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파킨슨 씨 06
나의 첫 책이 출간됐을 때 아빠는 자기 나름대로 홍보를 한다면서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 책의 링크와 함께 이런 글을 올렸다.
‘책이 출간되었어요
난생처음 서핑을 전라도 지방학생이 혈혈단신 서울 연세대에 정시로 합격 흑수저 생활을 통해 졸업과 취업과정 서울 생활에 적응해 나가는 과정을 홀로 외롭게 바다와 투쟁하는 서핑에 녹여낸 글이 출간되었습니다.
지금은 Jtbc pd로 근무하지만 8년간의 대학 취업준비과정과 인턴생활을 통한 비정규직의 설움을 서핑으로 녹여낸 전라도 학생이 서울에서 살아가며 처음에는 친척집을 전전하다 마련한 방한칸에서 서울에 누울 곳을 마련한 인생살이 이야기!
우리 딸 인정을 받기 시작하는 모습이 자량스럽기만 하다,’
이 글을 보자마자 왼쪽 관자놀이가 지끈거렸다. 과거의 나였다면 당장 아빠에게 전화해 글을 내리라고 큰소리를 쳤을 텐데, 지연, 학연을 강조하는 것처럼 써놓은 것도 싫고, 나의 개인 정보를 적어놓은 것도 싫으며, 가족들한테만 했던 얘기를 내가 모르는 사람들 앞에 홀랑 꺼내놓은 것도 싫다고 한마디 말할 시간도 주지 않고 내 말만 쏟아놓은 상태로 전화를 끊어버렸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런 건 아무것도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런 내용들보다 틀린 맞춤법과 오타 그리고 중간중간 고리가 끊어진 주술 관계로 드문드문 이어진 아빠의 글이 너무나 낯설어서, 내가 알던 아빠의 글과는 너무나 달라서, 마우스 위에 얹어놓은 검지 손가락이 덜덜 덜덜 떨렸다. 아빠는 지방지 신문기자 생활을 수십 년 동안 했다. 어려운 한자어는 써도, 쉬운 단어는 쓰지 않았으며, 띄어쓰기를 더 하 면 했 지, 덜한적은없었다. 오타는 말할 것도 없고, 자기가 써놓은 글을 읽고 또 읽고 나서야 확인 버튼을 눌렀다. 이후에 정치인이 돼서도 홍보문자 하나를 두고 90바이트 안에 어떤 말들을 적어야 할지 매일 밤 고민하던 사람이었다.
그 시기 즈음, 아빠의 말도 점점 알아듣기 어려워졌다. 혀 근육이나 성대 근육이 서서히 마비되면서 발음이 어눌해졌다. 안 그래도 웃지 않으면 험악한 표정인 사람인데, 얼굴 근육이 점점 굳으면서 아빠의 얼굴엔 어두운 무표정이 짙게 자리 잡았다. 혹시나 아빠가 이런 자신을 알아차릴까 봐, 우리는 눈과 귀와 입을 크게 열었다.
“아빠 미안, 다른 일 하느라 못 들었어. 한 번만 다시 말해줘.”
그도 안 될 땐 엄마의 도움을 받았다. 엄마는 아빠가 무안할까, 내가 조금이라도 뜸을 들이면 아빠의 말에 손톱만 한 이야기를 붙여 말을 이어 나갔다. 전화를 끊고 나면 그제야 고였던 눈물이 쏜살같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아빠와 우리 사이가 어느새 이만큼이나 멀어졌구나,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나는 어김없이 집으로 가는 기차표를 예매했다.
어쩌면 아빠는 모든 걸 우리보다 빠르게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화장실 거울 앞에서 떨리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얼굴을 잡아 늘여보기도 했고, 모두가 잠든 밤 혼자서 아에이오우, 아에이오우 입을 벌리며 말하는 연습을 하기도 했고, 글을 쓰는 대신 남들이 써놓은 책을 잔뜩 쌓아놓고 읽는 것도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따 이 새끼 발음 더럽게 못하네”
아빠가 아픈지 모르는 친구들은 아빠와 통화를 하다가 못내 답답해하며 말했다. 장난이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몰라서 하는 말이었지만, 그래도 상처가 났다. 굳은 아빠의 표정 위에 당혹스러움이 옅게 내렸을 때, 나는 저게 얼마나 진한 생채기 일지 가늠조차 되지 않아 고개를 푹 숙였다.
“아빠 아픈 거 몰라서 그래”
엄마는 그런 내게 이렇게 말했다.
“차라리 아프다고 말하면 안 돼?”
나는 물었다. 하지만 아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밤, 엄마가 일하러 나간 후 아빠는 대뜸 잠깐 산책을 가자며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서 나도 마침 몸이 근질근질했기에 아빠의 제안을 수락했다. 아빠는 오른손엔 지팡이를 짚고, 왼손으론 내 어깨를 짚은 채 어둠 속에서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이제 방금 우리가 사는 라인 앞으로 나왔을 뿐인데, 벌써 등 뒤에선 가쁜 숨소리가 들려왔다.
“아빠 괜찮아?”
“... 웅 괜찮다 아직은.”
“언제든 안 괜찮으면 말해.”
“웅 그럴게”
아빠는 아프고 나서 모든 게 다 순해졌다. 성격이 바뀌었다기보다는 모든 것에 다 힘이 빠진 것처럼, 다운된 느낌으로 말이다.
“석영아”
얼마나 걸었을까. 아파트를 반 바퀴 정도 돌아 뒷 화단쯤에 이르렀을 때 아빠가 다시 나를 불렀다.
“아빠가 요새 너무 후회가 돼. 아빠가 쌓아온 모든 게 눈앞에서 다 재가 되어 사라졌잖아. 이제는 글도 잘 못 쓰고, 말도 잘 못하고,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없어. 바보가 되어버렸어. 아빠가 고장이 났다.”
아빠는 말을 하곤 너털웃음을 지어 보였지만, 나는 그 웃음이 웃음으로 들리지 않았다. 자신의 기분을 말하고는 싶은데, 내가 또 너무 걱정하는 건 싫어서, 자식을 걱정시키면 안 될 것 같아서 지어 보이는 위장술 같은 것.
“아빠 요새 우울해?”
아파트를 한 바퀴 빙 돌고 나서 아빠는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아빠의 손에 들린 라이터의 불빛이 파르르르 떨리는 걸 보면서 나는 아빠에게 물었다.
“.... 그래도 딸내미 오면 힘이 난다. 아빠가.”
담배 한 가치가 재가 되어 바닥에 떨어질 때까지, 아빠는 끝끝내 내가 물은 질문엔 답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