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속 사랑> 미스터 노바디 (Mr. Nobody)
살다 보면 우리에겐 몇몇의 사랑이 스쳐 지나간다. 그땐 정말 그 사람 아니면 죽을 것 같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그땐 그랬지...'하는 추억 정도로 어떤 사람은 기억되기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내가 그때 이랬더라면 그 사람과 더 잘 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로 점철된 사랑이 있기도 하다.
돌이켜보면 내겐 추억으로 남겨진 사람은 있지만, 후회로 남겨진 사랑은 없었다.
사랑이 인생의 1순위가 아니어서 일수도 있고, 현재의 사랑이 너무 오래되어서 지난 사랑의 기억이 흐릿해져 일수도 있지만 아무튼 미련이 남는 사랑은 없었다.
만약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지난 사랑에 후회가 남는다면... 어쩌면 이 영화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영화는 사실 로맨스에 초점이 맞춘 영화라기 보단 본질적인 인생의 의미와 선택 그리고 삶의 가치에 대해 말하고 있는 영화이다. 그래서 조금 난해하기도 하고, 시점이 뒤죽박죽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볼만한 값어치가 있는 영화였다.
영화를 보실 분은 초록색 글은 패스해 주시길...(영화의 해석은 주관적이니 참고하여 보시면 될 듯합니다.)
118살의 주인공 니모(자레드 레토)는 자신이 34살이라고 기억하며 미래의 어느 한 공간에서 눈을 뜬다. 그가 자연사로 죽게 될 마지막 인간이라는 사실과 노화와 섹스가 사라진 미래 세계라는 설정은 (내겐) 중요치 않았다.
중요한 건
그가 떠올릴 과거의 선택과 그 선택에 따라 그가 만나게 될, 닥칠 인생의 모습이 달라진다는 것에 있었다.
영화는 9살 니모, 15살의 니모 그리고 34살의 니모의 모습만을 보여준다. 그 시기가 니모에겐 가장 중요한 시기였고, 그로 인해 118살의 노인 니모는 34살 이후의 기억은 없는 것인지 모른다.
9살 니모는 엄마와 아빠의 이혼으로 누구와 함께 살지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그런 상황에 놓인다. 영화 속 니모는 엄마를 따라가기도 하고, 또 아빠를 따라가기도 한다.
엄마를 따라간 니모는 15살이 된 해에 새아빠의 딸 안나와 깊은 사랑의 감정을 느끼게 되며,
아빠를 선택한 니모는 15살이 된 해에 앨리스와 진이란 소녀를 만나 사랑을 하게 된다.
그렇게 각기 다른 인생에서 만난 사랑으로 니모는 34살이 되고
34살의 니모는 엄마와 새아빠의 이혼으로 자연스레 멀어진 애나를 수영장 관리인으로 일하며 막연히 기다리기도 하고, 다큐멘터리 진행자가 된 니모는 앨리스와 힘겨운 결혼생활을 유지하기도 했고,
성공한 사업가가 되어 진과 사랑 없는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니모는 다양한 삶을 살아가며 죽기도 하고, 때론 다시 살기도 하며 보는 이의 시. 공간이 엉켜버리기도 한다.
무엇이 진짜인지... 니모의 상상인지.. 어떤 삶이 니모가 진정으로 원하던 삶인지 우린 알 수 없다.
세 명의 여성 중 애나를 가장 사랑했지만 그 삶이 니모에게 행복을 가져다 준 삶인지 관객은 알 수 없다. 영화는 그렇게 관객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며 118살 니모의 현실세계로 다시 자리를 옮긴다.
니모가 말한 삶은... 모두 진짜였을까? 아니면 그가 만들어 낸 상상이었을까?
심리학 용어로 자이가르닉 효과(Zeigarnik effect)라는 것이 있다. 고백해보지 못한(이루지 못한) 첫사랑, 가보지 못한 길, 끝마치지 못한 일들이 오랫동안 우리 머릿속에 잔상으로 남겨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우린 살면서 크고 작은 선택들을 하며 살아간다. 자신의 선택에 만족해하기도 하고, 때론 자신의 어떤 선택에 후회하기도 하며 시간을 되돌리고 싶어 하기도 한다.
우리의 삶과는 다르게 영화 속 니모는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모든 길을 가보았다. 불같은 사랑을 나눈 애나를 기다리며 궁핍한 삶을 견디기도 했고, 자신보다 다른 남자를 더 사랑하는 앨리스와 세 자녀를 낳아 힘겨운 결혼생활을 견뎌보기도 했으며, 호화로운 집에, 성공한 삶을 살아가지만 사랑으로 택한 사람이 아닌 진과 함께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무엇이 진짜 삶이었을까?
어떤 모습이 진정 니모가 원하던 삶의 형태였을까?
니모가 죽기 직전 떠올린 그의 삶은 모두 그의 것이었다. 영화는 모든 걸 말하고 있지 않지만 그 어떤 선택 속에도 니모의 모습에 후회는 있었지만 그는 전진했다. 엄마가 싫었음에도 엄마 곁을 떠나지 않았고, 병든 아빠를 보실 필 때도 묵묵히 자신의 삶을 견뎌냈다. 그가 택한 선택엔 늘 후회가 드리워졌지만, 그는 후회의 크기를 생각하기보단 더 전진하고자 노력했다. 더 나아가 아빠도... 엄마도 선택하지 않는 새로운 길로 뛰쳐나가기도 한다.
9살 니모는 그렇게 자신이 서있는 세계가 실제이든 허구이든 관계없이 어떤 선택도 할 수 있음을 관객들에게 보여준다.
As long as you don't choose, Everything remains possible.
영화 초반, 어린 니모는 선택이란 단어에 대해 위와 같이 정의한다.
'네가 선택하지 않는 한, 모든 것은 단지 가능성으로만 남겨진다.'
실존과 허구의 세계
질서와 무질서
가치 있는 것과 무가치한 것
삶과 죽음
선택과 후회
서로 대척점에 있는 두 단어 사이에서 니모는 항상 외줄타기를 한다. 니모가 그랬듯, 우리 또한 어떤 원인 관계에 의해 필연적으로 무언가를 선택하였다면 그 결과가 어떻든 스스로 끝까지 가봐야 한다는 것.
니모가 아빠도 엄마도 아닌 새로운 선택지를 고를 수 있었듯,
우리 또한 다양한 선택지 앞에 무엇이든 선택할 수 있는 삶이라는 것.
물론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두려움과 후회가 항상 뒤따르는 것이 인간의 선택이기 때문에 무언가를 선택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다.
다만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든 그 모든 순간이 내 삶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지하며 살아가야 한다.
어떤 선택이든 완벽한 것은 없으며, 늘 후회가 남는 것이 인생이기에 지나간 것과 선택받지 못한 것에 대한 미련을 갖기보단 스스로 선택한 길에서 해답을 찾는 게 우리 인간에겐 더 현명한 일인 것이다.
그것이 사랑이든..아니면 자신의 인생이든 말이다.
자신은 시간을 거꾸로 흘러가며 살고 있다는 118살의 니모는 그의 삶을 되돌릴 수 있지만, 한 번뿐인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는 우리가 겪어온 시간을 니모처럼 되돌릴 수 없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