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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Sep 25. 2024

아픈데 회사는 가야하고

나라고 1년만에 그만두고 싶었겠어 - 9

첫 번째 회사를 다닐 때, 여러 가지 퇴사 사유가 있었지만 그중 하나에는 글을 쓸 여유가 없는 이유도 있었다. 일을 하다 보면 정말 정신이 없다. 나도 사람이니 회사 밖에서도 살아 있어야 하는데, 집에 오면 피곤해서 누워있게 되고 그러면 하루가 끝이 났다. 회사가 끝나면 학원도 다니고 부업도 하는 사람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집에 가면 나는 그야말로 넉다운 상태가 되어 다음날 아침까지 침대에 누워 있곤 했다.


어딘가에서 한국 직장인의 출퇴근 통계가 1시간 정도라는 말을 본 적 있다. 출퇴근길에 1호선, 2호선, 혹은 9호선을 타본 사람들이라면 격하게 공감할 것이다. 개인적인 경험상으로 1호선은 워낙 길다보니 하도 이상한 사람이 많다. 혼자 노래를 부르면 양반이고 손잡이를 잡고 철봉 운동을 하거나 아무나 붙잡고 그렇게 살지 말라고 화를 내는 사람들을 종종 봤다. 열차는 자주 멈췄고 사람들이 쓰러져서 연착이 되는 일도 잦았다. 


2호선은 사람이 많다. 많아도 너무 많아서 내가 열차를 타는 게 아니라 꽉 끼인자루 속에 쏙 끼어버린 것 같다. 움직일 수도 없어서 특히 문쪽 통로에 끼어버리면 옴짝달싹 못하고 사람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어떤 시점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고속도로에서 가끔 보이는 가축 우리가 이런 심정일까. 최대한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기다리다 보면 교대, 강남을 지나면서 그제서 좀 사람다운 환경이 된다. 


스트레스를 받아서인지 환경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 몸관리를 잘 못해서인지 회사를 옮기고 한동안은 미주신경성실신으로 매일 같이 쓰러졌던 적도 있다. 주 5일정도 회사를 가면서 눈앞이 깜박거리고 서 있기가 힘든 감각에 바닥에 엎어졌더니 옆에서 이 사람 자리 좀 만들어 주세요 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또 언제는 그냥 회사를 가는게 너무 힘들어서 주에 두세번씩 울면서 출근했던 적도 있다. 그러면 옆에서 무슨 일 없는 거냐고 처음 본 사인데도 선뜻 물어오는 여자들이 있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생가보다 그런 선의들이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것 같다. 


직장 동료가 맨날 아파서 골골대면 짜증날 법도 한데, 전 직장의 사람들은 그래도 내게 이겨낼 의지가 있음을 그러나 쉽지 않아 답답해 하고 있음을 알아주는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나도 티내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처럼 별 생각 없이 다니고 싶었다. 그런데 회사를 다니다 뜻하지 않게 보면 요즘 너무 마른 것 같다느니 건강 상태가 괜찮아졌냐느니 하는 말들을 자주 듣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처음부터 몸이 아프다는 말을 하면 안 됐는데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서 ‘아픈 사람’ 이 되어버리고 만 것이다. 


1년차의 흔한 실수였는데 그때의 나는 남들에게 그렇게 비춰지는게 퍽 싫었다. 일도 잘하고 자기관리도 완벽한 무언가가 되고 싶었다. 특히 내 팀장님은 병든 닭같은 나를 많이 신경써주는 사람이었다. 그런 티를 내지 말라고 사회적인 약속을 들먹이며 나를 혼냈어도 됐을 터인데 내게 먼저 병원에 가보라고 했던 것도 팀장님이었고 회사를 다니며 몸무게가 8kg 씩 빠졌을 때, 자주 울고 출근했을 때도 먼저 알아보고 괜찮냐고 물어봐 주시곤 했다. 그럴 땐 괜찮은 척 하려고 해도 쉽지 않았다. 


누군가 내 아픔을 알아준다는 게, 특히 이 사람같지 않은 노동 환경 속에서 ‘안 괜찮지?’ 하고 물어봐 주는 누가 있다는 게 침착함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팀장님 앞에서면 나도 모르게 자꾸 허물어져 버렸던 것 같다. 그만큼 그녀는 좋은 사람이었다. 나는 완벽하지도, 쓸모없지도 않은 애매한 팀원이었는데 지금도 그렇지만 한 상태에 오래 견디는 걸 힘들어하는 내게는 제일 버티기 힘든 상황이었다. 많은 퇴사 요인 중에는 나약한 내 자신을 내보였다는 수치심도 있으리라. 


지금의 상사는, 원장님은 내가 아프면 다소 주위를 챙기지 못한다는 걸 안다. 많은 일이 주어지면 꾸역꾸역 다 하려다가 결국 체한다는 사실도. 그래서 학원이 충분히 커질 때까지 내게서 자꾸 일을 앗아 간다. 처음에는 자존심 상했는데, 지금은 그러려니 한다. 잠깐 일하고 말 사이가 아니니까. 1년차가 아닌 3년차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까. 지금의 나는 과거의 팀장님 만큼 나를 살펴야 하는 것이다.


아픈 티를 내고 싶진 않지만, 사람의 나약함이라는 건 재채기와 같다. 숨기고 싶어도 자꾸 나오고, 티내고 싶지 않다고 해서 완전히 숨겨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언니의 말버릇처럼 그냥 얼버무려 보리다. 그럴 수도 있지. 그럴 수도 있어. 아파도 회사에는 가야 한다. 그러니 스스로를 너무 미워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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