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1년만에 그만두고 싶었겠어 - 7
어제 밤에서 퇴사하지 않은 내 전 동료에게 편지를 보내는 꿈을 꾸었다. 처음에는 잘 하고 계시냐고 아마 잘 하고 있을 거라고 시작했으나, 편지를 쓰면서 나는 점점 그때로 돌아갔다. 한번 더 한다면 까짓거 그렇게 죽고 못살지 않겠노라, 인생도 잘 살면서 일도 잘 하리라 다짐하면서 결국 끝에는 알고보니 편지가 아니라 이곳에 올릴 글을 쓰면서.
물론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잘할 자신은 없다. 일고 삶의 밸런스를 맞출 자신도 없다. 다만 오늘의 글에 목표가 있다면 당시의 열정과 노력을 자세히 들여다보고 나를 이해해보고자 할 뿐이다.
3년차 만에 친구와 처음으로 오키나와 여행을 갔다. 해변가를 지날 때 타고 있는 버스로 파도가 가만가만 쳐 올라왔다. 하늘색과 바다색이 비슷하게 흐리멍텅했는데 그래서인지 더 현실감각이 없었다. 그림 속에 들어온 것 같았다. 시간이 영영 흐르지 않고 여기 그대로 고정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해외라서 전화를 받지 못하는 것도 좋았다. 친구와 따로 한 칸씩 앉아서 오랜만에 회사생활도, 다가오는 프로젝트 걱정도 하지 않고 바다만 쳐다보았다. 웃긴 표현이긴 한데 당시 여행이 내게는 회사와의 ‘이별 여행’이었던 것 같다.
이별 여행을 갔다오면 마음이 정리되는 사람도 있고, 새롭게 마음을 확인하기도 한다던데 내게는 전자였다. 안달복달하던 오키나와에서의 2박 3일은 내 마음속에 들어앉은 무언가를 내려놓게 했다. 어떤 마음은 평생 가져갈 수 없음을. 왜냐면 내 삶은 반복된다. 풍랑은 반복되지만 어떤 풍랑을 겪을지는 내가 선택한 것이기에 바꿀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한 후 나는 본격적으로 퇴사 준비를 할 수 있게 됐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팀과 가장 자랑스러운 회사에게서 나갈 결심을.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말이 있다. 내 생각엔 사랑은 사랑이다. 다만 평생갈 사랑은 아닌 것이다. 내 자신보다 사랑을 우선시하는 순간 나 역시 사랑하기 위한 수단이 되어 ‘사랑하니까 이 정도는’ 하고 견디게 된다. 내가 그랬다. 전 회사의 팀원들은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다. 말로만 좋은 사람들이 아니라 실수를 하면 괜찮다고 먼저 말해주고 해결 방안과 재발 방지를 함께 고민해줬다.
회사생활에서 일어나는 자잘한 투정을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동시에 프로젝트 성공이라는 큰 목표에 있어서는 진지한 시각을 함께 공유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서로 예의를 지켰고, 서로 이해할 수 없는 힘듦을 인정하는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회사를 그만둘 때 무엇보다 고민됐던 건 동료들이었다. 어디서 또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솔직히 그럴 수 없을 것 같았다.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다.
그런데도 회사를 왜 그만뒀냐고 묻는다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너무 몰려 있었기 때문이다. 전 회사를 다닐 시절 지인들과 우리집 집들이를 했는데, 회사 생활이 너무 힘들다는 푸념을 좀 듣다가 그녀가 조심스럽게 상담을 받거나 신경정신과에 가보는 건 어떤지 권했던 것이 기억난다. 그녀는 밤새 내가 소리지르는 걸 들었다고, 발끝까지 힘을 꼿꼿이 주고 내가 이따금 소리를 질렀다고 했다.
회사 근처로 이사하는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그런지, 그 당시엔 유독 누군가 날 죽이러 오는 꿈을 많이 꿨다. 살면서 한번도 꿔본 적 없는 종류의 꿈이었다. 애초에 나는 꿈을 많이 꾸는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 시기에 유독 꿈을 많이 꿨다. 새로 이사간 집에 나와 같은 얼굴을 가진 여자가 자꾸 들어오려고 벨을 눌렀는데 알고 보니 우리 집 안에 이미 들어와 있었다. 분명 12명이 산다고 들은 집에 자꾸 열 세 번째 사람이 칼을 들고 돌아다녔고, 어느 날 꿈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다가 내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누군가 너를 죽이려 한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널 깨우는 수밖에 없다.’고 말한 적도 있다.
당시 회사 생활도 정말 최악이었는데 심하면 하루에 30분 내지 한 시간씩 써서 며칠을 같은 이유로 혼나기도 했다. 절망적이라 사주를 잘 본다는 곳에 전화를 해 물어봤더니 무슨 주술같은 방법을 알려주면서 내게 이상한 게 붙었다는 소리까지 하는 게 아닌가. 오컬트는 좋아하지만 그렇게 심취하지는 않아서 꺼림칙해 뭔가를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시기가 있었다. 단순히 일이 힘들고 사람이 힘들고를 넘어서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듦을 견뎌야 했던 시기가.
이별여행을 하고 퇴사를 준비하면서, 생각보다 내 발목을 잡았던 건 안 좋은 기억들이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견뎠는데 그때는 안 하고 이제와서 퇴사를 한다니. 애초에 그때 그만뒀으면 될 일 아닌가? 왜 다른 사람들과 겨우겨우 호흡이 맞아가는 이 때 그만두려고 하는 걸까. 내 스스로도 1년동안 이뤄낸 것들이 아까웠다. 다른 사람들 만큼이나, 아니 다른 사람들보다도 더 내가 퇴사하는 게 스스로 아까웠다.
그럼에도 해야 했다. 힘든 상황도 견디고, 그럴 수 있다고 견디는 단계에 이르니 비로소 보인 것이다. 어떤 때에는 시간만이 답을 알려준다. 더는 갈 수 없다고. 여기서 마무리 되어야 할 떄도 있다고. 이별 여행을 통해 나는 답을 알았다. 더 할 수는 없다고. 그렇게 회사를 그만뒀고 지금에 와서는 안다. 회사가 모든 원흉이었다면 좋겠지만, 회사 탓도 어느 순간을 지나면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것을. 그래서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당시 힘들었던 내 삶을 꺼내 널어 놓으려고 한다. 햇볕에 잘 말리면 눅눅한 것도 사라지겠지. 그리고 언제 냄새 났나 싶게 다시 입을 수 있을 것이다. 감정은 시간에 의해 휘발된다. 남은 기억으로 나는 또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평가도 감정도 없이, 그저 그렇구나 하고 인정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