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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

에리크 베렌시올

by 하루키

삶의 무게와 고통에서 우리를 해방시키는 것은 단 하나다. 바로 사랑이다. _소포클레스


*

(작가, 미술 기법, 역사적 배경 등 일체의 객관적 사실을 배제한 하루키의 감각과 추상표현으로 쓴 감상입니다.)

01_A_Sun_Beam.jpg Erik Werenskiold <Ray of Sunlight>, (1891) 출처:Wiki



+ 하루키 감상

1891년, (베렌시올은) 파리에서 머문 지 삼 년째. 세 번째 겨울을 맞이했다. 프랑스 파리 18구 솔르 거리Rue des Saules를 지나 '르 샤 누아르(검정 고양이)' 카바레를 향했다. 낯이 짧고 밤이 긴 파리의 겨울은 으슬으슬한 모습에 창백했다. 문득 처음 파리에 도착했을 때가 생각났다.


"

파리 중앙역에 내렸을 때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형형색색의 열기구가 떠있어 놀라움과 감탄을 연발했다. 프랑스 과학자는 곧 수많은 사람을 싣고 날 수 있는 마차를 만들 거야. 하늘을 나는 마차. 마차는 호수, 강, 산맥, 바다 위, 하늘 길을 따라 이동하겠지. 순간 전율이 일어났다. 어디선가 나를 부르는 목소리. (마중 나온 친구) 르노의 목소리였다. "베렌시올~ 베렌시올" 르노와 눈이 마주쳤고, 르노와 포옹을 했다. 르노를 따라 몽마르트에 있는 (그의) 집으로 향했다. 르노의 집에 도착. 짐을 풀고 저녁을 먹었다. 밖은 어둑어둑해졌다. 르노는 술을 사겠다는 말과 함께 나를 밤의 몽마르트 거리로 안내했다. 눈앞에 펼쳐진 모든 광경은 완전한 새로움. 노르웨이에서는 볼 수 없었던 휘황찬 가로등. 카바레. 술 취한 주정뱅이. 거리의 접대부. 집시의 눈동자. 고성과 음악소리. 나는 알 수 없는 불편함과 함께 흥분됐다. 파리는 보헤미안들의 (예술가들의) 신세계다.

"


세 번째 맞이하는 몽마르트의 겨울. 파리가 지겨워진 걸까. (고향) 노르웨이가 그리워진 걸까. 이번 겨울은 유독 잔인한 느낌이 든다. 노르웨이의 겨울밤은 길고 짙은 우울질. 대비되는 한낮의 짧은 햇살은 위로와 어머니의 품 같다. 노르웨이 겨울이 그리워졌다. 그리움은 점차 깊어지고 베렌시올은 시들어가는 꽃처럼 말라비틀어져 갔다. 암세포가 은밀히 퍼지듯. 베렌시올은 매일 규칙적으로 그림을 그렸고, 사람을 만났고, 잠을 잤다. 아무렇지 않은 듯.


...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 것만 같다.



&



1. 베렌시올. 리나리아 플프레아*야 이쁘지. 이파리 한 장이 떨어졌다. 베렌시올 베렌시올. 왜 말이 없어. 어디를 보고 있는 거야. 꽃 너 줄게. 너의 병을 낫게 해 줄 거야. 파란-보라색은 우울을 치료해. 베렌시올 베렌시올. 우울은 색이 없어. 대신 꽃을 든 사람의 색에 따라 그 색이 나타나지. 괜찮아. 좋아질 거야. 베렌시올 ... 베 ... 렌 .. 시 .. 오ㄹ


* 여름철 노르웨이 초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야생화


2. 땀에 흠뻑 젖은 채로 깨어났다. 한 겨울에 여름. 들판. 금발에 빨간 옷을 입은 소녀라니. 이건 악몽인가? 불안하고 두렵다. 시계를 보니 오전 10시를 넘겼다. 늦잠을 잤다. 문득 장 플로르가 생각났다. 지난 자신의 파리 전시회에서 처음 인사한 의사로 처음으로 내가 우울증이 심각한 상황이라는 것을 눈치챈 의사. 그가 자신을 소개할 때 '정신과 의사'라는 표현을 했다. 처음 들어보는 의료 분야여서 깜짝 놀랐었다. 프랑스에서는 아직 (정식으로) 인정된 의학이 아니란 설명도 기억난다. 서둘러 마차를 불렀다. 테르트 광장. 테르트 광장으로 빨리 가주세요.


