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나는 청춘의 시기에, 원치 않는 집요한 시선과 일방적인 구애에 시달렸다. 그때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단단하지 못했던 마음에 새겨진 그 기억은 여전히 내 마음 한구석에 검은 멍처럼 남아 있다. ‘겨우 그 정도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내게는 오래도록 지속된 두려움이자 생생한 어둠이었다. 지금도 비슷한 순간을 마주칠 때면 나도 모르게 그림자 뒤로 숨게 된다.
산 중턱에 있던 학교에는 시내버스도 들어오지 않았다. 셔틀버스를 놓치면 차를 얻어 타거나 택시를 불러야 했다. 집에 가는 길은 항상 두려웠다. 오늘도 집 근처에 그 사람이 서 있지는 않을까? 이렇게 불규칙한 내 귀가 시간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불안감은 집으로 가까워질수록 더 커졌다. 몇 번의 질문만으로도 내가 어디 사는지 그는 알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를 피해 여러 번 이사했다. 잘못도 없이 숨는 내가 비겁하게 느껴졌지만, 마쳐야 할 공부와 꾸리고 싶은 미래가 있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너 바보야? 왜 그러고 살아?”
누군가는 쉽게 말한다. 하지만 막상 내가 겪게 되면 객관적 판단조차 어렵고 능동적으로 벗어나기도 힘들다. ‘이건 아니다’ 싶을 때조차, 이미 얽혀버린 인생의 고리를 끊고 나오기란 쉽지 않다. 심지어는 그 상황을 스스로 합리화하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나를 위협하는 곳에 머물면서 “어른이니까 견뎌야지”, “살아가려면 어쩔 수 없어”라고 내게 말했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몸과 마음이 병들고 지쳐버렸다. 내 청춘은 그렇게 소리 없이 소모되었다. 결국 나는, 내가 꿈꾸었던 그 어떤 것도 될 수 없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자기 삶을 책임진다는 것’이라지만, 무엇을 할 수 있게 된 나이가 무엇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보증하는 것은 아니다.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다고 갑자기 사람 보는 눈이 생기지 않는다. 내 의견을 항상 똑 부러지게 말하는 강단이 저절로 생기는 것도 아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머리카락 길이를 규제받던 사람이 해가 바뀌었다고 하루아침에 ‘어른’이 될 수는 없다.
글로만 배웠던 ‘주체성’과 ‘독립성’은 늘 뒤를 밟히던 불안한 나날 속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다. 내 생각은 물론 행동도 타인에게 통제당했고, 결국 내 그림자조차 내 것이 아니게 되었다. 끝내 나는 내 삶의 주도권마저 잃어버렸다. 나는 삶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내 상처들을 축소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냈다. 더는 나를 쫓아오는 사람이 없게 되고, 비로소 내가 내 그림자의 주인이 되었을 때, ‘다시 나를 찾았다’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제는 뒤를 돌아보며 걷지 않아도 되는 것이 가장 기뻤다.
“대체 무슨 일이었길래?”
요즘의 시선으로 보면 답답하게 느껴질 이야기일 것이다. 벌써 ‘멍청하다’는 댓글이 달리는 듯하다. 그렇지만 그런 시절을 보내봤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한 개인의 세계에는 기준과 경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만약 뭐가 뭔지 모를 때에는 최소한 이 두 가지 질문만큼은 자신에게 해보자.
‘나는 지금 존중받고 있는가?’
‘나는 행복한가?’
이 두 질문과 더불어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원하는 삶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요소들은 무엇인지 부지런히 살펴야 한다. 자존감을 지키고 나 자신을 먼저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내가 다시 건강해진 방식이었다.
충고나 조언은 하면 안 된다고 했는데, 결국 해 버렸다. 인생의 소용돌이에 휩쓸린 누구라도 자기 자신을 미워하지 않고, 다시 사랑하고 사랑받으며 살아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