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고 1년 만에 그만두고 싶었겠어 - 4
학원에 오면 집에 가고 싶다고 말하는 학생들이 있다. 집중을 못 하거나 하기 싫어하는 애를 어르고 달래도 중간에 집에 홀라당 가버리기도 한다. 간혹 자기 나오고 싶을 때만 수업을 나오는 학생들도 있다. 준비한 자료는 무용지물, 그런 일이 잦으니 학원비 차감 기준도 애매해진다. 나오지 않아도 수업 날짜면 그냥 차감해버리고 싶지만 동네 장사에서 그랬다간 정 없다는 소리 듣기 십상이라 원장님도 입장상 적당히 넘겨주기 때문이다. 우리 학원은 대규모도 아니다 보니 소수의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맞춰 수업을 준비하고 진행하는데, 막상 수업 시간 시간에 한 명 정도 오는 게 아닌가 두려워지니 이 무슨 외롭고 쓸쓸한 일인가. 수업 시간이 지났는데도 홀로 교실에 서 있다 보면 팍 마음이 상하기도 한다.
‘학생이 안 나오고 돈 받으면 좋은 일 아닌가?’
위로차 이런 말을 듣기도 하는데, 한 번이야 좋지 여러 번 반복되면 학부모에게 있어 애들 관리 못하는 학원으로 찍히면 답도 없다. 하지만 제 마음이 콩밭에 간 애를 무슨 수로 데려와 문제를 풀리고 100점을 맞게 하는가. 내 마음만 안달복달한 일이 반복된다.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학원이야 한두 번 빠질 수 있는 건데, 시작하면 제대로 좀 해내고 싶은 내 마음은 사춘기의 일탈을 도무지 허락하질 않는다.
지난 직장에서도 이런 내 짝사랑은 계속됐었다. 심지어는 때때로 답답함, 아쉬움을 넘어 밤잠을 못 이루거나 속상한 마음을 못 이겨 집에 오는 내내 우는 등 여러 가지로 발현되기도 했으니 새삼 놀라울 것도 없다. 내게는 달마다 오는 일종의 돌림병인 것이다. 좋은 글이 올라오면 당연히 탄탄한 출판사가 돈을 내고서라도 데려가려고 할 텐데, 해줄 수 있는 건 내가 성심성의껏 함께 읽고 달려주는 피드백뿐인 내 전 회사는 컨택에 있어 장점이 크지 않았다. 당시 컨텍 메일에 난항을 겪자 선배가 이런 피드백을 줬던 기억이 난다.
‘어떤 점이 좋았는지 3개 이상 쓰세요. 특히 시장에서 이런 글이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쓰는 게 좋아요. 큰 선인세로 유혹할 수 없는 우리가 작가에게 줄 수 있는 건, 벽 보고 쓸 수밖에 없는 작가가 늘 궁금해하는 독자이자 PD인 우리의 관점입니다. 보고 계약을 하고 말고는 작가의 영역이고요.’
다음 회사에서도 같은 피드백을 많이 받았다. 제안을 할 때는 성심성의 껏, 거절을 받으면 그럴 수 있지 하고 받아들이라고. 그런데 나는 왜 이렇게 속상한지 모르겠다. 나와 함께해 주면 좋겠다고, 그럼 내가 당신이 원하는 걸 어떻게든 이뤄주겠노라 약속할 수 있는데. 난 언제나 당기기밖에 못하는 사람이다. 당긴 만큼 성과가 따라오지 않으면 조바심부터 나고 선택받지 못한 내가 미워지기도 한다.
친구들도, 또한 동료들도 언제나 내가 신입이라 그런 거라고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질 거라고 했다. 거절도 익숙해지고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일 없는 일 구분할 수 있게 되리라고. 4년 차쯤 되니 이제 구분은 된다. 하지만 언제쯤, 정말 어떻게 해야 이런 일들을 그러려니 하게 되는 걸까. 답답한 마음엔 아직도 답이 없다. 잘해보자고, 다음 시험 때는 더 열심히 하겠다고 해서 시험에 대비할 수 있도록 문해력 특강을 따로 준비해 두었더니
잘 다니다가 하루아침에 연락 없이 안 오기 시작하는 학생이라던가. 분명 원고를 주겠다고, 다음 원고는 통과될 수 있을 만큼 괜찮은 걸 준비해 두겠다고 했으나 연락이 없어서 전화해 보니 내가 그랬냐고 하는 여느 출판사라던가. 내가 보낸 컨텍 메일을 그대로 찍어서 업계에 이 녀석들 이렇게 급해서 내게 애걸복걸하고 있다고 불쌍하게 여긴 작가나. 대체 언제쯤이야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기게 되냔 말이다.
