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심지혜 Sep 06. 2024

30만 원의 여유가 있다면

1. 저도 그냥 무난하게 3년 차가 되고 싶었습니다.


첫 번째 회사의 취업하고 나의 목표는 ‘취업하면 매일같이 일기를 쓰기’ 였으나, 별로 지켜진 적은 없다. 남양주시에서 서울로 아침 8시까지 출근하다 보니 늦어도 아침에 다섯 시 반에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두 달이나 살다 보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인생, 가까이서 볼 때는 지지리도 느린데 지나서 보면 벌써 뭘 했다고 달이 바뀌고 해가 지나고 있다. 그리고 그 사실이 가끔 나를 미치게끔 만든다.

 

대학 졸업식 날, 내 이름을 기억 못 하던 교수님이 얼굴만 보고 '계속해서 글을 써야 한다. 계속해서 글을 써야 해.' 하고 힘주어 말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계속해서 글을 쓴다는 건 무슨 뜻일까 고민했다. 그는 졸업하기 삼 년 전, 교수님의 연구실을 찾았을 때도 같은 말을 했다. 남들이 볼 수 있는 곳에다, 계속해서. 그래야만 내가 남의 글을 보고 주절대는 평론가가 될지 자기 글을 찌그리는 작가가 될지 알 수 있다면서. 그러나 지금까지 나는 쓰다 말다 쓰다 말다, 결국 무엇도 되지 못했다.


대학을 졸업해서 취직을 하면 만원 이만 원에 안 떨 줄 알았다. 첫 회사에서 여실히 느꼈던 슬픔이다. 집에서 살면서 아끼는 바는 있지만 그래봤자 최저임금 받고 출퇴근하면 남는 것도 적었다. 두 번째 직장까지 받은 월급은 200만 원 안팎, 하루에 만 원이란 지나친 사치였다. 그래서였을까. 스물다섯 살의 나는 퇴근 후 여섯 시 전철역 앞, 천 원짜리 부산어묵과 날치알 꼬마김밥을 먹는 것만으로도 꽤 행복했다. 나를 위해 부담 없이 쓸 수 있는 돈은 딱 그 정도였다.

 

내 친구들은 내가 거짓말쟁이인 줄 알았다. 실제로 아버지가 꽤 버시고 부잣집에서 살면서 아무것도 없는 졸업 후 무(無) 스펙으로 비록 물경력이나마 취직도 빨리 했으니. 하지만 당시엔 심리 상담소에 한 달에 매달 사십만 원씩 ‘제정신 할부금’을 내고 하루빨리 독립하려고 돈을 모으랴 차 떼고 포 떼고 나면 어쩐지 주머니가 휑했다. 그때는 인생이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상담치료받는 돈이 아까웠다. 물론 나도 내가 나아지고 있는 건 알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들었다. 회사 생활이 녹록지 않아서, ‘이렇게 까지 해서 번 돈’을 그렇게까지 쉽게 쓰는 게 허무하게 느껴졌다.


첫 회사의 상사는 인간적으로는 좋은 분이었지만, 화가 나면 한두 시간씩 사람을 세워놓고 화를 냈다. 같은 소리를 듣고 또 듣고. 패션에 왜 이렇게 관심이 없냐는 말을 자주 들었으니 나랑 맞는 업계도 아니었다. 취업은 빨리 했지만 작은 회사다 보니 내가 대체 뭐 하려고 여기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상품을 판매하고, CS도 하고, 포장에 가끔은 수선까지 했다. 내가 공부했던 기획이고 마케팅이고 아무 상관없었다. ‘이러려고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가서 밤샜나?’ 같은 <아홉 켤래의 사내>와 같은 중산층의 열등감이 자꾸 치솟았다.


그때부터였다. 사소한 말 한마디, 마치 핸드폰을 꺼내다가 카드를 뚝 떨구듯 하는 일상의 말들에 이유 모를 상처를 받았다. 미래계획을 세우며 구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친구들을 보면 나는 말을 흐리며 바쁜 척 카톡을 끄면서, 퇴근하고 사무실을 나설 때 이 넓은 세상에서 내가 쓸모 있는 곳이 너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어디 갈 곳이 없어서, 쓰다 남은 고무 찌꺼기처럼 불필요하게 톱니를 팽팽 돈다. 이게 맞는 걸까? 그럼에도 빨리 그만두고 나오라는 소리를 들으면 무기력한 마음은 그럴 때만 용기를 냈다. '아냐 그 정도는 아닌데?' 하고 도망쳤다. 1년 차에게도 그런 시기가 있다. 안 맞아도 버티려고 용쓰는 시기. 심지어 꽤 길다.


그러다 하루는 결심한 것 같다 죽지 않겠다고. 사회에서 도망치지 않겠다고 이유는 터무니없다. 생각해 보니 딱 30만 원만 있으면 죽고 싶지 않은 기분이라서 그랬다. 30만 원이 있으면 일단 새로 나온 무선 이어폰을 살 수 있었다. 또 잠옷도. 집에 하나 있지만 세로 줄무늬뿐이니까. 앞서 말한 것 두 개 사면 30만 원은 금방 사라진다. 그러면 다시 원점이고, 또 돈이 더 갖고 싶을 것이다. 돈이 있다면, 30만 원이라도 마음껏 쓸 여유가 있다면, 친구랑 두 끼도 가고, 내 기분이 더러워 당일에 약속을 파투 낸 친구한테 용기 내서 이번주에 보자 카톡도 보내 볼 수 있을 텐데.


사람을 만나는 것은 돈이 든다. 그러나 가을에 사람을 만나지 않으면 낙엽처럼 썩어들 뿐이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하고 즐거운 생각을 하고 햇볕을 보아야 한다. 현실은, 매일 같이 회사에 가고, 그러면 30만 원이 생기고, 그 돈으로 파자마도 못 사고 이어폰도 못 사고, 친구와 두 끼도 가지 못하고 비상금 통장에 +300,000이 되는 걸 구경만 한다. 그러면 또 우울해지고 30만 원만 있으면 죽지 않겠다 결심하고 그래서야 쳇바퀴 도는 인생. 삼십만 원만 있으면 좋겠다. 회사 가기 싫다. 30만 원이 생겼다! 아니 없다. 정말 삼십만 원만 갖고 싶다.


빙글빙글 몇 바퀴 돌다 보면 결론이 난다. 어쩌면 아직 죽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30만 원만 있으면 살고 싶다는 건, 친구와 대만 여행만 갔다 오면 기분이 좋아질 거라는 건, 그냥 핑계일 뿐이다. 당장 창문 열고 뛰어내리면, 더 이상 직상 생활도 하지 않고 방 안에 틀어 박히기로 하면 30만 원도 친구도 여행도 필요 없다. 게다가 글을 쓰고 있는 이상 나는 죽지 않기로 결심할 수밖에 없다. 삼십만 원이 있으면 죽지 않는다는 내 생각이 너무나 한심해서. 그래도 그렇게라도 살았으니 된 거라고 스스로를 위로해 본다. 그렇게 살아가 본다.


학창 시절 어느 조교님은 그런 식으로 뚝뚝 끊기는 문장을 쓰지 말라고 두 시간에 걸쳐 혼나기도 했다. 학교를 졸업해 내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장점이라면 역시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다는 점이다. 이제 불안해하지 않고 쓸 수 있는 딱 삼십만 원만 있으면 좋겠다. 내게도 그런 날이 있으면 좋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