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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Apr 11. 2021

한 곳이 아프면 다른 곳이 아파온다

안녕하세요 파킨슨 씨 5

엄마 아빠는 자식 셋을 키우며 항상 너희는 한 가족이니, 한 몸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하지만 엄마 아빠의 말과 다르게 성격이 천차만별인 우리는 죽이 밥을 넘어 생쌀이 될 지경까지 싸웠고, 서로 남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으며, 본체만체 서로를 외면하기 일쑤였다. 

          

“저 사람이 왜 내 오빠야?”     

“너는 내 왜 내 동생인데?”     

“둘 다 닥쳐”          


셋 사이에선 끊임없이 불협화음이 흘러나왔다. 엄마는 어떻게 내속에서 나왔는데 이렇게 셋이 아롱이다롱이일 수 있냐며 그럴 때마다 소리를 꽥하고 질렀다.        

   

“너네가 암만 싫어도 한 가족인데 어쩔 것이냐. 어휴. 뻥튀기 기계에 넣어서 뻥 튀겨버리고 싶어 정말! 빨리 커서 각자 나가버려라.”          


그런 우리가 아빠가 아프고 나서야 엄마 말대로 한 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좋든 싫든 부인할 수 없다는 것도. 우리는 한 몸이라 한 곳이 아프면 다른 곳이 아파온다. 오른발이 삐면 왼발에 힘이 더 가고 괜히 왼발로 더 지지하다가 나중에는 왼발이 아파오는 것처럼, 골반이 아파서 덜 아픈 자세로 걸었더니 허리가 아프고, 뒷목이 아프더니 어깨가 아픈 것처럼 말이다. 아빠가 아프고 나서 엄마가 아프기 시작했고, 엄마가 아프기 시작하니 우리가 아프기 시작했다.          


처음엔 스트레스성 위염이었다. 아주 오래전부터 엄마는 1년에 한두 번 스트레스성 위염을 앓았다. 그놈이 찾아오면 엄마의 목소리는 가냘픈 이파리처럼 작고 가늘어져, 우리는 엄마의 목소리만 들어도 엄마가 아프다는 걸 단박에 알아차렸다. 당일엔 물도 죽도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로 엄마는 죽은 듯이 누워만 있었다. 죽고 싶어. 항상 에너지가 넘치는 엄마의 입에서 죽고 싶다는 말이 나올 때, 심장이 바닥이 닿지 않는 어딘가로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쿵 소리도 나지 않는 깊은 어딘가로 말이다. 나는 그럴 때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막막함에 괜히 베란다로 나가 눈물을 훔치곤 했다.          


그런 스트레스성 위염이 아빠가 아프고 나선 2주에 한번, 1주에 한번 엄마를 찾아오기 시작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강한 약기운 때문에 아빠는 잠이 많아졌지만, 정작 자야 할 시간에 잠들지 못했고, 아빠가 잠들지 못하면 엄마도 잠들지 못했다. 자신이 잠든 사이에 아빠가 또 실신할까 봐, 어딘가에 넘어져 일어서지 못할까 봐 엄마가 고양이처럼 바짝 귀를 세우고 밤을 새우는 날들이 많아졌다. 깨어있는 시간에도 엄마는 신경이 잔뜩 곤두서 있었다. 엄마가 출근해 있는 동안, 아빠가 전화 한 통이라도 받지 않을 때엔 엄마는 발을 동동 굴렀다. 그런 날이 있으면 꼭 다음날, 엄마는 앓아누웠다.           


“여보세요”          


그럴 때, 다섯 글자가 채 되지 않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 갑자기 머리털이 삐쭉 섰다가 이내 눈을 지끈 감게 된다.          


“엄마 또 아프구나”          

“응..”          


아픈 아빠에게 온 신경을 쏟다가 같이 아파버린 엄마를, 그런 엄마를 보며 또 가슴 한구석에 푸른 멍이 드는 우리를 보며 나는 엄마의 말을 되뇌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한 몸이라 한 곳이 아파버리면 다른 곳도 아파버린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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