내 제안을 거절한다고 나 자신을 거절한 건 아니라는 사실은 나 역시 안다. 하지만 안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없다. 거절을 계속 당하다 보면 결국 나 자신의 문제가 아닌가? 성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건 나인데 원인을 분석하다 보면 상대의 마음을 더 빼앗지 못한 내 잘못으로 귀결되고야 마는데. 그런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는데, 이쯤 되면 세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버겁고 말이 안 되는 일이 아닌가 싶기도 한 것이다.
고속도로에서 빠져나와 경찰서 앞 큰 신호등에서 오래오래 빨간불에 걸리며 오늘도 같은 생각을 했다. 이 뫼비우스 같은 거절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절을 거절하는 바람에 생기는 마음의 풍랑은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남들은 다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러다 오늘은 문득 그런 결론이 났다. 사실은 남들도 다 괜찮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 역시 평생 괜찮지 않을지도 모르고.
물론 평생 울고불고하겠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처음 몇 번 거절당했을 때는 가산디지털 단지부터 성북구까지 한 시간을 울며 가던 내가 오늘은 이렇게 울지 않고 집에 가지 않았는가. 나도 이제 슬슬 익숙해진 것이다. 무례한 일에도 어이없는 일에도. 남의 마음은 재난과 같아서 어떠한 준비도 할 수 없다. 다만 하루에 한 발자국씩, 거절하고 마음상하고 상한 마음을 간직한 채 집에 오는 일이 점차 익숙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일상의 신선함이 사라진다는 건 이토록 좋다니. 어린 내가 들었다면 상처받았을지도 모르겠다.
한결같이 마음이 괜찮은 사람이 있을까. 직장 생활에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추오도 없는데. 언제나 잊지 않으려고 애쓴다. 나는 긴 컨베이어 벨트에서 작은 나사 부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내 작업 바깥에 대한 권한은 내게 없다. 그러니 다만 노력하고 다만 슬퍼하고 또 괜찮아질 때까지 견디고. 정우의 노래처럼 내 마음은 정말 구름 같다.
그런데 우리는 한낱 바람에 어리석게 슬퍼하고 마음 아파한다. 오늘은 거기에 짝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여 보았더니. 그제야 정리되는 감정이 있었다. 그래, 우리는 다 사랑을 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생활이라고 보지 말고 짝사랑이라고 보면, 내가 마음 쓴 만큼 돌려받기를 바라고 나만 너무 끌려다녔나 싶어서 억울한 마음도 드는 게 참 당연하지 않나? 한편으로는 나 혼자만 이렇게 좋아하고 아쉬워하는 게 창피하기도 한 점까지 짝사랑과 직장생활은 참 닮아있다.
두 사람의 마음이 우연하게 닮아 있어서, 또 상황도 기가 막히게 맞아떨어져서 적절한 시기에 서로에게 호감이 가고 사랑으로 이어지는 건 어려운 일이다. 짝사랑을 해본 사람은 누구라도 알지 않은가. 나이가 많고 적고, 접점이 많고 적고는 애써도 되는 일이 아니고 하물며 가장 어려운 단계는 상대의 마음 안에 자리 잡는 일이다. ‘우리 무슨 사이야.’라고 물어봤을 때 두 사람의 마음 크기가 닮아 있기는 어렵다. 일도 그렇다.
윤동주 시인이 그랬다. 슬퍼하는 자에게 복이 있나니 우리는 내내 슬플 것이란다. 달리 말하면 슬퍼하는 일 밖에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없으니까. 견딘다고 꼭 잘된다고 볼 수도 없다. 참고 산 사람에게 반드시 볕 들 날이 있는 건 아니니까. 그럼에도 왜 살아가는가 어째서 노력하는가 묻는다면 역시 그냥 꼭꼭 씹어 삼키는 것만이 능사인 때가 있기 때문이다. 속에서 열불이, 천불이 나도 그냥 그렇게 살아가는 거다. 너무 깊이 빠지지만 않게 주의하면서.
물론 어떤 모욕은 시간이 지나면 ‘좋지 않았던 일’로 빛바랜 채 남아도, 어떤 상처는 평생 가기도 한다. 비가 올 때마다 무릎이 쑤시듯이, 느슨한 나뭇가지 하나 잡은 내게 파도처럼 넘실대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날이 되면 언젠가 속상했는지 잊어버리기도 할 것이다.
깊게 잠기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씹어 삼키는 것. 또 왔구나 하면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울적함을 견뎌내자. 내 이름도 나라는 사람 자체도 그저 주어진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그냥 그렇구나 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