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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Oct 09. 2024

커리어 계발만큼 중요한 건

나라고 1년만에 그만두고 싶었겠어 - 14 

오늘은 원장님이 텃밭을 구경시켜 준다고 해서 잠시 학원 밖으로 나갔다. 학원 앞 작은 처마, 외부 화장실 옆에는 작은 선반 모음집이 있는데 원장님은 거기서 고수니 토마토니 하는 것들을 기른다. 신이 난 얼굴이셨다. 어디서 보기에 고수는 3일 만에 싹이 올라온다고 해서 기대했는데 일주일 동안 싹이 올라오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단다. 잎이 많이 누래져서 가치지기를 한 나무도 하나 보여주었다. 가지를 싹 잘라내고 비를 맞게 했더니 새 잎도 나고 완전히 살아났다고. 확실히 전에 이런 식물이 있었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신선한 빛이었다. 비는 약이야 약. 하는 말과 함께 커가는 것을 보고 있자니 나도 어린 시절로 돌아온 것 같았다. 


오늘은 아침에 언니를 데려다주고 왔는데, 그러면 대게 한시간이나 일짝 출근하게 되어서 하루가 부쩍 피곤하다. 하지만 언니가 최근 회식을 한 탓에 영 정신을 못차리길래 어쩔수 없었다. 언니와 나는 차에서 여러 부당한 것에 대해 이야기 하다가 커리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커리어는 대표적인 허상중 하나인 것 같다. 우리 모두 존재하는 것처럼 이야기 하지만, 실제로 나의 몇 년을 무어라 정의한다는게 가당찮은 일인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커리어 계발은 많은 사람들에게 자기관리의 영역으로 마땅히 그래야만 하는 것으로 여겨지곤 한다는 이야기를.


회사를 다닐 때, 나도 커리어 계발에 대한 압박을 많이 받았던 것 같다. 사실 회사를 다니고 있으면 사람들이 가만 놔두질 않는다. 이것 해야 한다 저것 해야 한다. 자기계발도 해야 하고, 동종 업계 사람들과 업무 공유도 해야 되고 발전은 하면서 한 자리에서 3년차 이상의 경력도 쌓아야 한다. 달리면서 나는 걸 동시에 하라는 말인가?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신경쓰지 않다가는 뒤처지고 만다. 한국사회에서 뒤쳐진다는 감각은 실로 무서운 것이다. 뒤처지지 않으려고 대학에 가고, 공백기를 있어보이게 포장하고 뭐라도 한줄 남겨보려고 하는 이 흐름 속에서 우리는 단 한순간도 멈춰 있질 못하는 것이다. 어쩌면 멈추면 큰일 날 것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멈춰 본 적 없어서 방법을 모르는 것 같기도 하다.

 

내게도 커리어 계발에 대한 압박은 큰 스트레스였다. 심지어는 직장과 상관없는 모임에 가도 사람들이 커리어 얘기를 한다. 게다가 내가 갔던 커리어 수업들은 (물론 모든 커리어 계발 수업이 같지는 않겠지만) ‘생각을 이렇게 먹어보자’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음가짐으로 많은 게 달라진다는 건 사실이지만, 생각은 생각일 뿐.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결국 내가 움직여야 하는데 나라는 사람은 조직체계, 급변하는 세상 내에서는 굉장히 미약한 존재라 작은 일에도 쉽게 흔들리고 회사를 그만 두네마네 고민하게 된다. 그러니 커리어에 대한 건설적인 논의라는 것은 사실상 환상에 가깝다. 


우리 자체가 무균 상태에 놓일 수가 없는데 자꾸 우상향 존재로만 스스로를 판단하니 거기서 괴리가 오는 것이다. 상향보다는 후퇴에 가까울 때도 더 많지 않은가? 한 걸음 갔다고 생각했지만 두 걸음 갔을 때도 있고 남들이 보기에는 탭댄스를 추고 있을 때도 많을 것이다. 그런 걸음의 연속이 결국 커리어인데 커리어는 목표가 ‘우리가 어떤 사람’ 으로 보이고 싶어하는데 있다는 점에서 불가능할 수밖에 없이 태어났다. 실제로 정의는 다를 수도 있지만 주위에서 ‘커리어’라는 말을 사용할 때를 보면 실제로 그렇다. 고도로 발단한 사회에서는 결국 허상을 그럴듯해 보이게 쓰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 


언니에게 다음 분기의 목표를 물어보았다. 살아있는 거란다. 내 목표도 그렇다. 학원을 다니면서 일하고 그냥 살아있는 게 내 목표다. 일에는 연속성이 필요하다. 내 하루도 그렇다. 오늘은 상담을 했고 가격을 실수로 안내했다. 실수는 왜 자꾸 하는 걸까? 원장님은 괜찮다고 했지만 하루종일 우울했다. 내게 닥친 위험이라면 사실 이런 것들에 더 가까운 것 같다. 그러려니 하지 못하는 모든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어쩌면 내가 이겨내야 하는 일들은 이런 것들에 가까울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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