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 에곤 실레
21살의 에곤 실레는 비엔나를 벗어나 작은 도시 크루마우로 옮겨 작업을 계속 하였다. 하지만 젊다기보다는 아직 어린 십대 후반의 연인 발리 노이칠과 동거하면서 마을의 소녀들을 모델로 외설스런 그림을 그리는 그를 좋지 않게 여긴 마을 사람들에 의해 쫒겨나게 된다. 그래서 다시 비엔나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인근 소도시 노이렌바흐로 옮겨 갔다. 그는 그 곳에 정착하여 나름 대작을 마무리하려 하였고 이를 위해 인근 주민들과 큰 마찰없이 평화롭게 지내기를 바랐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반감이 적대감으로까지 비화된 주민들은 어린 소녀들을 유혹하고 유괴하였다는 이유로 그를 경찰에 신고하였다. 그는 바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을 때까지 감옥에 수감되었다. 재판에서 유혹과 유괴 혐의는 기각되었지만, 어린이들이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외설적인 그림을 전시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유죄로 인정되었다. 이미 21일간 구속되어 있었던 것을 고려하여 3일간의 투옥이 선고되었다.
24일간 감옥에 있는 동안 실레는 감방에 갇혀있는 상황을 묘사하는 그림 12 점을 그렸다. <자유의 문>은 그중 하나이다. 자물쇠가 달린 문 위로 창이 하나 높다랗게 붙어 있고 거기에는 창살이 달려 있다. 창살 너머 가까이로는 바깥의 다른 구획 문의 창틀 윗부분이 보이고, 멀리로는 외부의 건물 일부와 그 뒤로 나무가 보이는데 나뭇가지에는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들이 앉아 있다. 창살 밖 새들이야말로 자유를 구속 당한 이에게는 자유로움의 상징이다. 새들만큼 자유로운 영혼인 예술가를 그림을 이유로 투옥하다니, 얼마나 참혹하고 갑갑하였을까.
판사는 판결로 말하고 그 판사에게 선고받은 화가는 다시 그림으로 말한다. 예술에 대한 몰이해의 화살이 화가의 심장을 꿰둟어 죽였노라고. <성 세바스챤 자화상>에서 그는 성 세바츠챤을 통해 고통받는 예술가로서 자기 자신를 상징화하였다. 감옥을 그린 다른 그림의 제목을 통해 위트있게 말하고 있듯이 그는 감옥에서 처벌받은 것이 아니라 예술을 통해 정화되었다고 생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