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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Oct 04. 2024

중요한 건, 맞아도 아픈걸 아는 것

나라고 1년만에 그만두고 싶었겠어 - 13

무슨 일이든 맷집이 중요한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완벽주의자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실 맞는 걸 굉장히 두려워 하는 사람들 같다고, 물리적인 폭력을 제외하고 사람은 살면서 남에게 흘씬 얻어맞으며 살 수 밖에 없다. 맞은 것도 아니라고 생각 할 정도의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면 물론 좋겠지만 사실 아픈 걸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되니까 일부러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결국 중요한 건, 아픈 건 아프다고 외치면서 맞아서 맷집을 키우는 수 밖에 없다. 안 맞을 수 있다면 물론 좋겠지만 말이다.

 

물론 다른 완벽주의자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나는 맞는게 싫어서 완벽주의를 지향하게 됐다. 사람들에게 혼이 나면 그렇게 분할 수가 없었다. 내가 왜 혼이 나야 하지? 혼이 난다는 행위 자체가 싫어서, 그런 식으로 남에게 못나게 평가 받는 게 싫어서 늘 고군분투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남의 마음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고, 어찌할 수 없는 부분까지 해서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들었다. 왜 나에게 무어라 기분 상할 말을 하고 (물론 당신이 그 사실을 알았는가 몰랐는가는 둘째치고), 나는 그 말에 상처를 받는가. 이런 식으로 타인의 말에 내 기분이 심히 좌지우지 되니 늘 불안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대표적으로 좋지 않았던 기억들을 꼽자면 내 처음이자 마지막 공식 사수가 있었던 시절을 뽑고 싶다. 내 사수는 나보다 나이가 서넛 많은 사람이었는데 뭔가가 틀리면 짜증스럽게 말하기를 주로 했다. 나를 가르쳐야 한다는 생각에 뭔가 틀리면 내게 더 화를 내기도 했다. 하루는 다른 사람이 실수를 하자 ‘지혜씨가 하면 죽었지만, 누구씨는 괜찮아요.’ 라는 소리를 함으로써 나와 다른 사람간에 차이를 두기도 했고 실수하면 ‘죽을래?’, 라던가 ‘이런 걸 실수해?’ 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그렇게 심하게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렇게 혼나고, 못난 모습을 보이는 게 다른 것보다 더 힘들었던 것 같다. 


이유를 찾자면 나는 항상 남들보다 부족할지 모른다는 자신감 떨어지는 상태로 한평생을 살아왔기 때문이다. 직장 생활하면서 이런 태도가 좋지 못하다는 건 처음엔 꿈에도 몰랐다. 겸손한 태도가 늘 좋은 것이라 생각했던 나에게 계속해서 시험의 연속이었다. 죄송합니다. 사과하고 집에 와서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 생각하고 고치려고 하고 반복되다 보면 결국 나를 갉아먹게 된다. 왜냐면 잘한다 못한다의 기준이 나에게 없고, 한번 내뱉어진 마음에 대해서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말이란 그렇다 한 번 내뱉어진 것들은 책임 없이 돌아다닌다. 돌이켜보면 모른 것들이 그렇다. 뱉은 사람에게는 생각보다 책임이란게 없다. 내뱉어진 말은 그때부터 제작자의 의지와는 다르게 기능하며 위로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말을 어떻게 활용할지는 전적으로 듣는 사람에게 주어진 권리인 것이다. 


시 합평 수업을 들었던 시절이 떠오른다. 비슷한 상황이다. 첫 회차만큼 고난이었던 적이 없다. 남들 앞에서 시를 발표해 본 적 없는 나는 눈앞에서 내 시에 대한 이러쿵 저러쿵이 그렇게 듣기 싫었던 적이 없다. 그냥 좋은 얘기만 해줬으면 좋겠는데, 오리무중에 아리송하다는 이야기만 있어서 기분이 상했고 처음엔 그냥 수업을 환불받을까 고민되기도 했다. 듣다보니 나한테만 그러는 게 아니라서 참을만 하긴 했다. 또 생각해보니 다른 사람보다 일찍 써서 냈으니, 얕은 생각으로 어쩌면 남들의 귀한 시간을 쓰는 게 아닌가 고마움도 들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포기하지 않고 다음 회차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원장님께서는 첫 합평수업이 걱정된다는 나에게 합평에 정답은 없다고, 합평을 위한 합평도 있으니 네 시를 소중히 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 회사 생활도 합평과 크게 다를 바 없는 것 같다. 다음 날 어떻게 일어나서 회사가냐 고민되던 시절, 나는 나를 소중히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냥 출근하다가 콱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맷집이 약해서 그냥 맞기도 전에 없어져 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지금도 맷집이 생길 만큼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맷집이 약한 사람에게 중요한 건 맷집을 키울 만큼 맞는 방법도 있고, 그냥 그렇다는 걸 알고 적당히 피해가는 일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맞아도 아픈건 아프다. 부정하지 말자. 험한 세상, 맞아서 나아진다면 좋겠지만 언제나 그런 법도 아니니까. 나는 다만 우리가 좀 덜 아프고 덜 힘들고 덜 외로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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