3. 예약 없이 찾아왔지만 손님이 없어 바로 장 플로르와 상담을 시작했다. 그의 진료실에는 누울 수 있을 정도로 큰 (루이 15세 풍) 로코코 스타일의 소파와 단조로운 의자 두 개만 있었다. 왼쪽 벽에는 창이 있었고, 한낮의 햇살은 창을 뚫고 진료실 안으로 조금씩 전진하고 있었다. 책장과 낡은 책들, 인상주의 풍경화와 초상화도 보였다. 장 플로르는 소파에 않으라는 손짓과 함께 홍차를 건넸다. 그와 제대로 눈이 마주치자 바로 아침에 꾼 꿈에 대해 그림을 그리듯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4. 베렌시올 씨. 우울증이 심각한 것 같습니다. 우울증을 극복하려는 반작용도 있는 것 같고요. 전시회에서 처음 당신의 그림을 본 순간 직감했습니다. 특이한 건 베렌시올 씨의 경우 극단적 폭력성이나 자해를 하지 않고 '리나리아 플프레아'라는 꽃으로 미적 형상화를 시도하는 것 같습니다. '리나리아 플프레아'라는 상징이 우울을 극복하기 위함인지 더 깊은 우울에 빠지려 함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당신의 내면아이 잊지 마세요. 항상 지켜보고, 손 내밀 준비를 하세요. 어쩌면 당신의 예술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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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가 - 에리크 베렌시올Erik Werenskiold (1855 ~ 1938, 노르웨이)

+ 전기(1855-1880)


에리크 베렌시올은 1855년 노르웨이 헤드마크Hedmark 주의 콩스빙거Kongsvinger에서 군인 가문에서 태어나 1873년 크리스티아니아Kristiania의 드로잉 학교에서 율리우스 미델툰Julius Middelthun(1820-1886)의 지도로 정식 미술 교육을 받습니다.


1875년 악셀 엔더Axel Ender의 스튜디오에서 수학한 후, 아돌프 티데만드Adolph Tidemand의 권유로 뮌헨 미술학교에 입학합니다. 1879년 뮌헨에서 열린 프랑스 미술 전시회는 베렌시올의 예술 세계를 완전히 바꿔놓습니다. 특히 샤를 프랑수아 도비니의 작품을 접하면서 "독일 스튜디오 회화보다 프랑스 자연주의가 우월하다"는 확신을 갖게 됩니다. 이 시기 대표작 <피핑의 저녁Evening at Pipping>(1879)은 프랑스 자연주의의 영향을 보여주는 첫 작품입니다.


+ 중기(1881-1895)


파리 유학을 시작으로 베렌시올는 프랑스 자연주의를 본격적으로 수용합니다. 대표작 <농민의 매장A Peasant Burial>(1885)은 노르웨이 농민의 일상을 자연주의적 시각으로 포착한 걸작으로,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합니다.


이즈음 베렌시올은 오른팔이 마비되는 사고를 겪었지만, 스위스에서 재활을 통해 건강을 회복하고 다시 그림을 그렸습니다. 베렌시올은 노르웨이 민화 삽화가로도 큰 성공을 합니다. 아스뵈른센Asbjørnsen과 모에Moe의 <노르웨이 민화집Norske Folkeeventyr> 삽화 작업을 통해 독자적인 노르웨이 삽화 양식을 확립하며, 테오도르 키텔센과 함께 트롤Troll의 이미지를 창조합니다.


+ 후기(1896-1938)


1896년 오슬로 근교 리사케르로 이주한 베렌시올은 토르발트 에릭센, 올루프 볼드-토르네 등과 함께 '리사케르말레르네Lysakermalerne*' 그룹을 결성합니다. 후기인상주의의 영향을 받아 보다 표현주의적인 화풍을 보여줍니다. <미러링Mirroring>(1915)은 색채의 표현성이 두드러진 후기의 대표작입니다.


