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차는 어디까지 배웠고 무엇을 할 수 있나? 친구들과 이야기 하다보면 1년차는 일을 좀 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늘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 같다. 나는 1년차는 이 일을 계속 배워 나가고 이 조직의 일원이 되고 싶은지 아닌지 결정할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다. 일을 배운다는 것은 단순히 업무를 배운다는 말이 아니다. 업무는 사실 육개월 정도만 해도 익숙해진다. 그보다는 업장마다 배울 수 있는 게 다른 것 같다. 업무를 할 때 어떤 인내심이 필요하고 조직 사회란 어떤 것인지도 저번 회사에서 처음 배웠다. 일을 하지 않으면 배울 수 없다. 어떤 조직이 나한테 맞는지 아는 것도 능력이지만 적응할 만큼 다녀봐야만 보이는 것들도 있다.
지난 세 개, 현재까지 네 개의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업계가 나와 맞지 않는 경우, 회사의 조직 방향성이 나와 맞지 않는 경우, 또 분위기가 맞지 않는 경우를 겪었다. 업계가 맞지 않았던 회사의 경우 직무도 나와 맞지 않았다. 마케팅 업무는 시류에 맞게 포토샵과 함께 다양한 툴을 다루면서 적절한 밈을 쓸 줄 알아야 하는데 내게는 그런 능력이 없었다. 상사는 내가 톡톡튀는 아이디어로 회사를 살리지 못한다고 아쉬워했다. 하지만 그런다고 없는 능력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나는 포장이나 상품 판매 A/S 등으로 빠졌는데 나의 전공이나 내가 생각했던 직무와 너무 달라 힘든 시간을 겪었다. 그러다 깨달았다. 마케팅은 내 영역이 아니구나. 글을 쓰는 것 자체는 지금도 그때도 여전히 크게 어렵다고 느끼지는 않는다. 잘 쓰는 건 물론 다른 영역이지만 해야 할말을 하는 것 자체는 쉽다. 그러나 물건을 파는 건 완전히 다른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쑥맥이었고, 왜 그렇게까지 해서 물건을 팔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내가 파는 물건이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다고.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자아 효능감마저 잃어버린 것이다. 결국 일년 몇 개월 이상 일할 수 없었다.
두 번째 회사는 들어가마자 일을 시켰지만 생각보다 나와 맞았다. 원고를 보고 피드백을 하고 각종 인터넷 서점에 유통을 하는 일인데, 숫자와 날짜가 잘 맞아야 한다는 점에서 번거로웠지만 글을 보는 걸 좋아하는 내게는 잘 맞는 일이었다. 다만 점심값이 지원되지 않고 왕복 세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에 1호선을 타고 오가야 한다는 점이 내게는 퍽 힘들었다. 운동을 할 시간이 없어서 홈트를 시작했는데 그마저도 야근을 하면 흐지부지 되기 일쑤였고, 야근은 당연히 많았다.
작품 런칭 날짜가 정해지면 작가와 함께 마지막 확인 작업을 하던 날들을 생각하면 즐겁고도 힘든 시간이었다. 그때는 지금보단 젊어서 힘듦보다는 즐겁다는 생각을 주로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작품 계약 건수, 매출 등등으로 계속 고민이었고 알게 모르게 압박을 받았다. 나는 상사가 하는 말들에 그러려니 하는 게 안됐다. 누군가 한마디 하면 오늘 밤에라도 가서 개선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종류의 불안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수직으로 된 회사문화는 당연하게 그런 식으로 말을 얹게끔 되어 있다. 그게 바로 상사의 역할인데 회사를 다니는 내내 나는 ‘충고’를 ‘수정 고지 사항’ 정도로 알아 듣고 힘들어 했다.
세 번째 회사를 다니면서 나는 제대로 된 회사생활을 배웠고, 그것이 나랑 정말 맞지 않는다는 것을 배웠다. 나는 인정 욕구가 큰 사람이었는데 내가 하던 직무는 아무리 잘해도 그 성취를 온전히 인정받을 수 없었다. 항상 저평가 받는다는 생각에 시달렸고 일을 하다가 부당하게 대우받는 날에는 밤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러려니 해야 했는데, 그게 안됐다. 회사생활은 귀머거리 삼년 벙어리 삼년 맹인 삼년 이라는 말이 딱이었는데 나는 자꾸 튀어나갈 생각만 했다. 복지도 괜찮은 곳이었고 동료들도 정말 좋은 분들이었는데 나는 회사에 맞지 않았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면서도 일이 없을 때에는 일을 손수 만들어서 어필해야 하는 시간들이 힘들었고, 분위기를 맞춰야 하는 것도 힘들었다. 어디든 그 회사만의 압박감이 있고 견뎌내야 하는 것들이 있다면 내게는 견뎌낼 수 없는 것들이 있었다. 오래 다닐 수 없었다. 나와 애초에 맞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세 번째 회사를 그만두면서 나는 나한테도 완전히 질려버리고 말았다. 언제까지 회사를 그만두고 유목 생활을 할 건지 이쯤되면 그냥 아무데나 들어가서 짱박고 있지는 못할망정. 뭐가 그렇게 불만이라고. 세 번째 회사가 나름 괜찮은 조건을 가진 곳이라 더욱 그랬다. 네 번째 회사라고 천국은 아니었다. 일단 스타트업이 다 그렇듯 괜찮은 복지가 없다. 커리어가 어디로 발전해나갈 수 있을지 청사진조차 그리기 어렵다. 짜여진 판에서 일을 하는 게 아니라, 판을 개척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스스로 일을 잘했다 아니다 리뷰하는 일 역시 어렵다. 특히 나의 상사의 경우 일을 꾸준히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기 때문에 성실하게 일하는 것 이상의 어떤 리뷰를 하기를 어려워한다.
게다가 업무 시간이 다르니 연봉도 다르다. 월급 몇시만원의 무게가 이렇게 다를 줄 누가 알았을까? 처음 몇 달 간은 괜찮았지만, 적은 월급은 점점 내 생활을 답답하게 만들었고, 미래에 대한 청사진을 그릴 수 없어 우울했다. 더불어 학부모와 아이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에서 공격이 늘 들어왔던 것 같다. 신뢰를 주는 말이 어린 아이들에게는 쉽게 냉정한 사람으로 비쳐 보이기도 했다.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하지만 그러려니 하면서도 빌미를 제공하지 않는게 이 일의 핵심이다. 나는 그 핵심을 잡기가 퍽 어렵다.
직장 생활부터 스타트업 생존기까지 4년간 배운 것도 많고,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걸려 넘어진 부분도 많다. 삶은 늘 배움의 연속인 것 같다. 결코 잘한다고는 생각할 수 없지만, 뭔가가 되기 위해 배워나가는 게 아니다. 배워 나가다 보면 무언가가 되어 있는거지. 그렇게 생각하고 출근 하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