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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Sep 30. 2024

'엄마'같은 상사요?

나라고 1년만에 그만두고 싶었겠어 - 11

학원에서 일하게 된 계기중 하나는 매우 무속적이었다. 퇴사 후 전 회사 직원들과 찾아갔던 신점 집에서 ‘이번 회사까지가 좀 싸가지가 없었다. 퇴사 원인을 너한테 찾으려고 하지마라. 곧 연락이 올테니 기다려라’ 고 말해 주면서 단박에 내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 외에도 꽤 그럴싸한 말들을 했다. 이번 상사는 엄마 같을 테니 기다리라는 말이 특히 그랬다. 


엄마? 우리 엄마 같은 사람이요? 했더니, 그것보다 훨씬 ‘엄마’ 같은 사람이라고 네가 잘 되길 바라서 혼내기도 하고 또 달래기도 하는 그런 엄마. 우리 엄마는 엄마도 아니라는 건가?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또 대체 집 밖에서 어떻게 엄마를 만난다는지 몰라서 의아애 하던 참이었다.  점을 보고 이주 후 원장님께 전화가 왔다. 학원을 할 생각인데 같이 일해볼 생각 없냐는 말이었다. 다른 누구도 아닌 원장님이라니. 너무 놀라 점괘를 말해주니 글쎄 독실한 기독교인인 원장님은 이렇게 말씀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을 빌려 너를 내게 보내주시는구나.'


원장님은, 원래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이 분은 내 오랜 은사님이다. 중학교 2학년 때 벌써 이십년이 다 되어가는 때 우리는 처음 만났다. 이렇게 오랜 될 줄은 그때의 나도 지금의 나도 예상 못 했다. 사실 그때는 학원에 맨날 뺀질대는 애 하나가 너무 꼴보기 싫어 어떻게 하면 안 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던게 내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년에 졸업 후에도 일년에 한두번씩 연락하던 게 이어져서 오늘 날로 닿았다.


중학시절 나는 사나운 사람이었다. 선생님꼐는 특히 그랬다고 했다. 건드리면 물 것처럼 굴었고, 실제로 사람 죽일듯이 사납게 말한 적도 많다고. 선생님은 내 말에 상처를 많이 받아서 고등학생이 된 내가 ‘다시 수업을 받고 싶다’ 고 하자 ‘올게 왔구나’ 하고 철렁 하는 마음이 드셨다고. 그런데도 나를 내치지 않으셨고 기어코 대학 가는 날까지 함께 해주셨다. 학생을 골라받으면 안된다는 게 원장님의 지론이다. 덕분에 마음고생은 좀 많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인연으로 남았다. 지금 우리 학원은 원장님 때문에라도 그만두지 않는 학생들이 많다. 1년차 자영업자는 퇴사율을 생각하면 1년차를 잘 지나올 수 있었던 건 그들의 역할이 크다. 


정신을 좀 차리고, 원장님께 사과도 하고 직원으로서 그리고 부원장으로서 일하게 되기까지는 많은 일이 있었다. 매년 연락하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사업 이야기를 했었다. 팟캐스트가 유명할 때는 팟캐스트를 한번 해보자고 했었고, 유튜브가 유명할 때는 유튜브를, 웹소설 회사를 다닐 때는 웹소설을 써보자는 얘기를 했었다. 원장님은 추진력도 있고 여기저기 스파크가 튀면 바로 시작하길 좋아하는 사람이다. 그중 절반은 현실이 되지 못했지만 결국 학원이 차려졌지 않은가?


원장님을 보면 일단 꿈꾸는 것의 중요성을 느낀다. 시도해봐야 기고 아니고를 알 수 있다. 법에 저촉되지만 않는다면 원장님은 삶의 모든 문을 두드리고 열리는 쪽으로 일단 가보는 사람이다. 내가 다시 글을 쓰게 된 데에는 원장님의 그런 마음가짐이 많은 도움이 됐다. 난 시작도 전에 그만두고, 안 될 거라는 생각에 도전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원장님은 그런 내 모습을 답답해했다. 원체 성격이 급한 사람이다. 왜 시작도 안 해보고 안 될 생각부터 하냐고 몇 번이고 나를 호통쳤다. 그래서 4년만에 다시 나와 삶과 회사에 대한 글을 제법 정갈하게 써나갈 수 있었다. 


물론 우리도 싸울 때가 많다. 원장님 말로는 나의 일방적인 짜증이라지만, 나도 사회인이다. 짜증만 내지는 않는다. 이따금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시는데 누군가 브레이크를 잡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냔 말이다. 예를 들어 최근에는 한 학생에게 학원 홍보물을 전적으로 맡겨버리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처음에는 농담이겠다 싶어, 또 학생에게도 일단 시도해 보는 것 자체가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게다가 어차피 오래 할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우리가 어린 학생에게 금전적인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것 자체가 없으니까. 받는게 없으면 책임감도 없기 마련이다. 그런데 첫 결과물이 나왔고, 나쁘지 않았지만 내 입장에서는 학원이름을 달고 나간다면 당연히 일정 이상의 퀄리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피드백을 준비했는데, 글쎄 원장님은 ‘여기서 더 뭐라고 할 순 없어.’ 라며 만나서 하나하나 설득해 보겠다는 게 아닌가. 


누가 학원 홍보 물을 만들면서 그렇게 까지 하나? 이번 한 번 만들고 말 건가? 학원 홍보물은 앞으로도 매번 검사하고 나가야 할텐데. 사실 서로의 입장에서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당연히 없다. 학생은 돈 한푼 안받고 하는데 그런 귀찮은 일을 당해야 하나 싶을 것이고, 우리는 뻔히 돈주고 쓸 수 있는 직원들에게 효율적으로 지시하지 못하고 학생 손을 빌릴 필요가 굳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과정에서 학생이 사정이 있어 일정을 어겼다는 점도 나는 걸렸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수행평가 우리가 모두 봐줘야 하는 게 아닌가. 


원장님의 지론은 그랬다. 얘기해서 고치면 된다며, 잘 얘기해 보겠다고. 아이들과 일하다보면 어쩔 수 없는 건가? 신기한건 초등학생, 중학생은 생각보다 약속을 어기지 않는다는 점이다. 약속은 고등학생, 특히 2~3학년이 잘 어긴다. 말이 더 잘 통하면 통할수록 이상하게 우리는 빠져나갈 구멍만 보나보다.


아이가 하기로 한 홍보물 제작은 원장님과 원만한 합의 끝에 결국 잘 진행되었다.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지만 원장님은 초치는 소리 하지 말란다. 하지만 내가 모르는 어떤 지혜가 있기에 학원을 오픈할 수 있었고, 또 60%가 폐업한다는 ‘자영업 마의 1년차’를 잘 견디신 분이시니 더 이상 토달지 않으련다. 


생각해보면 나도 원장님에게 그런 학생이었는지 모른다. 왜 쳐내지 않을까 싶은 이상한 학생. 그러나 원장님이 그런 나를 견뎌 주셨기에 지금의 내가 있고, 지금의 원장님이 있다. 우리 삶이 그렇다. 나 혼자 잘난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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