마스 아침, 이 완벽한 천상 음악의

선율에 조금씩 잠에서 깨기 시작했다." _1일 1클래식

/

1870년, (26살) 프리드리히 니체는 바그너와 그의 부인, 아이들이 살고 있는 저택에 함께 크리스마스를 보냈다. 저택의 창밖으로는 (스위스) 루체른 호수가 펼쳐져 있었고, 멀리 필라투스 산이 보인다. _하루키

Richard Wagner - Siegfried Idyll




삶이 고양될지 혹은 무해할지, 의식 안의 미술관을 꿈꾸며 ... 감사합니다. 하루키





+ 출처


[1] 말러 재단 - 막시밀리안 렌츠(1860-1948)

[2] 위키피디아 - 막시밀리안 렌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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