* '리사케르의 화가들'이라는 뜻을 가진 이 그룹은 1890년대 말 오슬로 근교 리사케르 지역에 모여든 예술가들의 공동체입니다.


노르웨이의 전통과 민속을 주제로 한 작품을 계속해서 제작한 베렌시올은 노르웨이의 역사와 문화를 시각적으로 표현하였고, 자연주의와 낭만주의의 요소를 결합해 당시 농민들의 삶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둔 작업을 계속합니다. 베렌시올은 1938년 (83세) 사망합니다.


+ 비평적 관점

일부 비평가들은 베렌시올의 지나친 민족주의 감정에 편향됨을 지적합니다. 특히 노르웨이 민화 삽화에서 보이는 민족적 모티프의 과도한 강조가 예술성을 제한했다고 주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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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특징


1. 아카데미즘적 자연주의 시기


초기 스타일은 뮌헨 미술학교에서의 교육을 기반으로 합니다. 정교한 데생과 세밀한 묘사, 엄격한 구도가 특징인 독일 아카데미즘의 영향이 두드러집니다. 해부학적 표현과 치밀한 원근법이 그 특징입니다.


2. 프랑스식 자연주의 시기


중기 스타일은 실내 작업에서 벗어나 야외 작업을 시도하며, 자연광의 효과와 즉흥적인 붓 터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장례식이라는 엄숙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강렬한 북유럽의 햇빛 아래 펼쳐지는 자연과 인물의 상호작용을 생생하게 포착합니다. 특히 뛰어난 관찰력과 구성력을 보여줍니다.


3. 표현주의적 실험 시기


후기 스타일은 실험적 태도로 특징지을 수 있습니다. 후기 인상주의의 영향으로 색채 사용이 대담해지고 붓 터치가 자유로워집니다. 감정의 표현이 형태의 정확성보다 우선시됩니다. 호수에 비친 풍경을 묘사하면서 현실과 반영된 이미지의 경계를 모호하게 처리하는 등 형식적 실험도 시도합니다.




+ 의식 안의 미술관

베렌시올의 <피핀의 저녁>(하기 그림)은 독일 아카데미즘 스타일에서 프랑스 자연주의로 전환해 가는 과도기적 특징을 잘 보여준 작품이다. _Wikipedia

북극과 가까운,

북극의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하지만, 영상의 온도와 푸른 자연이 있는 노르웨이.

북쪽 끝 국가. 노르웨이의 푸른 초원

한 여인이 한 곳을 응시하며 걸어가는 것 같습니다.

시냇물 소리, 벌레 소리, 바람에 흔들려 부딪치는 나뭇가지 소리.

정지된 이미지 너머의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사실적인 듯 혹은 내면의 나를 찾아가는 듯한 그림 같습니다.

werenskiold_erik_evening_at_pipping.jpg Erik Werenskiold <Evening at Pipping>, (1879) 출처:Wiki





"존슨의 음악이 가진 독특한 특징은

집 근처 할렘에서 그를 둘러싸고 있었던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음악적 주제를 통합하는 방식에 있다." _1일 1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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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P. 존슨의 Harlem Symphony 중 세 번째 악장인 “Night Club”은 1932년에 작곡된 할렘을 무대로 한 네 개의 묘사적 악장 중 하나로, 전통적인 클래식 악장의 형식을 재치 있게 비틀어 경쾌한 래그타임(“Innovation”) 주제와 재즈적 즉흥성을 통합한 작품입니다. _위키피디아


지금까지 100년. 앞으로 100년 Jazz가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는다면, 클래식이 될 거다. _하루키


20세기 중반까지 소외된 흑인 작곡가의 교향악 작품 중 하나입니다. 20세기 중반 제임스 P. 존슨(1894–1955) 재조명을 계기로 《Harlem Symphony》(1932)는 할렘 르네상스와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도시 문화를 음악적으로 구현에 높은 평가를 받는다. _위키피디아
Harlem Symphony: 3. Night Club





삶이 고양될지 혹은 무해할지, 의식 안의 미술관을 꿈꾸며 ... 감사합니다. 하루키




+ 출처


[1] 위키피디아: Erik_Werenskiold

[2] Bravefineart: Erik_Werenskiold

[3] Metmuseum: Erik_Werenskio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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