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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지혜 Sep 11. 2024

밤 10시, 서툰 직장인을 용서하는 시간

나라고 1년 만에 그만두고 싶었겠어 - 3

   

늘 잘하는 사람이고 싶다. 업무를 함에 있어서는, 모두에게 사랑받는 직원이고 싶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내내 간직했던 인정욕은 회사를 다니면서 더 강해졌다. 학창 시절, 원하는 친구에게 선택받지 못하는 경험에서 시작된 나의 욕망은 가족들 사이에서도 오랫동안 ‘귀여운 못난이’로서 지내며 더욱 강해졌다. 언니가 인천시에서 열손가락에 꼽게 공부를 잘해 결국 한의대에 갔다. 그러니 부모님에게 있어 반에서 10등 안에는 늘 들어왔지만, 학창 시절 부모님이 본 내 성적표는 ‘이래서야 어디 대학은 갈 수 있을까.’ 싶은 암담한 성적이었다. 특별히 기대하지 않으셨고, 귀여운 막내로 봐주기는 했지만 가끔은 나도 집안의 자랑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다른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에 집착하는 편이었다. 이성보다는 동성에게, 친구들보다는 직장에서. 그러다 보니 업무로서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내 실력을 앞설 때가 많았다. 신경정신과 선생님께서 늘 내게 강조하기를 내가 무언갈 건넬 수는 있지만 받고 좋아할지 싫어할지 또 나에게 어떻게 표현할지는 전적으로 상대방의 역량이다. 즉 상대방의 마음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런데도 나는 선택받지 못했다는 마음이 들면 울적한 기분부터 들었다. 


남들보다 더한 성과를 냈어도 인정받지 못했을 때 유독 외로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그래도 내가 잘했다. 아니다 생각해 보면 난 실수가 너무 많다. 이렇게 하는 게 맞을까? 하지만 내가 일하는 방식을 나 아닌 누가 가장 잘 안단 말인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런데 ‘일을 잘한다’라는 것은 참으로 측정하기 어렵다. 지금 내가 잘하고 있는지 아닌지 대체 누가 판단한단 말인가. 결국 불확실한 마음을 안고 어떻게든 일하기 위해 내가 취했던 전략은 ‘친절’이었다.

 

내가 실수한 건 아니었지만 거래처 담당자로서 동일한 상품이 등록되어 연락해 구구절절 양해를 구해야 할 때가 있었다. 이와 같이 이미 저질러진 물을 치워야 할 때는 우선 최선을 다해 현 상태에 대해 변명하지 않고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친한 사수로부터 잘잘못을 따지기보다는 앞으로 어떻게 수습할지, 똑같은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할지 생각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존경하는 팀장님은 이럴 때마다 늘 첫마디를 어떻게 뗄지 조언을 주시곤 했다. 

‘내부에서 확인해 본 결과, ~~ 한 문제가 있어 먼저 연락드렸다고 해!’


너무 당연하지만 중요한 첫마디다. 문제를 먼저 파악하고 연락해 주는 담당자에게 보통의 거래처는 대부분은 긍정적인 피드백을 준다. 이때 정확하게 문제를 먼저 알고, 해결 방안 역시 시나리오를 짜고 전화를 하는 것이 좋다. 아무런 생각 없이 전화해서야 소위 말하는 중 ‘마’가 뜨면 상대방은 은연중에 신뢰를 잃기 때문이다. 팀장님은 특히 전화해서 어떤 말이 오갈지 3번 이상 대화 시나리오를 짜보라고 조언해 주셨는데, 퇴사할 때까지 가끔 하루 30통 이상의 전화를 할 때에도 이 같은 조언은 통화 중 길을 잃지 않게끔 매번 큰 도움이 되었다. 


물론 그때도, 이직한 지금도 매번 전화를 할 때 완벽한 대처가 되는 것은 아니다. 내가 준비를 했다고 해도 상대방이 그저 자기 얘기를 하고 싶을 때도 있고, 준비했던 시나리오와 무색하게 상황이 흘러가고 상대의 페이스에 휘말리는 바람에 전화를 끊고 나서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는데’ 하고 후회가 되는 날도 있기 때문이다. 

오늘 한 통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중학생이 되는 남자아이의 학부모가 전화를 해서 아이가 글은 얼마어치 쓰는지 잘 쓰는지 물어봤다. 그런데 평소 잘도 나불대는 입이 어쩐지 막혀서 애매하게 90점 정도 쓰는 것 같다는 둥 상대가 원하지 않는 말만 했지 뭔가. 전화를 끊고 나서 괜히 후회가 들었다. 상대가 원하는 건 아이에 대한 정확한 피드백이었을 텐데, 옆에서 본 내가 보기에는 얼만치 잘 쓰는지 궁금했을 텐데 이에 대한 말은 거의 전하지 못했다. 


이미 한 실수를 돌이키는 방법은 뭘까? 없다. 흘린 물을 주워 담을 수 없듯이, 한 말은 주워 담을 수 없다. 할 수 있는 건 다음날 다시 전화해서 보충하는 것뿐. 그마저도 할 수 없다면 문자로 전하거나 아이에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수밖에. 원장님이 늘 하는 말씀이 있다. 할 수 있는 건 그때그때 최선을 다하고, 실수했다고 인정하고 다시 한번 전하는 것.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다음을 기약하는 것. 밤 10시, 하루를 돌아보며 왜 그랬을 때 생각하는 건 그다지 의미 없다. 그러니 나를 이루는 말을 되새기며 오늘도 나를 용서하려고 애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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