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이 Aug 24. 2024

그 시끄럽던 아이들은 어디 가고

고요하고 평온한 어른들의 세상


아이들을 캠프에 보낸 뒤 우리끼리 갖는 오전의 티타임은 향긋했다. 그 시끄럽던 아이들은 어디 가고 어른 넷만 남았다. 넓은 숙소의 거실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먹는 조각 케이크가 카페에서 먹는 것보다 훨씬 맛있었다. 값비싼 한국의 오션뷰 객실과 카페가 부럽지 않았다. 화장기 없는 맨얼굴로 맞이하는 바다였지만 내 얼굴은 그 순간 해 같이 빛났을 것이다. 내 일상으로 들어와 주었던 거대한 태평양의 한 조각으로 인해.


숙소에서 보이던 풍경


커피와 함께 곁들여 먹은 페이레스 마켓의 도넛은 파리스코의 초콜릿 케이크만큼이나 달콤했다. 커피는 물론 나니가 내려준 드립커피가 최고였다. 괌의 커피 맛은 밍밍하다고 한 리뷰를 보고 꼼꼼한 나니가 미리 챙겨 온 것이다. 나니는 매일 저녁 얼음을 얼리고 매일 아침 커피를 내려주었다. 평소 커피를 입에 대는 사람은 나니와 나뿐이었다. 우리는 피를 나누지 않았지만 매일 커피를 나누었다. 커피를 나누며 마음을 나누었다.


페이레스 옆에 있던 파티세리 파리스코


변변한 옷 하나 없는 나를 위해 나니가 한국에서 가져온 파격적인 드레스를 빌려 입고 해변에서 커플사진을 찍었다. 멋진 야자수가 있는 괌 조형물 앞에서도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댔다. 어딜 가나 아이들 사진만 찍기 바쁘던 우리는, 서로의 가장 빛나는 모습을 담아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이십 대 시절 친구들끼리 갔던 여행에서도 이렇게 사진을 많이 찍은 적은 없었다. 비록 한 장의 사진을 건지기 위해 똑같은 구도만으로 몇 십장을 찍어댔지만, 카메라에 가득 채운 어른들의 사진은 그동안 저장되어 있던 아이들의 사진을 밀어내기에 충분했다. 어머님의 카톡 프로필 사진도 오랜만에 바뀌었다.


해변에서도 나니가 야무지게 챙겨 온 커피를 마셨다.


괌까지 갔으니 30분 촬영에 200불을 주고 스냅사진을 찍을까도 생각했지만, 서로가 찍어준 사진을 공유해 보니 그럴 필요가 없었다. 비록 화질과 구도는 전문가의 손길만 못했겠으나 우리의 표정만큼은 최고였다. 아들 부부가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 오빠 부부가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뜨거운 햇살 아래 열심히 카메라를 들이대 준 덕분이다. 괌에 오기 위해 갖다 붙였던 결혼 10주년 여행이라는 타이틀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아이들은 다행히 캠프에 잘 적응하고 있었다. 조카들의 영어 실력에 비해 캠프는 놀이 수준이라서 나니는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아이들이 캠프에 군말 없이 가주는 것만으로도 어른들의 시간이 확보되었다며 감사해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바라는 것의 방향과 수준을 조금씩 수정해 갔다. 첫날엔 캠프에 다녀온 아이들에게 어떤 친구를 사귀었는지, 무슨 문장을 말해보았는지 위주로 묻다가, 나중엔 즐거웠는지를 위주로 물었다.



오늘은 즐거웠지만 다음날엔 가기 싫다고 하는 아들에게는 한 번 더 부딪혀볼 것을 권했다. 익숙한 친구들을 떠나 낯선 상황에 놓인 아이들은 적응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애썼을 것이다. 생김새가 다른 사람들이 말을 걸어오는 상황이 두렵기도 했을 것이다. 그 자체로 도전이었을 것이다. 다른 언어가 들리지 않고 자기 뜻을 말할 수 없어서 답답한 상황을 경험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고 아이에게 말해주었다.



언어의 학습 효과를 기대했다면 국내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영어캠프가 적합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애초에 29초 컷의 경쟁률을 뚫고 영어캠프에 신청할 만큼의 의지도 없었다. 괌으로 영어캠프를 계획한 시누이 가족을 따라 가족여행을 결정했을 뿐이다. 그런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었다. 괌에 다녀온 후 우연히 마주친 아이 친구의 엄마는 학습 효과 측면에서 국내 영어 캠프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매일 픽업해 주는 아이 친구 엄마도 대단하고, 잘 따라가 주는 아이 친구도 대견하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나는 이미 만족했다. 이것은 어른들의 휴가였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이때를 떠올릴 것이다. 매일 잠자리에서 엄마아빠에게 이야기했던 것처럼 언어가 낯설었고, 그래서 서로가 힘이 되었고, 캠프에서 먹었던 도시락은 맛있었고, 캠프에서 틀어준 애니메이션이 아닌 실사 영화는 무서웠다고. 엄마가 전날 적어준 쪽지에 쓰인 문장을 슬쩍 보고 외운 후 티처에게 용기 내서 말해보던 순간도, 그 순간의 떨림도 기억할 것이다. 매일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반겨주던 티처들의 미소도. 자신에게 웃으며 말을 걸던 티처에게 대답하지 못하고 지나쳐서 미안했던 마음까지도. 그리고 나선 매일 캠프를 마친 후 지는 노을을 보며 수영했던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한국이었다면 시끄럽게 떠들었을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할 수 없어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조용할 수밖에 없었을 순간을 상상한다. 그 시끄럽던 아이들은 어디 가고 침묵이 남았다. 아이들을 끼고 있던 어른들 사이에도 조용한 침묵이 흘렀다. 고요한 바다를 바라보며 각자의 마음을 살폈다. 일렁이던 물결이 파도가 되어 부서지는 것을 보았다. 뭍에 다가온 파도의 거품은 세차게 생겨나고 조용히 사라졌다. 여전히 살아있음을 주장하는 나의 자아가 철썩철썩, 파도소리에 혼나고선 말했다.



여기서부터는 뭍이다. 이곳은 바다가 아니다. 나는 당신을 삼킬 수 없다. 나는 여기서 나로서 존재하고, 당신은 거기서 그대로 살아있으라.


쏴아아 솨아, 잔잔한 해변가의 평온한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는 고운 모래가 있다. 움푹 파인 자국들도 말끔하게 씻어낸다. 다시 평평한 새 길을 만들어낸다. 신을 벗고 거닐게 되는 그곳에는 사랑이 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