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내게 어떤 여행을 선호하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계획 없이, 느긋하게, 되는 대로.
그런데 이번 여행은 달랐다. 아이를 두고 떠나온 여행이니 알차야만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덕분에 열흘 중 두 번이나 몸살이 났다. 이틀 만에 한 번, 마지막 날 공항에 도착해서 한 번. 저녁 비행기를 타기 위해 공항에 들어서자마자 급격하게 컨디션이 안 좋아지더니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내내 잠만 잤고, 집에 와서도 일주일 정도 끙끙 앓았던 것 같다.
삶이 고된 이유는, 어쩌면 유원지의 하루가 고된 이유와 비슷한 게 아닐까.
두 시간을 기다려 5분 열차를 타고 내려오는 사람들을 보며 아마도, 하고 나는 얘기했었다.
그럴듯한 인생이 되려 애쓰는 것도 결국 이와 비슷한 풍경이 아닐까. 이왕 태어났는데 저건 한번 타봐야겠지. 여기까지 살았는데 저 정도는 해봐야겠지. 그리고 긴긴 줄을 늘어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내버리는 것이다.
-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고된 여행이었다. 떠나기 전부터 여행 중에도, 다녀와서도 무엇 하나 쉽지 않았다.
아이도 키워야 하고 나도 키우고 싶은 일상의 내가 늘 종종거리듯, 서핑도 해야겠고, 일도 해야겠고, 우붓도 가야겠고, 요가도 해야겠고… 여행지에서도 하고 싶은 게 많아 내내 종종거렸다. 쫓기는 사람처럼 새벽부터 밤까지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이 여행이냐고 비웃곤 했는데, 이번에는 내가 그러고 있었다. 하지만 해보고 나니 가끔은 그런 여행도, 그런 삶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5분 열차를 타기 위해 두 시간을 기다리는 일이 바보 같아 보여도, 그 5분이 커다란 동력이 되기도 하니까.
'이제 됐다, 더할 나위 없다, 얼른 돌아가서 뜨끈한 남편 품에 안겨 아기 목덜미에 코를 묻고 싶다.'
여행은 끝났다. 하고 싶은 걸 다 한 덕분에 나는 조금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고 내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일이, 육아가, 사는 게 고달플 때마다 그때의 나를 떠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서 '더할 나위 없이' 즐기다 돌아온 기특한 스스로를! 그걸로 이번 여행의 의미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