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지혜 Sep 17. 2024

전 회사도 괜찮은 곳이었다.

나라고 1년 만에 그만두고 싶었겠어 - 5

 

퇴사를 하면 하면 한동안 회복기를 갖게 된다. 얼마나 시달렸는지에 따라 여행을 가기도 하고 집에서 늘어져 있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두 번 정도 휴식기 없이 한 달에서 몇 주만에 재취업을 한 적 있는데 다음 회사에서 또 충실한 나날들을 보내기 위해선 너무 성급한 결정이었다. 물론 회사를 쉬면 불안하다. 하지만 불안을 억누르고 쉴 필요가 있었다. 왜 필요한지는 실제로 그렇게 해보면 안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전, 미리 보안하는 시기인 것이다.


오늘 할 이야기는 그렇게 잘 쉬고, 완전히 다른 업계나 새로운 조건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이야기다. 처음 학원일을 하게 되었을 때 나는 즐거웠다. 전 업계에서 완전히 질려버렸기 때문이다. 젊은 콘텐츠 업계일수록 매일같이 바뀌는 트렌드 파악이 필수적이다. 소비자들만큼 심지어 생산자도 트렌드를 꽤 잘 따라가야 하는데 하나를 진득이 좋아해야 다음 칸으로 넘어가는 내게는 늘 숨이 찼다. 게다가 매주, 매달 단위로 주어지는 프로젝트와 성과 측정이 내게는 꽤 버거웠다.


반면 학원 일은 커리큘럼을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나 강사로서 또한 부원장으로서 새로운 프로젝트와 트렌드 파악보다는 업무 숙련도가 중요하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물론 교육업도 트렌드가 있지만, 적어도 매주 단위로 바뀌지는 않는다. 서비스업의 성질도 갖고 있다 보니, 지금 담당하는 고객에게 집중하고 장기적인 변화를 목표한다는 점 역시 좋았다. 게다가 회사를 여러 번 바꾸면서 알게 된 나라는 사람의 특성상, 작은 회사를 키워나가는 데 함께한다는 게 좋았던 것 같다.

 

그러나 안정적인 곳을 다니다가 학원으로 이직하게 된 후 달라진 사람들의 인식이나, 나 스스로도 더 이상 사회적으로 이렇다 내세울 만하지 않다는 게 이렇게 신경 쓰이는 줄 몰랐다. 내 허영심에 대해서 나조차도 과소평가했던 것이다. 전 회사는 이름을 말하면 아는 사람들이 서넛은 되는 곳이었고, 복지 체계, 월급, 구조적 안정성 등에 있어 모두 그럴듯한 ‘중견기업’이었다. 하지만 학원은 그렇지 않다. 5인 이하 사업장의 특성상 월차라는 개념도 없고, 명절 상여금 등은 주면 감지덕지고, 복지라고 명명된 체계 역시 별도로 존재하지 않다. 좋았던 꽃노래도 삼세번이라고, 3,6,9 개월이 지나자 학원 일에 대한 아쉬움이 차츰 고개를 들었다.

 

주변인의 반응 역시 은근히 신경 쓰였다. 부모님이야 오히려 저번 회사에서 힘들어하는 나를 봤다 보니 별말씀 없으셨지만, 월급이 전보다 적다 보니 용돈을 드려도 여유롭지 않은 내 마음이 스스로 못나 보였다. 또 학원 일에 대해 이야기하면 ‘나도 강사 알바를 해봤는데.’ 라며 훈수를 두는 지인들도 더러 있었다. 가르치는 일이라는 점은 같지만, 나는 학원의 직원이고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 입장에서 차이가 있지 않나 싶어 괜한 열등감이 들었고, ‘자기들은 정직원이라고 나한테 이렇게 말하나?’ 하고 생각되는 날에는 자격지심에 힘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전 회사가 그리워질 때가 있었다. 퇴사할 때의 내가 들었으면 미쳤나 싶은 소리지만 모든 일에는 장단점이 있다. 다시 돌아간다면 다른 선택지는 없었을까? 정말 내가 끈기가 부족했던 걸까? 남들도 다 힘들다 못 다니겠다 하고 사는데, 내가 잘못된 선택을 했던 건 아닐까? 전회사를 다니는 지인들이 부러웠고 심하게는 나를 그리워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충분히 대체 가능한 인력이란 걸 알면서도, 나도 모르는 어떤 특별한 점이 있어서 회사가 후회했으면 좋겠다는 말도 안 되는 상상도 하게 됐다. 


이 세상의 모든 회사들을 줄지어 놓으면, 1등부터 꼴등까지 매겨 놓을 수 있다면 내가 하는 생각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삶에는 각자의 고통과 아름다움이 있듯이 전 회사도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 선택이 잘못되었는가? 지금의 나에게 물어서는 의미가 없다. 전 회사를 다녔던 내게 물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전 회사를 다녔던 나는 분명한 대답을 했다. ‘퇴사’라는 대답을 말이다. 내 선택에 반드시 대체 불가능한 의미가 있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그저 그때그때 옳은 선택을 한다. 언제나 현재형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돌아온 과거도 나름의 장점이 있었다고, 현재의 불안하고 애매한 삶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꼭 지옥처럼 묘사할 필요는 없다는 걸 오늘날 다시 느낀다.

 

전 회사도 다시 생각해 보니 괜찮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치워 버리면 될 일을 그러지 못해서 여러 사람에게 추태를 부렸다. 누군가에게 ‘내가 없으면 안 된다’는 말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얼마나 교만한 말인가. 세상은 나 없이도 잘 돌아간다. 다만 누군가는 슬퍼하고 누군가는 좋아할 뿐. 그 누구도 그 무엇도 내가 온전히 책임지고 이끌어나갈 수 없는데, 왜 나는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되고 싶어 했을까. 무결한 존재가 되고 싶을까. 돌이켜보면 부끄러운 일이다. 


생각해 보면 세상의 많은 문제는 정당성을 갖고 싶어 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인과관계가 확실한 서사를 갖춘 사람이 세상 어디 있을까. 다 순간의 마음에 휘둘리며 살아간다. 인생은 사시사철 파도치고 그때그때 맞춰 방향키를 돌리는 게 뱃사람의 숙명이기 때문이다. 내 문제점은 여기에 있다. 왜 정해진 길로 제시간에 맞추지 못했냐고 자꾸 되묻는다. 내 현실을 계속 외면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남들이 괜찮다고 해주길 바란다.

그냥 그렇다고 인정하는 게 때로는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 햇빛 밑에서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있기가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내 마음이 가장 편한 방향이 내게 독일지도 모른다. 아직은 내게 어려운 일이지만 이제는 인정해 보련다. 전 회사도 괜찮은 곳이라고, 그럼에도 지금 있는 곳도 꽤 괜찮은 곳이라고.                                                       


이전 04화 업무 짝사랑, 이제 그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