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성과 이성 사이의 연애
사랑의 모습은 다양하다. 두 사람 사이에 불꽃이 튀기도 하고, 한 사람이 힘들 때 다른 한 사람이 엄마처럼 보듬어 주기도 하고, 때론 친구처럼 편안하기만 한 그 사람이 우리에게 사랑이기도 하다.
누군가 사랑은 이렇다라고 정의 내릴 수 없어도, 영화 속에서, 또 무심코 우리 곁을 스쳐간 어떤 한 장면 속에서 저 모습이 사랑이구나하는 순간들이 있다. 우린 그런 순간들을 지나치며 살아가지만 어느 날 문득 그런 장면이 깊게 각인될 때가 있다.
'Like sunday, Like rain'은 문득문득 그런 생각을 하게 하는 영화였다.
(영화의 줄거리는 초록색으로 표기되어, 영화를 보실 분은 skip 하시길..)
영화는 뉴욕 브루클린을 배경으로 어렵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23살의 엘레노어(레이튼 미스터)와 부족함 없이 자라는 12살 천재소년 레지(쥴리안 샤트킨)의 삶을 상반되게 보여준다.
엘레노어는 쥴리어드 음대에 입학할 만큼 음악적 재능이 있었지만 가정 형편상 음악의 꿈은 접은 체, pub에서 아르바이트로 생활을 이어가며 힘겹게 하루를 살아간다. 그 소중한 일자리마저도 망나니 남자 친구로 인해 쫓겨나게 되고 당장 잘 곳조차 없어 내일이 불안하기만 하다.
12살 천재소년 레지는 경제적으로 넉넉한 환경과 천재성을 갖췄지만 항상 외롭다. 사실 외로움조차 느끼지 못할 만큼 어쩌면 편안한 삶을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친구와 어울리기보단 책과 어울리는 게 더 좋고, 이미 다 알고 있는 내용을 설명하는 수업시간은 지루하기만 하다. 위험하다며 준비된 차를 타고 오라는 엄마의 말은 항상 거역한 체 무거운 첼로 가방을 메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기도 하고, 고기를 전혀 먹지 않는 레지의 모습은 12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주관이 뚜렷하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차가울 것만 같은 이 소년은 항상 맛없는 음식을 만들어주는 집사가 상처입을까봐 항상 맛있다 얘기해주고, 운전기사의 어려운 형편을 이해하여 자신은 차를 타지 않지만 운전기사가 계속 일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모습에서 보기와는 다르게 매우 따뜻한 감성을 지닌 아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너무나 다른 삶을 걷고 있는 엘레노어와 레지는 서로의 인생에 접점이 없어 보였지만 레지의 보모로 엘레노어가 2달간 일하게 되면서 두 사람이 함께 할 시간이 생긴다.
레지는 평안한 자신의 일상을 자꾸 바꿔놓으려 하는 엘레노어가 불편하고, 엘레노어는 너무나 성숙한 레지가 당황스럽기도 하고 조금은 차가운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어색했던 두 사람 사이를 이어준 것은 음악이었다. 레지는 첼로 연주에서도 천재성이 돋보였고, 엘레노어는 그런 레지를 보며 부러움과 호기심 반으로 레지와의 대화가 즐겁다. 엘레노어에겐 한때 음악이 전부였지만, 레지는 그런 음악에 이제 염증을 느끼며 첼로를 내려놓으려 한다.
레지는 누군가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것이 기쁘다. 엄마는 자신에게 물질적인 행복을 가져다 주지만 감정적인 행복을 전해주는 법을 알지 못한다. 그런 부분을 채워주는 것은 오직 엘레노어뿐이다.
그렇게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되고,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려 노력한다.
영화는 그렇게 잔잔하지만 아름답게 두 사람의 일상을 그려내고, 모든 관계가 그렇듯, 시간이 흘러 두 사람은 헤어짐을 맞이한다. 엘레노어는 언제까지 레지의 보모로 살 수 없었고, 불안정하지만 다시 자신의 삶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것을 알기에 레지 또한 헤어짐이 슬프지만 성숙한 아이답게 그녀가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것을 억지로 막지 않는다.
(임팩트한 결말은 없지만 그렇게 억지스럽지 않고 잔잔해서 좋았다_결말은 영화에서 확인하시길)
12살 소년과 23살 숙녀의 이야기는 사랑이라 하기에 다소 어색하고 억지스럽다. 그럼에도 서로를 위하는 모습을 볼 때면 보모와 보모의 돌봄을 받는 소년 이상의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것은 아마 레지의 행동과 말이 너무 성숙해서 일수도 있고, 서로를 위하는 모습이 마치 연인의 모습을 상상하게 해서 일수도 있다.
레지 : 떠나지 않으면 안 돼요?
엘레노어 : 계속 여기에 머무를 수는 없어..
레지 :..........
엘레노어 : 시간이 흐르고 나면 나 같은 사람이 있었는지 조차 기억하지 못할 거야.
레지 : 절대 안 그럴 거예요.
이 장면에서 아주 어릴 적 함께 놀던 동네 누나가 생각나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 좋아했던 교생 선생님의 모습이 그려지기도 했다. 우리에겐 누구나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지만 마음속에 스치는 인연들이 있다.
그때 당시엔 함께 한 공간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좋았는데 지나고 보니 그때의 모습은 그때만 간직할 수 있는 장면이라는 것을 영화를 통해 느끼게 된다.
어쩌면 레지에겐 엘레노어가 풋풋한 첫사랑이었을 것이다. 레지의 모든 행동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내 일이 아니지만 그 사람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진심으로 걱정해주고, 시간을 내 함께해주고,
그녀가 좋아하는 좋아하는 차를 머리맡에 놔두고,
그녀를 위해 (12살짜리 꼬마가) 직접 요리해주기도 하고,
그녀의 말 한마디에 싫증 내던 음악을 다시 하기로 한 모습을 보면
레지는 분명 엘레노어를 풋풋하게 좋아하고 있었다.
그에 비해 엘레노어는 어른답게 감성과 이성의 끈 위에서 균형을 잡고 있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
언제 레지와의 관계를 멀리해야 할지.. 스스로 알고 있었다.
어쩌면 두 사람의 관계처럼 우리의 연애 또한 때론 불같을 때도 있고, 때론 이성적으로 판단해야 할 때도 있다.
너무 감성적이기만 한 연애도, 또 너무 이성적으로 서로를 대하는 연애도 지양해야 하는 건 두 연애 모두 불안정하기 때문이다.
우린 보통 20대에는 감성적인 연애를, 30대에는 이성적인 연애를 하게 된다.
서로 불꽃같이 사랑을 하다가도 30대가 되면 사랑 이외의 것들을 자꾸 생각하게 되고,
예전만큼의 불꽃은 더 이상 튀지 않게 된다.
만일 누군가
서로 불꽃 튀는 연애를 하고 있다면, 서로를 향하는 마음이 조금은 서로의 미래에 향할 수 있도록,
또 너무 상대의 외적인 조건만 바라보며 이성적인 연애를 하고 있다면, 가끔은 이성의 끈을 내려놓고 서로만을 바라보며 헌신적인 사랑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건
비단 나만의 생각인 것일까.
우리의 연애가 감성과 이성의 사이에서 지금 어디쯤에 위치한 것인지 한번 생각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