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휘슬러의 삶
한국에서 살 때 기독교에 관한 생각이 좋지 않았다. 기독교에 대한 안 좋은 기사들과 방송을 너무 많이 봤기에 내 마음속에는 좋은 이미지로 각인되어있진 않았다. 특히 최근에 사랑 제일교회를 비롯해 여러 교인들이 집회를 진행했다. 많은 수의 코로나 감염자를 발생시켰고, 그 감염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감염시켜 대한민국은 현재 패닉이 됐다. 현재 수도권은 거리두기 2.5단계를 시행 중에 있다. 이렇게 교회에 대한 이미지는 나에게 좋을 수가 없었다. 그때도 교회를 가기보다는 아보츠포드를 여행한다는 느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밴쿠버 외곽에 위치한 아보츠포드 지역의 비전 교회라는 곳을 갔다.
아보츠포드의 비전교회는 교인들이 많지 않은 교회였다. 소수의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레스토랑을 운영하시는 분도 계셨고, 사업을 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인원은 많지는 않았지만, 다양한 분들이 계셨다. 그분들은 자신들만의 교회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매주 일정 시간 교회를 대여해 예배를 드리는 형식으로 교회를 이끌어갔다. 시간은 2시간에서 4시간 사이였던 것 같다.
휘슬러로 간다고 말하며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했다. 이 교회에 꾸준히 나오지 못할 것이라고 전제를 깔아도 나에게 잘해주었다. 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면서 내 워킹홀리데이 앞날을 응원해주셨다. 교인들께서는 샌드위치. 떡볶이, 김밥 등을 해오셨는데, 남은 음식들을 나와 룸메 형에게 가서 먹으라고 싸주셨다. 매일 돈을 써가며 음식을 해 먹어야 하는 우리에겐 너무나 값진 음식이었고, 한국의 맛을 오랜만에 느낄 수 있어 더욱 특별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 날 저녁 목사님께서는 우리를 본인 집으로 초대해주셨다. 마당이 있는 큰 집이었는데, 그 마당에서 삼겹살과 목살을 구워서 우리에게 저녁 식사로 대접해주셨다. 사실 목사님 집에 있는 동안 종교적인 느낌이 많이 날 것이고, 교회를 나올 것을 권유하는 등 여러 가지 조건들이 따라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러한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다.
식사하기 전 기도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종교적인 행위와 조건들이 없었다. 목사님께서는 나에게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셨다. 모든 것이 새로운 그 시기에 어울리는 조언들이었다. 예를 들면 나도 한국인이지만 너무 한국인을 믿지 말고 여러 가지 일을 해봤으면 좋겠다.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해라. 등 혼자인 나에게 너무 따뜻한 말들이었다. 목사님과 대화한다는 느낌보다는 진정한 어른과 대화하는 느낌이어서 그 하루가 오랫동안 남았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를 역까지 차로 데려다주셨다. 민박집 가서 먹으라고 한국에서 보내온 재료들로 만든 김치를 한 포기씩 싸주시기까지 했다. 목사님 부부의 미소는 캐나다에서 가장 선했다.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많은 생각과 감정들이 교차했다.
- 타인의 선의 혹은 호의를 조건 없이 받아 본적이 언제였지?
- 언제부터 타인의 선의가 나에게 주어지면 의심부터 했을까?
- 선의를 선의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언제부터 어려웠지?
- 앞으로 이런 선의들을 나에게 왔을 때,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캐나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오늘까지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면서 든 생각은 나도 받은 만큼, 아니 더 베풀자 라는 마음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이것은 캐나다에서만 통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과 함께. 목사님 부부는 제대로 시작도 하지 못한 경직된 워홀러에게 작지만 특별한 해답 하나를 쥐어줬다.
선의를 조건 없이 그대로 받고,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만나거나 어려운 사람을 만나면 나의 시간, 노력, 기술, 인관관계를 동원하여 누군가를 돕고 싶다는 마음을 받았다. 받는 즐거움보다 베푸는 즐거움의 진정한 의미를 체득하기 위해 살아야겠다는 따뜻한 생각이 자연스럽게 마음속으로 파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