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리 루소
앙리 루소. 파리 세관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주말마다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었습니다. 전부터 루소의 그림 실력은 조잡하기로 유명했습니다. 특히 끔찍한 건 초상화 실력이었습니다. 그는 그림을 정식으로 배운 적이 없었습니다. 초상화를 그리는 요령도 당연히 몰랐습니다. 기껏 생각해 낸 게 상대방 이목구비의 길이를 잰 다음 그 비례에 맞춰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었는데, 모델들도 초상화를 보면 질색했습니다. 루소의 친구조차 그림을 받아보고 기분이 나빠서 불태워버렸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입니다. 이렇게 비웃음을 샀던 루소는 오늘날 미술 거장으로 평가받고, 그의 그림은 명작 취급을 받습니다. 지난 (2023년) 5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그의 풍경화 ‘플라멩코(Les Flamants)’가 치열한 경합 끝에 4354만 달러(약 579억원)에 낙찰된 게 단적인 예입니다. _한국경제 23.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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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 하루키 감상
루소는 가난해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채 독학으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20대에는 천식과 위장 질환을, 50대에는 류머티즘으로 고통받았습니다. 1893년(49세)부터 전업 화가를 시작하였고 매일 12시간씩 그림을 그렸습니다. 가난, 건강이 좋지 않은, 아내의 죽음을 겪으면서 루소는 그림에 혼신의 힘을 기울입니다.
어느새 루소에게 그림은 일종의 종교이자 수도(修道; 나의 근원(根源)을 깨닫기 위해 길(道)을 닦는(修) 일)가 되었습니다. 그러한 믿음과 행위를 통해 루소는 일종의 '희망'을 얻습니다. 살아있음의 가치를, '빛holy'을 봅니다. 1905년 살롱 데 앙데팡당(Salon des Indépendants)* 전시회에서 젊은 화가로부터 열광적 찬사와 지지를 받았고, 국제적 명성을 얻기 시작합니다.
* 1884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무심사 미술전람회를 말합니다. '앙데팡당'은 프랑스어로 '독립적', '자주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19세기 중후반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화풍에 맞선 새로운 흐름을 가리킵니다.
1910년 생활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지만, 얼마 전부터 생긴 괴질로 고통 속에서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평소보다 일찍 잠이 든 날, 베르사유 궁전과 센강 사이를 걷고 있었습니다. 곧 낮은 언덕이 보였고 언덕 위에는 동물원이 보였습니다. 루소는 평소처럼 동물원 안으로 들어갑니다.
갑자기 동물원은 커다란 나트론 호수*로 변합니다. 깜짝 놀라 주변을 둘러보자 다수의 플라멩코 무리가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 탄자니아에 위치한 나트론 호수가 유명한 플라밍고 서식지 중 하나인데, 실은 이 호수가 동물들이 앉자마자 화상을 입고 호수에 가득한 탄산수소 나트륨 때문에 시체가 그대로 굳어서 자연박제 되어버리는 죽음의 호수다. 사람도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사망 혹은 중상을 입을 수 있는 곳이다. 특이하게도 플라밍고는 탄산수소나트륨에 영향을 받지 않아서 유일하게 호수에서 서식한다는데, 이유는 긴 다리가 탄산수소나트륨의 공격을 막아줬기 때문이다. 발의 물갈퀴 덕분에 플라밍고는 진흙에 빠지지 않으며, 부리의 필라멘트 조직은 물 표면의 해로운 미생물을 걸러내 준다. 그리고 호수 자체가 다른 천적들의 접근을 막아주는 방패 역할을 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무리를 지어 산다 _나무위키
핑크빛 플라멩코, 연꽃, 멀찌감치 모래톱, 사람의 그림자도 보입니다. 열대 우림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나무들도 (같은 장소에서 볼 수 없는 초현실적인 풍경이) 보입니다. 갑자기 극심한 고통이 밀려옵니다. 본능적으로 허리를 웅크렸다 피자 세상이 새하얘졌습니다. 눈을 뜨자 아침이었습니다. 루소의 시선은 발을 향했고, 괴저(세균이 자라면서 발생하는 생체조직의 괴사)가 심각해 가망 없음을 직감합니다.
