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1년만에 그만두고 싶었겠어 - 12
오늘은 학생이 학명 그만뒀다. 예전의 나라면 하루종일 우울했을 것이다. 내가 뭘 잘못했을까? 어떤 말이 학생으로 하여금 또 학부모로 하여금 그만 둬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만들었을까? 수업을 좀 더 잘 했다면, 말을 좀 더 잘 했다면 달랐을까? 이러다 맡은 반이 아예 없어진다면 어쩌지?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난 고민의 스페셜리스트였다. 이정도 거리를 던져주면 온종일 고민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이번엔 그러지 않았다. 학생이 한 명 그만 뒀군. 평소 나에게 질문을 자주 하는 학생이라 친절하게 저 이제 혼자하게 되었습니다. 라는 연락까지 보낸 것이 어찌보면 기특하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만 다닌다고 얘기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줬고 원장님에게 한 명 그만둔대요 하고 전했다. 그 이상 내가 할 수 있는게 없기 때문이다.
내가 심한 말을 해서 그만뒀다면, 그건 나의 문제다. 하지만 그 아이 말고는 아무도 그만두지 않았다. 특별히 그 아이만 불러놓고 뭐라고 한 적은 없다. 열심히 하라고 한 적은 있지만 모두에게 다 하는 훈계라서 특정짓기는 어렵다. 학생에게 특이점이 있다면 그만두가 직전 몇 번 개인 사유로 안나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이유로, 가령 가족 여행으로 학원을 한 번, 두 번 안나오다가 그만나오는 경우는 흔하다. 아이가 가기 싫어해서 몇 번 안오다가 그만 나오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 두번 안오다 보면 아이 마음에 이런 생각이 싹트기 때문이다. 왜 그동안 열심히 갔는지 의심스러운 기분이. 이렇게 안 가고자 하면 안 갈수 있는데. 나 역시 많은 학원을 그런 식으로 그만뒀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가 갔다.
생각해보면 선후관계가 뒤바뀌어 있을 수도 있다. 이미 학원에 마음이 식었기 때문에 한 두 번 안나가게 된 것이고, 안나가게 되니까 비로소 몸과 마음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이다. 많은 이별을 그런 식으로 하지 않나. 크고 작고 할 것 없이.
어떤 이별은 그러려니 하고 찾아오기도 한다. 오늘 오랜만에 간 찻집에서 처음 만난 사람과 우연히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녀가 그런 말을 했다. 누군가를 가장 좋아하는 순간에 헤어질 수도 있는 것 같다고. 그냥 더는 이 관계를 계속할 마음이 사라진다는, 정말 그런 사소한 마음의 문제로. 거기에는 누구의 문제도 없으리라. 그녀도 알고 나도 알았다.
저번 회사들을 다니면서 나는 그 ‘마음의 문제’를 어찌하지 못해서 끙끙 앓곤 했다. 왜 나를 선택해주지 않았을까. 분명 분위기 좋았는데 그냥 그러려니 흘려보내는 걸 못했다. 그렇게 안달복달 한 결과 팀 내 성과는 좋았지만 내 마음은 늘 불지옥이었다. 좋았던 시절은 찰나와 같았고 안좋은 일만 계속되는 것 같았다.
실제로 나는 늘 결렬된 협상, 까인 계약, 잘 지내다가 헤어진 친구들, 결국 그만둔 직장들 같은 것들에 매달렸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뭔가가 있었다가 한 순간에 팍 사라진다는 게 한동안은 믿겨지지가 않았다. 내 기억속에라도 붙들어 놓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계속 곱씹었다. 왜 결렬 됐을까, 왜 까였을까, 왜 우리는 더 친구가 아닌걸까. 그만두지 않고 계속 다녔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들.
쓸모없다고는 하지 않겠다. 밥 먹듯이 걱정을 하는 해본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이야기 할만한 분야가 아니다. 걱정은 늪과 한 번 하기 시작하면 도무지 헤어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유일한 해결책은 늪이 없다는 걸 깨닫는 것 뿐이다. 모든 건 내 마음에서 시작된 환상이라고 인정해 버리는 것. 물론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도 아주 가끔씩 되는 주제에 잘난척 하는 거니까.
그러나 걱정의 가장 슬픈 점은 우리를 현실에서 자꾸 내몬다는 데 있는 것 같다. 내 현실, 그러니까 여전히 나는 이 학원의 부원장이고 학생 수는 줄어든 만큼 늘어나고 있으며 고등부가 불안하면 중등부로 채우면 된다는 현실. 어쩌면 수업 준비를 하는 품이 줄어들어 그만큼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으리라는 현실.
지난 주 토요일에는 원장님과 다른 강사님과 함께 저녁을 먹다가, 문득 원장님이 학원만 하니 너무 힘들다고 우리 붕어빵 장사를 해서 즐거운 학원을 만들자는 소릴 했다. 내가 대체 무슨 소릴 하는 거냐고 되묻는데, 다른 강사님도 신이 나서 좋다고 자기가 굽겠단다. 그래서 셋이서 앉아 무슨 맛을 넣으면 좋을까 한참 고민을 했는데 그 상황이 그렇게나 웃겼다.
결국 내가 만들겠다는 교재부터 만들고 붕어빵 좀 구우면 안 되겠냐고 했더니 원장님이 나를 흘겨보며 ‘학원 얘기해서 분위기 쳐졌잖아 어떡할거야.’ 라고 말하는 게 아니겠나. 웃겼다. 붕어빵은 역시 학원을 위한 구원투수가 아니라 100%사심이었던 것이다.
그만두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 사람들도 없었을 것이다. 붕어빵도 없었겠고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어떻게 하면 직업적으로 더 성장할 수 있을까 이 필드에서의 고민도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따금 있는 이 ‘안될 땐 다 내려놓음’ 도 있었을지 모르겠다. 난 이제 될대로 되라 하고 있다. 내가 다니라고 해! 라고 한다고 다니는 것도 아니고, 다니지 말라고 한다고 안 다니는 것도 아니니까. 다만 어떤 유연성은 필요하겠지만 그것도 내가 원한다고 당장 생기는 게 아니다.
풍랑을 만나면 그동안은 풍랑에 휩쓸리곤 했다. 오늘은 풍랑에도 한 번 견뎌봤다. 나도 1년만에 그만두길 몇 번이나 했는데 그만두는 사람들에게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참고 견디고 또 그러려니 해보려고 한다. 똑같은 소릴 몇 번이고 하는 사람은 아무리 해도 벗어나지 못한 거라는 말이 있다. 내 마음도 그렇다. 방법은 하나다. 말하고 또 말하는 것. 괜찮다고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