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1년 만에 그만두고 싶었겠어 - 6
오늘도 원장님께 그런 말을 들었다.
‘제발 학원 안 망하니까 걱정좀 하지 말아라!’
허구언날 그런 생각을 하고 사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얼마나 불안한걸 티내고 다녔는지 창피할 지경이다. 내가 사장도 아니고, 부원장이지만 결국 월급받아 먹고사는 일개 직원인 주제에 나는 원장님보다 더 운명에 안달복달할 때가 많다. ‘걱정은 지혼자 다 하지’ 소리를 들어도 할 말 없어 보이지만, 내게는 어찌보면 당연하다. 나도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다. 사실 나는 첫 번째 회사를 다닐 때, 단 하루라도 회사가 안 망할 거라고 맘편히 생각하며 다녀본 적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몇 개 팔렸어? 왜 그거밖에 안 팔린 건데?’
첫 회사는 아버지의 지인 소개로 들어간 곳이었다. 직원이 단 둘, 나 포함 셋이었는데 아버지도 물건을 대는 입장이다보니 매일 저녁을 먹을 때면 똑같은 질문을 했다. 심하면 하루에 두세번씩 물어보기도 했다. 문제는 그렇게 잘되는 회사였으면 직원이 그것밖에 안됐을 리 없다는 점이다. 브랜드 네이밍을 쌓기에는 서사도 없고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 누가 보기에도 해당 사업은 이미 늦어 있었다.
동대문에서 물건을 떼다 팔다보니 다른 곳과 차별화된 점도 없었다. 자체제작 상품이라고 해봤자 상품을 전공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사장님이 중국 어느 공장에서 조금 더 싸게 떼왔다는 거 말고는 내세울만한 점도 없었다. 사장님은 OEM방식으로 사업을 하며 여기저기 물건을 제작해 맞춰주는 일을 하다가, 업체들이 자체제작을 일반 기조로 더이상 물건을 사가지 않고, 아예 저렴함을 모토 자체제작을 하는 브랜드까지 나와버리자 그제서야 안되겠다 싶어 이 사업을 시작한 것이다. 거기까지 그에게는 얼마나 많은 타이밍이 있었을까. 그러나 수많은 머뭇거림이 결국 후발주자라는 피치못할 사정을 만들어냈다.
처음 얼마간은 모델을 구하기 어려워서 내가 모델을 했는데, 그때 디자이너에게 얼마나 욕을 먹었는지 모른다. 잘 좀, 제대로 좀 해보라고. 그녀도 답답했겠지만 나도 그랬다. 살아생전 관련 일도 해본적 없고, 평소 남에게 보여지는 일에 아무런 관심도 없던 내가 하루아침에 그럴듯하게 모델일을 해낼리는 당연히 없었다. 일은 일대로 하고 팔자에도 없는 모델 일도 하고 집에오면 매일 왜 장사가 그것밖에 안되는지 한소리 들어야 했다. 그때부터 업무를 대하는 내 태도가 잘못 형성된 것 같다.
직원에게는 직원이 할 일이 있고, 사장에게는 사장이 할 일이 있다. 각자의 책임과 역량이 다르고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이 다르다. 사장은 직무에 알맞은 사람을 뽑는다. 너무 당연한 삶에 이치인데,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직장에서는 모두 ‘내가 알맞은 사람’ 이라고 말해줬는데 첫 직장에서 받은 뿌리깊은 인상 때문에 상황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가만히 내 할일만 하면 뭔가 심각하게 잘못된 것 같고, 내 직장이 망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게 된 것이다.
뭘 해도 안되는 것만 같은 곳은 빨리 나와야 하는데, 그때는 나도 어려서 그 사실을 잘 몰랐다. 하루에 몇 개가 팔리든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포장, 상품 업로드, 모델, CS, 마케팅 전부 하고 있었는데 그 이상 뭘 할수 있었을까? 심지어 첫 회사는 나오기도 힘들었다. 사장이 계속 붙잡았기 때문이다. 그 돈주고 너만큼 일 시킬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말을 하면서. 지금 생각해보면 욕인데 그때는 칭찬인 줄 알고 들었다.
사장은 내게 ‘이 일아니면 네가 어디가서 뭘 하고 살 수 있겠냐.’ 고 말하기도 했다. 그 말에 너무나 화가 나서 그 후 몇 년간은 그 말을 부정하기 위해 살았는데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우리는 그냥 헛소리라고 치부하면 될 말에 너무나 의미부여를 해서, 때때로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그때 그 말도 그렇게 넘겨버렸어야 했다. 내 안에 얼룩으로 남지 않게. 그러지 못해서 몇년을 허비했다.
그러다 결국 코로나19가 심해져 장사가 안되자 하루 아침에 회사가 사라졌다. 끝까지 재수없는 곳이었다. 그렇게 없애버릴거면 왜 말도 안되는 소릴 하며 사람을 붙잡았을까? 마지막날 대표가 골프를 치러가며 전화로 회사는 접을 거지만 자기가 수요일에 들를 수 있으니, 수요일까지 출근 하라고 명하던 게 생생하게 기억난다. 그때부터 나는 회사란 하루아침에 망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내가 충분히 월급이상의 일을 하고 있나 스스로에게 자꾸 되묻는 나쁜 습관을 갖게 되었다.
그렇다면 습관을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바로 그냥 안 하는 것이다. 생각을 덜 하게 할 수는 있지만 어떤 생각을 할지는 아직 의학에 영역에서도 무리다. 내 정신을 바로잡는 건 오로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우선은 나부터 시도해보련다. 원장님 그만 괴롭히는 것이 내 새로운 목표이다. 근래들어 가장 심각한 불경기에도 꿋꿋하게 잘 버티는 학원을 다니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는 태도는 아니니까.
이젠 회사가 망할까 안 망할까 그만 불안해 하련다. 다만 하루하루 열심히 가르치고 일하련다. 학생에게 확신을 주는 강사가 될 수 있기를 바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