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서재는 출판사입니다. 바닥 청소부터 브런치 연재까지 혼자 하는 1인출판사이지요.
혼자서 출판사를 운영한다고 하면, 대화하던 상대의 눈빛이 살짝 달라집니다.
“혼자 일하는 건 어때요? 자유로우시겠죠?”
“혼자 일하시는 걸 보니 능력자시죠? 시간 관리는 어떻게 하세요?”
언제나 1인출판사의(저의) 우당탕탕을 고백하곤 하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 일한다는 건 의지와 능력과 자제력이 필요한 일이고, 그걸 잘 해내니까 혼자 일한다는 전제가 깔린 질문을 받을 때, 아주 난감해요. 노하우가 없거든요.
대뜸 고백을 하나 하자면, 저는 아주 게으릅니다.
생각이 많고 행동이 굼뜨죠. 의욕과 아이디어는 넘치는데 실행으로 옮기기가 정말 어렵습니다. 20대에는 스스로가 부팅이 느린 컴퓨터라고 생각했어요. 집중하기 시작하면 밥도 안 먹고 거뜬하게 밤을 새울 수 있는데, 집중하기까지가 너무나 어려운 거죠. 이걸 어떻게 고칠까 오래 고민했어요.
저의 첫 직장은 잡지사였는데요. 여기서 게으름뱅이가 ‘마감’을 만나는 역사적인 순간을 경험합니다.
마감: [명사] 정해진 기한의 끝.
마감은 영어로 deadline, 단어 그대로 넘으면 죽는 거예요. 매달 죽을 고비를 넘기며 스스로에 대해 두 가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1) 죽기 싫다
2) 대충 못한다
5년 동안 매달 마감과 씨름하며, 드디어 스스로를 다루는 방법을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마감이 있으면 움직이는 사람이구나. 그것도 아주 격하게 움직이는 사람.’
마감은 무거운 엉덩이를 움직이게 하는 유일한 버튼이었어요. 그때부터 뭔가 하고 싶은 일이 생기면 마감을 정하고 상황에 나를 밀어 넣었습니다.
일단 마감이 공표되면, 내일의 저는 움직일 거예요. 죽기 싫고, 대충 하기 싫으니 열심히 하겠지요. 여기서 중요한 건 ‘마감’과 ‘공표’입니다. 혼자 정한 마감은 안 지켜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잖아요. 그러니 꼭 공개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나만의 약속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지켜보고 있다는 위기감을 심어두는 거예요.
이 연재도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출판사가 나아가는 과정을 (자발적으로) 기록하자고 마음먹었으나, 늘 우선순위에서 밀리더라고요. 그래서 연재를 걸고, 공표했습니다.
“매주 월요일, 브런치에서 <얼떨결에 출판사를 차리다니>를 연재합니다!”
“월요일에 또 글 올라오는 거죠?”라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아, 일요일의 제가 쓸 거예요”라고 답하며 연재 버튼을 누른 몇 주 전의 저를 욕합니다. 그래도 덕분에 계속 쓰고 있어요.
이름서재의 첫 책인 <낯선 사람>도 그렇게 탄생한 결과물입니다. 책을 만들고는 싶은데 일상에 치여 미루고 미루던 어느 날, 친한 기획자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덜컥 출간기념회를 계획해 버립니다. 추진력 넘치는 기획자는 공간 대표님까지 끌어들여 공동 기획으로 프로젝트 덩치를 키우고요. 그렇게 책 없이 출간기념회 날짜와 공간과 동료가 확정되었습니다(추진력 있는 지인을 곁에 두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초고도 마무리되지 않은 상황에 부랴부랴 인쇄소를 알아보고, 인쇄소에서 정해준 데이터 마감일이 <낯선 사람>의 마감일이 되었습니다. 역순으로 계산해 초고 마감일, 교정 마감일, 디자인 마감일을 차례로 잡았어요. 미쳤다고 생각하며 영혼을 끌어다 마감을 치르고, 인쇄 기간 동안 행사 준비에 다시 영혼을 팔며 어찌어찌 출간기념회를 마쳤습니다.
사무실 인테리어도 마찬가지였어요. <낯선 사람>은 텀블벅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제작비를 후원받았는데요. 그때 리워드 목록에 ‘작가와의 만남’을 포함시켰어요. “이름서재 사무실에서 작가와 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눠요”라는 메시지를 담아서요.
이제 막 작은 사무실을 계약하고 청소도 안 한 상태였지만, 누군가 온다고 하면 최선을 다해 세팅할 내일의 나를 믿으며, 또 하나의 마감을 만들어둔 것이죠. 불행인지 다행인지, 몇 분이 작가와의 만남을 신청해 주셔서 그 날짜에 맞춰 바닥 공사를 하고 짐을 옮기고 사무실을 꾸몄습니다. 그렇게 이름서재의 보금자리를 마련하였습니다.
저는 다소 극단적인 편이지만, 혼자 일할수록, 혼자 쓰는 글일수록 마감이 필요하다고 믿습니다. ‘나 마감한다!’고 선언을 하면 더 좋고요. 누가 일을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고, 잔소리하는 사람도 없기 때문에 때로는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는 기술이 필요해요.
혼자 일한다는 건, 결국 나를 움직이는 방식을 찾아내는 일이더라고요. 저에게는 그게 마감이었습니다. 마감은 저를 몰아세우고, 저는 벼랑 끝에서 펄쩍 뛰어오릅니다. 그 결과물이 글이 되고, 책이 되고, 커리어가 되어주었어요. 여러분을 움직이게 하는 건 무엇인가요?
다음 주 예고
진료는 의사에게, 약은 약사에게. 글은 작가에게, 편집은 편집자에게. 작가와 편집자가 동일할 때 생기는 문제에 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