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의 주인 2
재수생에게도 봄은 찾아왔다. 봄바람은 수험생의 마음을 먼저 흔들었다. 봄햇살이 우리를 계속 부르던 탓에, 몸은 근질거리고 마음도 한층 너그러워져서 처음 세웠던 각오가 한풀 꺾이기도 했다. 대학에 간 친구들은 ‘축제’라는 걸 한다더라.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더라. 어제는 어느 반 누가 야자를 땡땡이쳤는데, 금세 다시 잡혔다더라. 소문들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랐다.
“너희가 원하는 모든 것이 다 대학에 있어. 거기선 살도 빠진다니까?”
선생님들도 봄바람의 위험을 아셨는지 우리를 다독이셨다. 우리는 나들이 대신 다음 모의고사를 준비했다.
자리의 가까움은 곧 관계의 가까움이었다. 근처 친구들과는 함께 도시락을 먹기도 하고, 음악 취향을 공유하기도 했다. 그중 S는 내가 근처에 있으면 유독 자리를 슬그머니 피해 버리는 남학생이었다. 눈에 띄게 반복되는 그의 행동에 주변에서 싸우기라도 했냐고 물어오기 시작했다. 그와는 인사 정도밖에 나눈 기억이 없어, 왜 그런지 영문조차 알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결국 그에게 왜 그러냐고 물어보았다. 그는 얼굴을 붉히며 알아듣기 어려운 말을 한참 중얼대고는 이내 도망치듯 자리를 피해 버렸다. 나는 조금 무안했지만, 금세 그 일을 잊었다.
계속 나를 피하던 S가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을 가로막았다.
“너 어제 10시 17분에 버스에서 내렸다며?”
그가 말을 걸어온 순간, 나는 대낮에 도깨비를 만난 것처럼 놀랐다. 그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은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말의 내용도 질문인지 뭔지 도통 파악할 수 없었다.
“내려서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귀에 걸고,
왼쪽으로 한 번, 오른쪽으로 한 번 고개를 돌린 다음 횡단보도를 건너더라.”
나는 어제 내가 어떻게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는데, 그는 마치 그 장면을 직접 본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어떻게, 왜 그가 이런 걸 다 알고 있는 거지? 무엇보다 S의 집은 학원 근처라고 들었는데, 정반대 방향으로 귀가하는 나를 어떻게 본 걸까? 설마, 나를 따라온 걸까? 이런저런 생각에 소름이 돋았다.
“너 뭐야? 그런 걸 어떻게 알아?”
“나는 다 알아.”
‘다 안다’는 S의 말은 마치 머리 위에 떨어진 새똥처럼 당황스럽고, 또 불쾌했다. 앞뒤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괜히 서늘한 기분이 들어 제발 아무 일 없이 조용히 넘어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래서 그날 이후로도 평소처럼 나를 피해 다니는 S가 오히려 고마울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다른 계획이 있었던 것 같다.
푸른 오월, 그가 돌을 던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