1910년 8월 아침. 루소는 고통을 참고 《플라멩코》를 그리기 시작합니다. 완치를 위한 노력 보다, 생의 마지막 한 방울까지 사용해 그리기를 선택한 루소. 1910년 9월 (괴저가 원인으로) 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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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앙리 루소는 자신이 성공하면 반드시 하고 싶었던 일이 있었다. 아프리카 여행. 특히 자연의 플라멩코가 보고 싶었다. 밝고 붉게 타오르는 듯한 새. 동물원에서만 볼 수 있는 새. 그에게 있어, 아프리카와 정글, 플라멩코는 일종의 동경이었다. 미지의 혹은 닿을 수 없는 이상의 상징 같은,
2. 어느 날 절친 앙드레 드랭(야수파의 주요 멤버)과 아프리카 이야기를 하다 그가 그린 플라멩코 그림을 보게 된다. 불타는 듯한 플라멩코였다. 아랫배에서 열기가 올라오는 것이 느껴졌다.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머릿속으로 떠오른 이미지를 모아 구성을 짜보았다.
▶ 4마리의 플라멩코, 플라멩코는 자신을 인정해 주고, 교류하는 4명의 야수파 화가들이다. 그들은 전통적 화법(아카데미에서 배우는)에 도전하는 젊고, 재능 넘치는, 자신을 지지하는 야수파 화가들이다.
▶ 삼색(핑크, 노란, 흰)의 연꽃, 핑크색은 아프리카나 정글에 대한 동경, 노란색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 흰색은 예술적 승화를 담는다. 하지만 흰색 연꽃만이 물 위에 떠 있다. 예술은 늪 같은 호수, 현실에서만이 피어날 수 있는 꽃. 지난한 고난 속에 피는 꽃.
▶ 3명의 흑인, 당시의 파리는 빈부의 격차가 극심한 벨 에포크 시대. 파리 중심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온통 부랑자, 매춘부, 비렁뱅이 천지다. 특히 알제리, 모로코, 튀니지 출신의 가난한 식민지 이민자들이 대부분.
▶ 후경의 열대 우림, 살아 있음이 힘들고 괴로움의 연속이지만 한편으로는 기쁨이라는 삶의 찬미. 루소는 화가이기에 글이 아닌 그림으로 이미지를 표현한다. 한 번도 본 적은 없는 정글이나 열대 우림은 그가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시적 표현.
3. 사실 《플라멩코》에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루소의 비밀이 있다. 스케치를 완성했을 당시 중앙 아래에 라틴어 문장을 쓴 것. 그리고 문장을 호수와 연꽃, 모래톱으로 감췄다. 아무도 모르게
"Dum vita eat, spes est(둠 비타 에스트, 스페스 에스트)"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 화가 - 앙리 루소Henri Rousseau (1844 - 1910, 프랑스)
+ 전기(1844-1880)
앙리 루소는 1844년 프랑스 라발에서 태어납니다. 그는 평범한 학생이었고, 학업을 마치지 못한 채 라발에 있는 중등학교를 떠납니다. 곧 군에 입대하여 4년 동안 복무합니다.
군 복무 기간 동안 그는 막시밀리안 황제를 지원하기 위해 프랑스의 멕시코 원정(1862~65)에서 살아남은 군인들을 만났고, 그들의 회상에 매료되어 귀를 기울입니다. 아열대 지방에 대한 그들의 묘사는 나중에 그의 주요 주제 중 하나가 된 이국적 풍경에 대한 첫 번째 영감입니다.
