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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늘 Oct 30. 2022

우붓 어드벤처

서핑 캠프 기간 내내 꾸따에서 내 보호자를 자처한 유를 위해 나도 여행을 선물하고 싶었다. 우붓. 다섯 번째 발리에 오면서 우붓 여행은 처음이라고 했다. 배낭 하나에 간단히 짐을 싸서 우붓으로 떠나기로 하고 아무것도 알아보지 말라고, 내가 다 알아서 한다고 큰소리를 쳤다. 우붓이 처음인 건 나도 마찬가지였지만 유가 내게 서핑의 즐거움을 알려주었듯, 새로운 즐거움을 나누고 싶었다.


낯선 여행지에 혼자 떨어졌을 때,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해 하는 두 가지가 있다. 빵집 구경하기와 자전거 타기. 여행지에서 나의 루틴은 다음과 같다.

1. 숙소에 짐을 풀고 호스트 혹은 숙소 직원에게 어디에서 자전거를 빌릴 수 있는지 묻는다(의외로 검색보다 묻는 게 빠른 경우가 많다. 게다가 '용감하게 묻기'는 여행자의 특권이니까).

2. 자전거를 빌린다.

3. 자전거를 타고 동네 여기저기를 돌면서 주변 풍경과 분위기를 익힌다. 이때, 눈으로는 부지런히 빵집을 찾는다.

4. 자전거를 반납한 뒤 찜해놓은 빵집을 경유하는 코스로 산책한다.

5. 빵집에 들어가 빵 구경을 한다. 목적은 '구매'가 아니라 '구경'이다. 부스러기 하나까지 찬찬히 구경하고 진짜 먹고 싶은 빵을 한두 개만 사서 숙소로 돌아온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단순히 자전거와 빵집을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람뿐만 아니라 환경에도 낯을 가리는 성격상 동네를 눈에 익히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선 한 바퀴를 휘휘 돌고 나면 깜깜했던 지도에 하나둘 불이 켜지는 것처럼 머릿속에 동네가 입력된다. 그리고는 가장 좋아하는 곳(빵집)에서 익숙한 냄새(빵 냄새)를 맡으며 안정을 찾는 것이다. 맛있는 빵은 덤이고! 다행히 어떤 나라든, 어떤 도시든 자전거 빌리기는 크게 어렵지 않고 구경할 빵집도 충분하다. 심지어 돈도 별로 안 든다.


그러나 발리에서는 둘 중 어느 것도 하지 못했다. 스무디볼 가게나 카페는 흔하지만 맛있는 빵집은 찾기 어려웠다. 게다가 오토바이가 주를 이루는 이곳에서 어찌어찌 자전거를 빌린다 해도 자전거를 타고 오토바이 행렬 속으로 들어갈 자신이 없었다. 고민 끝에 에어비앤비를 뒤져 자전거 투어를 예약했다.


‘우붓 시골길 자전거 투어’라는 한적한 이름을 가진 투어였다. 우붓 토박이인 젊은 가이드와 그의 집을 방문해 전통 간식을 먹으며 환영 의식을 치르고, 동네 한 바퀴를 자전거로 돈 뒤 점심을 먹고 커피 한 잔을 한 뒤 헤어지는 완벽한 일정이었다. 시간 맞춰 호텔로 데리러 온 친절한 가이드와 그의 집에 도착했을 때까진 좋았다. 현지 친구 집과 비슷한 듯 느낌이 다른 가이드의 집도 좋았고, 전통 의상을 둘러 입고 미간과 쇄골에 쌀알을 붙인 뒤 행복을 빌어주는 의식도 좋았다. 조식을 배 터지게 먹고 나왔지만 그의 아내가 내어준 간식과 과일을 먹으며 아이와 BTS를 주제로 신나게 수다도 떨었다. 그러니까, 자전거를 발견하기 전까진 모든 것이 완벽했다.


“자 이제 출발해볼까? 준비됐어?”

해맑은 가이드의 얼굴 뒤로 산악용 자전거가 수줍게 기다리고 있었다. 헬멧까지 제대로 갖춰 쓰고 보니 샌들을 신은 건 우리뿐이었다.

“Don't push yourself! Don't forget, this is your holiday!”

경쾌한 그의 말과는 달리 익숙지 않은 산악용 자전거를 타고 구불구불한 논길을 건너다 논두렁에 발이 빠지고, 남들 인생 사진 건진다는 발리 스윙을 앞에 두고 땀범벅이 된 채로 논밭 트래킹을 했다. 어이가 없어서 내내 웃음이 터졌다. 그럼 그렇지, 역시 우린 시트콤이 체질이지.


그래도 힘들다 싶을 때쯤 눈앞에 광활한 논밭이 펼쳐지고, 지친다 싶을 때쯤 긴 내리막길이 나왔다. 핸들을 부여잡고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언제 또 우붓에서 이렇게 격하게 자전거를 탈 수 있겠냐며 서로를 위로했다. 우붓에 간다고 하니 사람들이 우붓은 힐링이라고 했는데, 우리가 다시 정정해주어야겠다. 누가 우붓이 힐링이래? 우붓은 어드벤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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