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글로벌 IT 대란 사태로 인해 우리가 탑승할 항공기 출발이 지연되었다. 총 세 번의 지연 안내가 있었고 결국 약 네 시간이나 지연되는 바람에 우리는 날짜를 넘겨서 출발해야 했다. 지치고 힘들었으나 여행 첫날부터 김이 새지 않도록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기다림이라는 건 아이들에게 더 힘든 법이다. 이럴 때 긍정적인 면을 보게 해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일 터.
"캄캄할 때 도착했으면 무서웠을 텐데 잘됐다!"
그렇다. 괌 공항에서부터 숙소를 찾아가는 길은 처음인 데다 캄캄한 새벽에 운전을 하는 것도 위험한 일이다. 차라리 동이 터서 밝을 때 도착한 것에감사했다. 또한 우리를 마중 나와주었던 유학원의 현지 관계자에게도 덜 미안한 일이 된 셈이다.
게다가 우리가 도착한 첫날은 괌의 공휴일이었다. 처음엔 아이들의 캠프 일정이 그만큼 뒤로 미뤄지게 되어 공휴일이라는 사실이 반갑지 않았으나, 일이 이렇게 되고 보니 하루를 마음 놓고 쉴 수 있어 더욱다행이라고 생각되었다.
급한 수술 일정이나 비즈니스 업무가 있던 사람들에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겠으나, 가족 여행을 목적으로 온 우리에겐 그다지 큰 타격이 아니었다. 보상을 운운하며 불평하는 남편에게 나니는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잠잠히 기다리자고 말했다.
물론 처음부터 네 시간 지연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가 대기했던 곳은 세계적인 인프라를 자랑하는 인천국제공항이었다. 우리는 라운지에서 여유 있게 식사를 했고, 콘센트가 설치된자리에 앉아서 각자 할 일을 했다. 아이들은 핑크퐁과 뽀로로가 있는 패밀리센터에서 신나게 놀았다.
괌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날에도 항공기는 두 시간이나 지연되었다. 다행히도우리는 단기로 빌린숙소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오전 11시에 체크아웃할 필요가 없었다.마지막 수영을 하며 실컷놀고서도좀 더 자다가 길을나설 수 있었다.
항공기가 지연되어 공항에서 대기하는 시간도 여행의 한 부분이었다. 그곳에서도 우리는 함께 있었다. 빛나는 해변에서 웃으며 사진 찍는 순간도 소중했지만, 우리가 하나의 목적지를 두고 함께 모여있는 시간도 소중했다.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착하기를 바라며 끊임없이 서로를 살피고 함께 했던 여정이기에 그러했다.
5학년 형아에게 감히 팔씨름 대결을 신청하다니. 결과는 완패. 몸을 내던진 멋진 승부였다.
하루를 보내는 중에도 배부르고 기분 좋을 때가 있고, 지치고 피곤할 때가 있다. 그런 순간들이 모여 하루를 이룬다. 그것이 일상이고, 일상은 무엇보다 소중하다.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여행을 한다던 어느 작가의 말이 떠오른다.
지연은 계획한 시점으로부터 발생한다. 계획이 있기에 지연이 생긴다. 지연이 반갑지 않은 이유는시간과 공간의 자유를 박탈당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이후일정에 차질이 생기고, 내 순서가 정확히언제인지 모른 채 대기 상태로 묶여있는 것은 분명지치는 일이다.
그러나 어쩌면 우리네 인생 또한 살아있는 한 무한정 대기 상태에 놓인 것일지 모른다. 그 안에서 나름대로 자신만의 지경을 넓혀가지만, 그것이 꼭 계획만으로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세상에 태어난 것부터가 나의 계획은 아니었다.
그러니 살아가다 내 인생이 무언가 지체되어 있다고 느껴진다면 누군가 내 인생을 계획했을 터, 묵묵히 기다리며 나의 인생을 살아가면 될 일이다. 기다린다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진 않는다.최선을 다해 내 몫을 살되, 조급해하지 않으며 나의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나의 때를 앞당기기 위한 힘을 쓰는 것도 좋다. 그러나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삶의 자리를 이탈하지 않는 것이다. 그저 살아있으면 될 일이다. 그러면 언젠가 이륙을 위한 탑승 사인이 날 테니까.
바다는 하늘의 색을 반영한다.
<괌성여행> 11화를 마지막으로 연재를 마칩니다. 그동안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라이킷과 댓글로 응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족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고, 관계에 집중하고, 인생을 바라보는 시간이 소중했습니다. 감성으로만 살아갈 수 없는 인생이지만,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한 여행은 때로 필요한 것 같습니다.<괌성여행>을 통해 여러분의 일상에도 '괌성' 한 스푼 더해졌길 소망합니다. 오늘도 삶의 자리를 이탈하지 않고 묵묵히 일상을 살아갈 여러분을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