벗어날 수 없는 목소리

그림자의 주인 3

by 도란

등원 순으로 그날의 자리를 고르는 규칙 때문에 개강 초에는 아침마다 자리 경쟁이 치열했다. 시간이 지나 각자의 ‘고정석’이 생기자 경쟁도 시들해졌다. S는 슬금슬금 내게 더 가까이 옮겨 앉더니, 마침내 내가 늘 앉던 자리의 복도 건너편 바로 옆자리를 차지했다.


책상 사이의 복도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만큼 좁았다. 불과 30센티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그는, 하루 종일 책상에 엎드려 나를 바라봤다. 해가 떠 있는 동안은 학원 안에만 있었으니, 햇빛보다 그의 집요한 시선을 더 자주 마주했던 셈이었다. 시선만으로도 충분히 괴로웠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연필을 중지와 약지 사이에 끼워 쓰는구나.”

“지우개는 네모난 걸 쓰네.”

“시계나 반지는 없네. 안 좋아하나?”

“오늘은 단추 달린 옷을 입었네.”

“손톱에 매니큐어는 안 바르는구나…”

“살짝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책에 필기를 하네.”



S는 나의 겉모습부터 사소한 행동 하나까지 종일 중얼거리며 생중계했다. 나는 마치 표본용 개구리가 된 기분이었다. 그의 중얼거림은 핀침처럼 내 몸에 박혔고, 나는 점점 움직일 수 없었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그도 말을 줄였다. 처음에는 ‘하루 이틀이면 그만두겠지’ 했는데 그는 집요했다. 그의 목소리는 아주 작아서 선생님들에게는 들리지 않았지만, 내 근처에 앉은 친구들은 모두 들을 수 있었다. 그가 중얼거리는 소리 때문에 수업에 집중할 수 없자 친구들마저 나를 채근하기 시작했다. 어떻든 해결해 보라는 것이었다.


“왜 하루 종일 나만 쳐다보며 엎드려 있는 거야? 그만하면 안 돼? 최소한 말은 안 하면 안 돼? 우리 다 대학 가야 하잖아, 너도 공부해야지…”


나의 설득은 애원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그는 항상 묵묵부답이었다. 더 이상의 대화를 거절하는 듯 얼굴을 책상에 파묻을 뿐이었다.


당연히 그를 피해 자리를 바꿔 보려고 했다. 용기를 끌어모아 이미 구축된 ‘고정석’이라는 견고한 규칙을 깨고 어제와 다른 자리에 앉아도 보았다. 하지만 내가 어디에 앉든 S는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복도 건너 내 옆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90여 개나 되는 책상이 있었지만 그를 피해 앉을 수 있는 자리는 하나도 없었다.


그만 좀 하라는 말을 반복한 지도 한 달이 훨씬 지난 어느 날, 내 책상 위에 쪽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쪽지에는 전날 내가 타고 간 버스 번호, 내린 시각, 그때 내 표정이나 모습이 자세히 적혀 있었다. 중계도 모자라 이제는 기록까지 하다니… 써도 자기 일기장에 써야지 왜 굳이 나에게 보여주는 걸까?


일부러 그가 보는 앞에서 쪽지를 구겨 버려보기도 했다. 모두가 들으라고 큰 소리로 화도 내 보았다. 쪽지에 눈길도 주지 않고 바로 책을 펼쳐 자습을 시작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다음 날도, 또 그다음 날도, 하루도 빠지는 날 없이 쪽지는 내 책상에 배달되었다. 제발, 그만해.



“네가 ‘말’ 하지 말라고 해서 ‘글’로 쓴 건데?”



어떻게 그걸 그렇게 받아들일까? 말이 통하기는 할까? 절망스러워, 나는 말문이 막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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