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의 경계 허물기(Prologue)
세상만사 열일 다 제쳐두고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충동이
느껴질때가 있다.
탁트인 바닷가나 드넓은 초원
산과 계곡이 흐르는 곳에서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충동말이다.
문득 문득 커져버리는 충동들은
프로이드가 말한 Ego로 묻히고 억눌린다.
휠체어를 타고 자유로운 본능을 억제하는 삶이
상대적으로 익숙해진 장애인에게 Ego는
프로이드가 말한 무의식에서 비롯된 것들
이상으로 경험적 판단과 억압에서 파생된
선행적 경험에 근거한 결과물이다.
잦은 골절과 뒤틀린 척추로 변형된 나의 몸을
예로들자면 한치앞도 볼수 없는 살얼음판의
세상으로 인식되기 까지 겪었던 상처로써
무의식적 자기통제를 만들게된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통제는 자유의지와 상반된
삶의 패턴을 형성하고
시설과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평생 살아야하는 운명으로 인정하게 한다.
최근 10년 간 이러한 억압에 저항하고자
이른바 장애해방 운동을 펼치는
장애인을 보면 동조하고 싶어졌고
우리만의 연대감에 도취되어
함께 하고싶은 도전의식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나는 거기까지다.
현재 나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멀리서 그들을 지켜만 볼 뿐이다.
사실 이들의 목숨을 건 열정에
위태로운 생각마저 든다.
자기결정권,교육권,탈시설,활동보조 등의
문제를 외치고 국가 예산의 문제점을 외친다.
그리고 죽어간 장애인의 가해자를
국가로 몰아갈때마다
"난 피해자가 아니야"
라는 이기심으로 외면하게 된다.
피를 보고 피를 부르는 전쟁사에서 남는
승자가 바라는 이상적인 국가가
역사적으로 존재하였는가?
민란이 승리한적이 있었는가?
안타깝게도 전세계 통틀어..아니
대한민국에 기록된 역사에 남겨진 이들은
숭고한 희생자...그 이상도 아닐 수 있다.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복지적 청사진은
힘있는 자들이 그려왔고,
이들 아래에 비춰진 장애인은
또다른 희생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너희를 돕고 있으니 감사하라"
섣부른 비판은 또다는 경계를 만들고
견고해진 지금의 혜택을 깨트리지
못하게 만드는 비겁한 정책들이
또 다른 "경계"와 "장애"를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어릴적 원치 않은 놀이동산 견학을 갔었다.
파란옷을 입은 봉사자들에 이끌려
바이킹을 타고 청룡열차를 탔다.
마무리는 언제나 그렇듯 그들을 위한
단체사진 촬영과 뿌듯한 표정의 미소,
작별인사...
그들의 뿌듯함에 감사했고
난생처음 갔던 놀이동산 체험으로
나 또한 해냈다라는 승리감마저 들었다.
그러나 두시간 동안 집으로 가는 버스안에서
난 그들의 미소가 나의 미소와
다르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최근들어 나의 "장애의 경계 허물기"는
실로 많은 성과와 경험을 주고 있다.
무더웠던 어느날 인식개선 교육시간을 마치고
한 학생에게 "편견"이 뭐냐고 질문했다.
"어색한 사이?로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이요!"
단순한 대답에서 많은 의미를
도출하고 싶었던 나.
"장애가 어색하지 않게 하면 편견도
사라질꺼야. 세상도 바뀔꺼야..."
라는 다소 유치?한 결론을 내렸다.
어색하지 않기 위해 내가...아빠가 되고
예술인이 되고자 했던것은 아니지만..
나로인해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은
바로 "장애의 경계 허물기"
그 자체가 아닐까..
이십여년이 지나 아들과 함께
다시 간 놀이공원은 많이 달라졌다.
다양한 동물과 드넓은 초원은
나의 휠체어가 달릴때마다 웃음이 절로 났다.
현재의 주어진 환경안에서
내가 누릴수 있는것들...
그리고 그 안에서의 "장애의 경계 허물기"
또 다른 환경을 누리기 위한
"투쟁"이 아니라..
저마다 다른 "꿈"을 이루기 위한
실천적 지혜가 필요한 때이다.
그들의 실천이 한 학생이 말한
"어색한 사이"가 되지 않도록 말이다.
절박한 상황에서의 다양한 형태의 투쟁속에서
가슴아프고 홀로서기하고 있는
270만 장애인을 세상이 외면하지 않도록...
삶의 가치와 스토리를 온몸으로 펼치자!
세상이 우리를 끌어안을 수 있게
더 뜨겁게 펼치자!
이름 최충일.
집에서는 "아빠, 남편, 아들"이고
직장에서는 "선생님",
무대위에선 "엄지왕자",
친구들은 "쪼까니"(키가 작아서)라 부른다.
그리고 지체2급 장애인이다.
사람들은 살면서 다양한
호칭과 별명을 갖는다.
그러나 "장애인"은 내게
호칭도 별명도 될수 없는 단어다.
어릴때 동네 꼬마들이 놀릴때 빼고는...
평소 사람들이 "장애인 안녕?"
이라고 한적은 없었다.
"장애인"이란 단어는 나의 삶가운데
지극히 한정된 상황에서만 불려지는
어색한 "middle name"이다.
중고등학교를 특수학교에서 졸업,
대학생활 힙합에 빠졌고 지금도 사랑한다.
직장이 있고 결혼하여 아빠가 되었다.
삶의 행복을 끊임없이 탐구하고 싶다.
장애인이 아닌 아빠,남편,래퍼,직장인,아들로써...
삶의 다양성과 일상을 타이핑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