루소의 정글 묘사의 생생함은 그가 멕시코를 여행했다는 대중적 개념으로 이어집니다. 하지만 루소는 프랑스를 떠난 적이 없습니다.
1868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루소는 파리로 이주합니다. 이듬해 그는 가구 제작자의 딸 클레망스 부아타르와 결혼, 파리에서 하급 공무원으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1871년 파리 통행세 세금 징수원이 됩니다. 루소는 통행료 징수소에 실제 통관 기능이 없었음에도 두아니에(세관원)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 중기(1881~1892)
세금 징수원 일과 집안일로 바쁘게 지내면서 시간을 만들어 그림을 그립니다. 공식 살롱 전시에서는 인정받지 못했고, 살롱 데 앙데팡당(Salon des Indépendants)* 전시회에서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 1884년 프랑스에서 개최된 무심사 미술전람회를 말합니다. '앙데팡당'은 프랑스어로 '독립적', '자주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19세기 중후반의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화풍에 맞선 새로운 흐름을 가리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소의 작품은 7년 동안 비평가들의 일관된 조롱을 받았고, 아마추어로 평가받습니다. 병을 앓던 아내는 1888년에 사망, 몇 년 안에 딸을 제외한 모든 가족을 잃습니다.
+ 후기(1893~1910)
1893년 공무원을 그만두고 전업 화가가 됩니다. 1894년부터 일부 비평가들이 인정하기 시작했고, 1897년 <잠자는 집시>로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찬사를 받습니다. 이후 야수파 전시회에 참여해 국제적 명성을 얻습니다. 말년에는 주로 이국적인 풍경을 그렸습니다. 1910년 파리에서 사망합니다.
+ 비평적 관점
초기 비평가들
루소의 초기 작품은 비평가들로부터 조롱과 경멸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그의 그림을 "유치하고", "조잡하고", "비현실적"이라고 비난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비평가는 루소의 그림을 "아이가 그린 것과 같은 수준"이라고 말합니다.
후기 비평가들
루소의 후기 작품은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비평가들의 평가가 달라집니다. 그들은 루소의 그림이 순수하고, 상상력이 풍부하며, 독창적이라고 칭찬합니다. 예를 들어, 한 비평가는 루소의 그림을 "현대 미술의 가장 중요한 발견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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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특징
1. Naive art(소박파)
루소는 전통적인 미술 교육을 받지 못한 독학 화가였습니다. 그의 그림은 전통적인 미술에서 요구하는 사실적 묘사나 원근법과 같은 기술적 측면에서 미숙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미숙함은 오히려 루소의 그림에 순수하고 순박한 매력을 더해주는 요소로 작용합니다.
2. 이국적인 풍경
루소는 이국적 풍경을 주로 그립니다. 루소는 군인 시절 멕시코 원정에 참전한 군인들 이야기를 듣고 이국적 풍경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후 파리 식물원에서 이국적 식물을 관찰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합니다. 루소의 이국적 풍경은 화려한 색채와 풍부한 상상력으로 관객에게 동화를 선사합니다.
3. 환상 요소
루소의 그림에는 종종 환상적인 요소가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그의 그림에는 사자가 등장하는 정글, 춤추는 원주민, 공중을 나는 동물과 같은 환상적인 장면들이 등장합니다. 이러한 환상적인 요소는 루소의 상상력과 순수한 감정을 표현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앙리 루소는 아프리카, 멕시코 등 열대 우림을 한 번도 여행한 적 없이, 사람들의 이야기, 엽서, 그림을 통해 상상해 정글을 그렸습니다. :)
"말러의 생일을 맞아
그가 기념비적인 5번 교향곡에 새겨놓은,
쓰라리게 아름다운 연애편지를 음미할 시간이다." _1일 1클래식
+ 출처
[1] 위키피디아: Henri_Rousseau
[2] Britannica: Henri_Rousseau
[3] MoMA: Henri_Roussea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