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1년만에 그만두고 싶었겠어 - 8
생각해보면 나는 참 직장과 일이 구분이 안 되는 사람이었다. 사실 웹소설 PD 일 자체가 좀 그런데, 작가에게는 밤낮도 주말도 없기 때문이다. 원고를 받고 막히면 같이 이야기하고 또 런칭때가 다가와서 100화 가까이 되는 원고를 한 번에 올려야 할 때면 이제 작가도 PD도 함께 정신없이 달려야 할 때가 많다. 편집하랴 표지 확인하랴, 작가는 최종 수정하랴 실시간 연재가 되지 않게 페이스 조절하랴 한창 바쁘다. PD지인들 사이에서는 바쁘서 이만 사라진다는 말 대신 ‘저 이번주에 런칭작이 있어서요.’ 라는 말을 대신 쓰기도 하니까 말이다.
사실 디지털 콘텐츠쪽 전공을 한 나로써는 처음에는 이런 생활이 뭐가 문제인지 잘 몰랐다. 졸업할 때까지 모든 과목의 중간/기말 고사가 팀플에 프로젝트 기획 발표였던 탓에 밤낮없이 엎었고 시간 날 때면 밤이든 주말이든 만나서 채워나갔다. 시간을 못 내면 ‘저만 바쁜줄 알아.’ 하고 날선 말이 오갔고, 저학년때부터 팀플을 잘 해나가지 않으면 ‘프리라이더’로 찍혀서 친구들이 하나둘 복수전공, 부전공으로 빠지고 휴학하는 고학년 때부터 살아남기 힘들어졌다. 잠 못자는 생활이 모두의 기본이었고 잠은 죽어서도 잔다는 말을 많이들 했다.
첫 번째 회사는 출퇴근 시간만 네다섯시간 됐기에 개인 시간이랄게 없었고, 두 번 째 회사인 웹소설 출판사에서는 가진 게 열정뿐이었다. 대학 시절부터 익숙해진 ‘성실한’ 생활 패턴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에 유독 나를 몰아세웠었다. 건강에 적신호가 켜지기 시작한 것도 그때쯤이었다. 하루는 새벽 4시까지 원고를 보고 누웠는데, 다리가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몸이 나무토막이 된 것처럼 무거웠고 잠들고 일어났는데 푹 잔 기분이 들지 않았다. 그 습관을 못버려서 다음 회사때도 같은 생활 패턴을 유지했더니 몸무게가 단기간에 7~8kg 씩 빠졌고 위경련이 와서 퇴근을 못하고 앉아 끙끙대거나 처음보는 동료의 도움으로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다. 20대 후반으로 진입하면서 빼다 쓴 체력이 슬슬 한계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몸 건강만큼 신경쓰지 못한건 정신 건강이었다. 가장 최근 직장인 학원으로 이직하고 나서 확실하게 내 나사가 어디하나쯤 빠져 있다는 걸 알게 됐다. 학원은 분명 1년차치고 잘되고 있는데, 원장님도 나를 괴롭히지 않고 그저 그런 귀찮은 일만 있지 나를 압도하는 힘듦도 그다지 없는 이 상황이 자꾸 어딘가 어색하고 불편했던 것이다. 누군가에게 잘하라고 쪼이고 혼나고 내 스스로 그래야만 할 것 같은 상황에 계속 처해있는 것에 너무 익숙해서 그렇지 않으니 ‘내가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게 맞나?’ 싶어서 되려 불안해졌다.
가장 특이점이 온 순간은 집에 와 식사를 마치고, 집안일을 좀 한 다음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안하는 순간이었다. 뭐라도 할까? 수업 준비는 매일 학원에 가서 하고 있고 우리 학원은 단과반은 주 1회 뿐이라 그만큼으로도 충분하다. 원장님은 잘 하고 있다고 하는데 내가 잘 하는 게 맞을까? 이렇게 아무것도 안하는 데?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만큼 더 열심히 해야 되지 않을까? 원래 나는 어떻게 여가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었을까? 불안 요소가 없으면 직접 만들어쓰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내 이런 걱정을 듣던 원장님은 이제 질릴 지경이란다.
‘그럼 뭐, 대체 어떻게 해줘야 돼. 이미 잘하고 있다니까!’
직장 상사까지 괜찮다고 하는데 나는 뭐가 그렇게 문제인 걸까. 여전히 방법은 없다. 세상의 모든 일이 그렇듯 말이다. 나는 그냥 불안해하고, 불안함을 감추고자 괜한 짓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할 뿐이다. 갑자기 닥치는 대로 사람을 만나고 집에 가는 길에 지쳐하고, 감당못할 일을 시작하고 하기 싫어서 힘들어하고. 때로는 그냥 빈 채로 견뎌야 하는 시간이 있다는 걸 받아들이지 못해 나는 또 돌아돌아 시행착오를 겪었다. 깨달은 게 있다면 불안에 먹이를 줘서는 안된다는 거다. 불안은 얌전히 받아먹고 진정하는 녀석이 아니다.
먹으면 요구하고 더 요구한다. 마치 불안한 상태가 일반적인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나는 늘 불안해지고, 일반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되고 이상한 실수를 반복하고 또 후회한다. 불안한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결국 한가지 방법밖에 없다. 불안한 상황을 견디고 불안하다고 인정하는 일 뿐이다. 아 불안하다. 불안해. 잘 될지도, 잘 할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잘 안될 수도 있겠다. 그러면 어떡하지 모르겠다. 하고.
어쩌면 일에 익숙해진다는 건 불안한 세상살이를 받아들이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다고 어쩔 수 없겠다고 체념하는 일이 생각보다 우리 삶에 필요다. 언제나 잘할 수는 없으니까. 그때그때 최선을 다했으면 됐다고 누군가, 아니 내가 나에게 말해주고 싶건만. 내 말은 나에겐 잘 들리지 않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