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잘못이 아닌 내 잘못

그림자의 주인 5

by 도란

월요일 아침, 교실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들어가야 하나, 그냥 돌아가야 하나.


문을 열었을 때, 적당히 모른 척해주는 교실의 침묵이 무척 고마웠다. 곧이어 S가 붕대를 칭칭 감아 하얗게 부풀린 손을 보란 듯이 흔들며 교실로 들어왔다.


“무슨 자랑이라고 그렇게 붕대는 두껍게 감고 다니냐?”

“네가 그런다고 사람 마음이 네 마음대로 되냐?”

“남자 망신 좀 그만 시켜.”


여기저기서 날아오는 말들에 아침의 고요는 순식간에 흐트러졌다. 그러나 S에게는 그런 공격쯤은 쉽게 막아낼 수 있는 붕대 두른 주먹이 있었다.


어디서나 눈에 띄었던 S의 하얀 붕대는 단숨에 사건의 흐름을 바꿔 놓았다. ‘남자애 집착이 너무 심하다’는 수군거림으로 시작된 소문은 계속 내용이 바뀌더니 결국 ‘여자애도 뭔가 빌미를 줬다가 모른 척하니까 남자애가 손까지 그은 것 아니겠냐’는 쪽으로 수렴되었다. 요지는 여자애가 해도 너무 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그의 흰 손은 순애보의 상징이 되었다. 그의 피가 이겼다.


학원은 그 사건으로 오랜만에 활기가 돌았다. 우리 교실로 와서 내 얼굴을 보고 가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누군가는 무심하게 내 외모를 평가했다.



“뭐야, 별로 예쁘지도 않은데?”



나는, ‘예쁘지 않으니까, 공부라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떠올리며, ‘예쁘지도 않은 나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이상해’라는 말을 방패로 삼았다. 그렇게 해서라도 나는 멀어지고 싶었다. 이 모든 일을 남의 일처럼 여기고 싶었다. 그것이 불안으로 무너져 가던 나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던 최소한의 자기 방어였다.


역전된 여론 속에서 자신감을 얻은 S는 다시 내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나는 어두운 옷만 입고 다녔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지쳐, 최대한 고개를 숙이고 이어폰을 꽂고 걸었다. 나는 납작하고 흐릿한 그림자가 되고 싶었다. 자해 협박이 과연 사랑일까 싶었다. 그가 입시 스트레스를 만만한 나에게 풀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의 행동이 건강한 표현 방식이라는 생각은 단 한 번도 들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지만.



“그래도 너는 널 좋아하는 사람이 있으니 좋겠다. 내가 좋아하는 애는 나 쳐다봐 주지도 않는데.”

“나한테 어떻게 하는지 너도 봤으면서 그게 부럽다고?”

“너를 찌른 것도 아니고 자기 분을 못 이겨서 그런 건데 어쩌겠어? 솔직히 네가 다친 것도 아니잖아.”



이상하게도 그의 행동이 과격해질수록 내 편은 점점 줄어드는 듯했다. 소문 만들기에 열을 올리던 사람들부터 가깝다고 여겼던 친구들까지도, 한결같이 내가 찔리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기라고 했다. 처음에는 ‘남자 망신’이라며 S에게 으르렁거리던 그의 친구들은 시간이 지나자 한술 더 떴다. 남자가 소심하면 감정 표현에 서툴러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듣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소리가 너무 많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소문이 퍼질수록 ‘문제 있는 사람’으로 몰리는 것은 나였다. 강렬했던 피의 기억은 불안을 키웠고, 그가 또 다른 상처를 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는 점점 예민해졌다.


‘그가 또 다른 데를 그으면? 과다 출혈로 죽기라도 한다면? 사귀던 것도 아니고 그저 저 혼자 사랑이라고 주장하는 것뿐인데 어른들은 내 말을 믿어 줄까?’


끝없이 이어지는 질문들 속에서 나는 자꾸만 내가 원인이라는 죄책감에 휘둘렸다.




이전 05화애정선이 길어야 사랑이 이루어진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