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차 편집자의 1인 출판 생존기
"이름 님, 출판사 차리고 싶은 마음 있으세요?"
"전혀요. 1도 없습니다."
지금도 그렇습니다만, 제 꿈은 그저 오래오래 책을 만드는 할머니 편집자가 되는 것이었어요. 출판사 대표라니, 이보다 안 어울리는 옷은 없다고 생각했지요. 하지만 지금 저는 제가 만든 작은 출판사 사무실에 앉아 이 글을 씁니다. 어쩌다 나는 출판사를 차렸나, 곱씹으면서요.
아무리 생각해도 ‘얼떨결’이라는 단어가 적절할 것 같습니다. 육아휴직이 종료된 지난여름, 둘째는 고작 8개월이었습니다. 어린아이를 두고 다시 출근할 엄두가 나지 않았고, 고민 끝에 퇴사를 하기로 합니다. "당분간 내 직업은 가정주부!"라고 선포하고 제법 진지하게 육아에 매진할 계획이었습니다. 계획은 분명 그랬어요.
프로 주부답게 모처럼 서재를 뒤집어 청소하던 어느 날, 책장 한 구석에 놓여 있던 애착 신발 상자를 열어보게 됩니다(왜 청소만 하면 앨범이 보고 싶고, 오래된 편지가 읽고 싶고, 있는지도 몰랐던 상자를 들춰 보게 되는 걸까요?). 이 애착 신발 상자로 말할 것 같으면, 20여 년 전부터 모은 각종 사진과 엽서, 그림, 스티커 등이 들어 있는 저의 보물 상자입니다. 숱한 이사 속에서도 살아남은 굳건한 존재이지요.
그 상자에서 오래된 여행의 기록을 발견한 것이 모든 것의 시작이었습니다. 무려 12년 전, 스물셋 휴학생이었던 저는 필름 카메라 하나 덜렁 들고 혼자서 긴 여행을 떠나는데요. 그때 찍은 사진과 필름, 낙서와 일기 들을 봉투에 고이 모아두었더라고요. 어디서 본 건 있어가지고 어설프게 레이아웃도 짜 두고요. 잊고 있던 기록들을 꺼내 처음으로 ‘내 책’을 만들어 보기로 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습니다. 재미로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겨 책을 제대로 만들고 싶었고, 인쇄소 계약하고 유통을 고민하다 보니 ISBN(책의 주민번호 같은 거랍니다)을 발급받게 됐고, 그러려면 출판사 등록도 해야 했습니다. 이왕 출판사를 등록한다면 이름도 로고도 출판사 성격도 제대로 고민해 봐야겠더라고요. 그러다 사업자등록을 하고, 독립서점뿐만 아니라 교보문고, 예스24, 알라딘과도 거래하게 되었습니다. 책과 출판사를 알리려고 SNS도 시작하고요.
그리하여 저는 출판사를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막 3개월 차에 접어든 새내기 출판사 대표로 1인 다역을 해내는 중입니다. 출판에 대해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했는데, 책 만드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온몸으로 체감하면서요. 함께 일했던 수많은 디자이너, 마케터, 대표님 들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인지도 뒤늦게 깨닫습니다.
매주 월요일에 이름서재의 우당탕탕 생존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출판사 이름은 왜 이름서재가 되었는지, 인쇄소는 어떻게 찾았는지, 1인출판사 대표는 누구랑 상의하는지 등 출판사를 차리고 보니 벌어진 일들을 꾸준히 기록해 볼게요. 부디 ‘폐업기’가 아니라 ‘생존기’가 되기를 바라며!
다음 주 예고
책 만드시려고요? ‘내 책’ 만들 때 놓치기 쉬운, 그러나 절대 놓치면 안 되는 것! (힌트: 제가 다 놓쳐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