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늘 Oct 30. 2022

여행'은' 끝났다

누군가 내게 어떤 여행을 선호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계획 없이, 느긋하게, 되는 대로.


그런데 이번 여행은 달랐다. 아이를 두고 떠나온 여행이니 알차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덕분에 열흘   번이나 몸살이 났다. 이틀 만에  , 마지막  공항에 도착해서  . 저녁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급격하게 컨디션이  좋아지더니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잠만 잤고, 집에 와서도 일주일 정도 끙끙 앓았던  같다.      


삶이 고된 이유는, 어쩌면 유원지의 하루가 고된 이유와 비슷한  아닐까.
 시간을 기다려 5 열차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아마도, 하고 나는 얘기했었다.
그럴듯한 인생이 되려 애쓰는 것도 결국 이와 비슷한 풍경이 아닐까. 이왕 태어났는데 저건 한번 타봐야겠지. 여기까지 살았는데  정도는 해봐야겠지. 그리고 긴긴 줄을 늘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버리는 것이다.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고된 여행이었다. 떠나기 전부터 여행 중에도, 다녀와서도 무엇 하나 쉽지 않았다.

아이도 키워야 하고 나도 키우고 싶은 일상의 내가  종종거리듯, 서핑도 해야겠고, 일도 해야겠고, 우붓도 가야겠고, 요가도 해야겠고여행지에서도 하고 싶은  많아 내내 종종거렸다. 쫓기는 사람처럼 새벽부터 밤까지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이 여행이냐고 비웃곤 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러고 있었다. 하지만 해보고 나니 가끔은 그런 여행도, 그런 삶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5 열차를 타기 위해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 바보 같아 보여도,  5분이 커다란 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이제 됐다, 더할 나위 없다, 얼른 돌아가서 뜨끈한 남편 품에 안겨 아기 목덜미에 코를 묻고 싶다.'


여행은 끝났다. 하고 싶은    덕분에 나는 조금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고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이, 육아가, 사는  고달플 때마다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서 '더할 나위 없이' 즐기다 돌아온 기특한 스스로를! 그걸로 이번 여행의 의미는 충분하다.



이전 16화 노을과 노래의 이상한 힘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