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1년만에 그만두고 싶었겠어 - 10
퇴사를 하기 전, 나는 칭찬도 받고 혼나기도 하고 더 잘할 수 없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고 잘했다고 너밖에 없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그렇다면 회사에서의 나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동료들은 내가 있어서 좋았다고 했다. 함께 일할 때에는 든든했고 도움이 되었다고. 하지만 결국 1년의 시간밖에 함께 보내지 못했다. 맞춰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1년이라면 이제 겨우 손발이 맞기 시작할 때 떠나는 건 어찌보면 무례한 일이기도 하다.
‘더 이상 못하겠어요.’ 라는 말을 듣기에 내 동료들은 너무 좋은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끔은 생각한다 동료들을 생각해서라도, 또 그들과 함께 했을 때 별 걱정없던 나를 생각해서라도 더 다녔어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이 역시 자의식 과잉이다. 내가 들어가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왔다. 회사는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고 어디에도 ‘나여야만 하는 곳’ 따위는 없다. 그렇다면 나는 떠나야만 하는 사람이었을까?
이미 설명했다시피 그 의문에 내 동료들은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다. 뭐가 답인지도 모르면서 그냥 살아가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사실 삶의 대부분을 이룬다. 학원일을 하면서 새롭게 1년 차를 맞이하게 된 내가 배운 가장 큰 깨달음이다.
학원은 이용자가 중복 구조인 특이한 구조의 교육 서비스 업이다. 또한 하루 쯤 빠질 수 있고 진행하는 모든 과정을 일종의 ‘쉼’처럼 여기는 성인용 취미 수업들과는 다르게, 어린 시절의 교육은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돈을 내는 사람들은 일종의 위기 의식을 느끼고 등록한다. 그러나 서비스를 받는 주체가 등록하는 본인이 아닌 학생이기 때문에 얼마나 수업의 질과, 본인의 노력 등을 가지고 서비스의 질을 평가하기보다는 학원 외에서 발급되는 ‘성적’ 이라는 결과값으로 그간의 학원 생활이 얼마나 의미있는 시간이었는지 또 돈값을 했는지를 가늠해볼 수 밖에 없다.
이 ‘성적’은 학원에서 어찌할 수 없는 공공기관의 영역이다. 시험문제를 어떻게 내는지 어느 정도는 추측할 수 있지만, 결국 ‘학원’과 결과를 담당하는 ‘학교’는 별개의 영역이라 서비스의 핵심 주체인 ‘학생’의 역할이 절대적이다. 학생은 학원의 역할을 잘 이해하고 충분히 받아가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최근 쉬는시간에 뭔가 놓고와서 교실에 다시 들어갔다 글쎄 ‘어차피 학원 선생님이 다 해주겠지.’ 라고 말을 들은게 아닌가. 교육의 주체가 이렇게 생각하니 학부모들에게 영향이 안 갈수가 없다.
공부를 하는 방법, 무심코 생각하지 못하고 넘어가는 풀이법, 또는 접근법 외워야 하는 것들을 얼마나 외웠는지 체크하고 자신의 약점과 직면하게 하는 이 모든 것들을 학원에서는 제공한다. 다른 학원에서는 어디까지 제공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렇다. 나는 늘 고객이 나로써 최고의 경험과 비교불가능한 혜택을 가져가길 바라는 사람이다. 업계를 바꾸고 직종을 바꾸어도 내가 가진 신념은 변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이들은 지금까지 내가 상대했던 모든 고객들과 다르다. 학원에 오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일까? 해당 과목에 자신감이 없는 아이들이다.
그래서 어느정도 결과가 나오면 쉽게 만족하려고 한다. 심지어는 낮은 점수에 익숙해져버린다. 왜? 자신은 늘 그랬으니까. 대부분의 아이들이 제 돈으로 교육비를 내지 않기 때문에, 책임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아니다. 이런 종류의 아이들은 보통 학습된 것이다. 해봤자 안된다는 것을. 이 때 학원 선생으로써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공부하는 방법을 체득시켜서 낮은 효능감과 자신감에도 문제를 푸는 ‘습관’을 들여놓도록 하는 일이다.
교과목 학원에 학기중에 등록하는 아이들 중 다수는 이미 실패를 경험한 아이들이다. 열심히 안할 거면 그만두라고 하면 답답하고 슬픈 마음을 내비친다. 실패가 습관이 되기까지 아이들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 돈을 내도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을 방향성을 잡아줘도 체득하는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문제는 그때까지 학부모가 기다릴 수 없다는 점이다. 학부모의 눈치를 봐야 하는 입장에서 수업 하랴, 당근들고 잘한다 잘한다 칭찬하랴, 채찍들고 열심히 좀 해라 이렇게 해서 되겠냐 혼내라 내 입장은 늘 난처하다.
그러다가 성적에 대한 고민이 끝나면 또 그만둔다. 이제 할만큼 했기 때문이다. 허탈함을 느껴야 할지 뿌듯함을 느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처음에는 화가 나기도 했다. 열심히 했는데 왜 그만두지? 하지만 원래 모든 교육의 목표는 자립이 아닌가. 그렇게 나간 자리엔 또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온다. 이게 이 직업의 특징인 것 같다. 그렇게 받아들이다보면 사람 사는 일이 그렇듯 이전의 고민들이 잊히고 고민도 무엇도 없는 순간이 이따금 찾아온다.
내게는 또 새로운 1년이 지났고 내 꿈인 3년차를 위해서는 아직도 받아들여야 할 게 많다. 그러려니 해야 하는 것들도 많다. 부족한 내 자신, 어쩔 수 없는 업무 구조, 또 그 사이에서 그러려니 하지 못하는 나. 인생은 어쩌면 빙글빙글 도는 회전목마 위에서 장애물에 고꾸라지기도 하고 또 즐기기도 하면서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중얼거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언제쯤 익숙해질까?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