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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뇽 Apr 11. 2021

disease blue 3

안녕하세요 파킨슨 씨 8

단단한 걸로 따지면 엄마 못지않은 사람이 가족 내엔 또 있는데 그건 석진 오빠다. 오빠는 데이터 분석가로 빅데이터를 분석해 기업의 전략을 마련하는 일을 한다. 처음 오빠가 그 일을 한다고 했을 때, 나는 그 선택이 너무 오빠답다고 생각했다. 딱 맞아떨어지는 무언가를 좋아하기도 하고, 희미해 보이지만 그 속에서 정확한 사실을 찾으려 하는 게 꼭 오빠 같았기 때문이었다. 가끔 1원 단위까지 나눠서 계산하는 오빠를 보고 있으면 정이 떨어지긴 했지만, 뭐 꼭 정을 가져야 하는 건 아니니까 또 저러네 하고 넘기곤 했다. 아빠가 아프고 나서 오빠가 아빠의 모든 보험과 재산 내역을 정리하겠다고 했을 때도 나는 참 오빠다운 발상이라고 중얼거렸다.          

“엄마, 아빠 연명치료 의향서 써야 하지 않을까?”          


그러던 어느 날, 오빠는 나와 엄마에게 그룹콜을 걸어, 대뜸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때 연명치료 의향서라는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환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연명치료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의식이 있을 때 정해놓는 서류라니, 그걸 정부기관에서 관리한다니, 세상이 많이 변했다는 생각과 함께 묘한 기분이 밀려왔다.          

오빠는 벌써 거기까지 생각하는 건가, 싶기도 하고 아무도 생각 안 하는 것보다 낫지 싶으면서도 굳이 그래야 하나, 싶기도 하고, 그러다 내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됐을까 싶기도 했다. 아빠가 떠난 후 엄마를 위해서도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이런 말을 하는 내가 못내 후레자식 같고 불효자식 같아서 가슴에 돌이 가득 쌓인 듯 몸이 무거워졌다. 이게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는 일들이 자꾸 내 삶에 쏟아졌다.          


그날 밤, 집에 들어오자 혼자 거실 테이블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는 오빠가 눈에 들어왔다. 그 모습에 너무 놀라 오빠를 불렀다.          


“뭐야 술 안 마시잖아”          


오빠가 술을 먹는 모습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 그냥 이럴 때 마시는 건가 싶어서”          


오빠는 조금 쑥스러운지 술잔을 쳐다보며 말했다.           


“같이 마시자”          


나는 가방을 내려놓고 주방에 가서 컵을 들고 오빠 옆에 앉았다. 언제 우리가 이렇게 커서 서로 술을 마실 나이가 됐는지, 조금 닭살이 돋았다. 나는 컵을 내밀며 술을 따라보라는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왜 그래? 차였어?”          


오빠는 내 말에 실없이 웃더니, 이내 자신의 잔에 담긴 술을 꿀꺽꿀꺽 삼키고는, 다시 잔을 채웠다.           


“술도 못 마시는 사람이 왜 이래? 아빠 때문이야?”          


오빠는 한참을 말없이 손가락으로 잔을 두드리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내가 참 못났다. 아빠가 건강했으면 좋겠는데,
엄마도 잘 살았으면 좋겠는데
그 모든 걸 지키면서 사는 게 너무 어려워    


그때 나는 오빠답다고 생각했던 스스로가 생각나 조금 부끄러웠다. 오빠에게도 아빠인데, 나와 마음이 같으면 같았지 덜하진 않을 텐데, 미워한 걸 들킬까 봐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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