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발리에는 아이들이 없었다. 아니 당연히 있었을 텐데, 내 기억에는 없다. 이번에는 이상하게 아이들만 보였다.
“봤어? 저기 건너편에 아기가 리어카 잡고 서더라. 이제 돌쯤 됐을까?”
“오잉, 나 못 봤는데? 애기 어디?”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도, 핸드폰 유심을 사러 갔을 때도, 오토바이를 타고 길을 지날 때도 어디에든 꼬물꼬물 장난치는 어린아이들이 보였다. 학교, 교복 입은 아이들, 오토바이로 학교 앞에서 기다리는 부모님 들이 자주 눈에 띄었고 오래 시선이 머물렀다.
밥을 먹으면서, 물건을 사면서 아이가 있으면 나도 모르게 시선을 낮춰 인사를 건넸고, 택시를 타고 가면서 학교를 지나면 기사에게 여기 아이들은 보통 몇 시에 끝나냐, 당신도 아이가 있냐고 묻곤 했다.
엄마들의 세계에는 대화의 물꼬를 트는 필살기가 있다. 심지어 이 기술은 만국 공통이다.
“아이가 몇 개월이에요?”
어린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연령이 아닌 월령으로 아이의 나이를 대신하곤 한다. 처음 만난 사람과 아이가 몇 개월이냐, 13개월이다, 우리 아이는 25개월이다, 걷냐, 아직 못 걷는다, 곧 걸을 거다, 보통 13개월부터 걷더라, 그런 이야기를 나누며 휴대폰 바탕 화면에 있는 서로의 아이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대화보다 끈끈한 연대가 느껴졌다.
아이들이 눈에 밟히니 내 아이도 너무 그리웠다. 동그란 머리, 볼록한 이마, 긴 속눈썹, 웃을 때 찡긋하는 콧등, 외까풀 눈, 까맣게 그을린 팔과 손등, 완두콩 같은 발가락, 오물오물 야무진 입술, 그 입술로 터져 나오는 예쁜 말들…. 옷가게에 가도 아이 옷만 보이고, 아사이볼이나 옥수수 구이를 먹을 때도 아이 생각이 났다.
걱정이 무색하게 아이는 아주 잘 지내고 있다고 했다. 양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어린이집도 잘 가고 아빠와도 잘 잔다고 남편이 자랑스레 소식을 전해주었다(엄마 껌딱지인 아이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빠와 단둘이 잔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매일 아침저녁으로 시간을 정해놓고 영상통화를 걸었다. 처음 며칠은 조금 심통이 난 듯 쳐다보지 않다가 “서운했어?” 물으면 엉엉 울곤 했다. 아이가 울 때마다 나도 몰래 눈물을 훔쳤다.
“엄마, 재밌게 놀고 와.”
아빠가 시키는 대로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다가 입을 삐죽거리며 울음을 터트렸을 땐, 나도 참지 못하고 카페 한가운데에서 엉엉 울고 말았다.
이게 무슨 난리람.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막상 아이와 떨어지니 마음 한 구석이 텅 빈 듯 허전했다. 잘 먹고 잘 놀다가도 불쑥불쑥 떠오르는 아이 생각에, 아 내가 엄마가 되었구나, 깨달았다. 앞으로 이 아이의 존재는 평생 이렇게 마음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겠구나.
요즘은 어떤 글을 써도 아이로 귀결된다. 아이를 낳은 날, 친구에게 문자를 보냈다. ‘너는 너무 소중해. 너 손꾸락 발꾸락을 보면서 어머니 아부지가 진짜 많이 행복했을 거야.’ 진심이었다. 아이를 낳고 보니 듣던 대로 새로운 세계가 열렸는데, 그 세계를 알게 되어 기쁘다. 작은 손과 발에 다섯 개씩 공평하게 손가락과 발가락이 있다는 것이, 배 속에서 열 달을 버티고 건강하게 태어난 것이 당연하거나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고, 나 자신을 포함해 세상 모든 사람이 ‘정말로’ 소중하다는 걸 ‘진짜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세계가 조금씩 확장되어 남의 아이에게도 책임감을 느끼고, 좋은 어른,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가끔 아이가 없는 삶을 생각해볼 때도 있다. 그러면 나는 더 일을 잘했을까, 자유롭게 살았을까, 그래서 더 행복했을까. 그럴 수도 있다. 그렇지만 분명한 건, 평생 낯선 이에게 “아이가 몇 개월이에요?”라고 묻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 대화를 하고 이런 마음을 알 수 있는 주책바가지 애기 엄마라 좋다.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