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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Oct 28. 2024

김창옥쇼는 쇼가 아니다

김창옥 씨, 보세요.


인터뷰 방송을 좋아한다. AI 시대라서 질문력이 대두되는 게 아니다. 아날로그 시대에도 사람을 인터뷰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질문이었다.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답변의 질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각 분야의 인터뷰어나 취재 기자들은 질문력의 중요성을 늘 인식해 왔을 것이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최고의 MC라고 평가받는 유재석도 마찬가지다. 예능의 특성상 예리하고 날카로운 질문보다는, 편안한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도록 '말을 걸어주는 형태의' 부드러운 질문을 던진다. 비교적 가벼운 질문들로 답변자의 부담을 덜고, 중간중간 웃음을 더해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김창옥쇼는 예능 프로그램이 아니고 무대와 관객석이 구분된 채 진행되는 강연이다. 그런데 김창옥 씨(내 마음속 선생님을 이렇게 지칭하는 이유가 있다. 잠시만 이해해 주시라)는 강연자와 MC 두 가지의 포지션을 취한다. 관객의 사연을 들어주는 과정에서 인터뷰를 진행하기 때문이다.


그가 던지는 질문들은 인터뷰어의 질문을 넘어선다. 인터뷰어의 목적은 인터뷰이, 즉 인터뷰를 당하는 사람을 파헤치는 데 있다. 파헤쳐진 인터뷰이에 대한 정보를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위한 목적으로 인터뷰를 하고 취재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김창옥쇼에서 김창옥 씨가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은 스스로 그를 파악하는 데 목적이 있다. 물론 그 시공간을 공유하고 있는 다른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확인하고 정리하기 위한 목적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일차적으로는 사연을 들고 온 관객에게 어떤 답변을 주기에 앞서 본인이 그를 이해하는 과정인 것이다.


나는 그 과정이 참 좋다. 관객을 보고, 그를 알기 위한 질문을 던지고, 그가 하는 말을 진심으로 듣고,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들려주는 과정이. 일대 다 형태의 강연 무대라 일대일 상담처럼 깊게 다룰 수도 없고, 예능처럼 시종 가벼울 수도 없는 그 상황에서 그가 취하태도와 방향이.


강연자와 MC의 역할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상담가의 역할까지 감당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역량이다. 대한민국에서 전무후무한 인물이 아닐까 싶다. 이런 역량을 가진 사람을 한국의 오프라윈프리라고 하던데, 글쎄. 이젠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하지 않을까. 토크쇼 형태로 진행되었던 오프라윈프리쇼도 김창옥쇼의 강연 형태로 진행하라고 하면 이만큼 해낼 수 있을까 싶다.


심지어 어느 목사님은 설교 준비를 할 때 김창옥쇼를 가장 많이 참고한다고 할 정도다. 신학적 지식은 목사님이 더 많이 갖고 있을지언정, 성도의 삶을 이해하고 그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방식에 있어서만큼은 김창옥 씨에게 배울 점이 많다는 것이다. 나는 그 인터뷰를 보고 성도들에 대한 목사님의 진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한때 목사의 길을 걸을까 고민했던 김창옥 씨는 얼마나 감회가 새로울까 싶었다. 여러 이유로 신학의 길을 걷지 않았지만 되려 신학자에게 레퍼런스를 제공하는 입장이라니.


이런 점에서 김창옥쇼(show)는 쇼가 아니다. show는 말 그대로 보여주기 위한 무대나 구경거리를 뜻한다. 일부러 꾸미는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김창옥쇼는 김창옥 씨(see)로 바뀌어야 한다. 사연을 들고 나온 관객을 눈으로 보고, 보고 알기 때문이다. 김창옥 씨가 관객에게 내보이는 자신의 것들 또한 관객이 본인의 처지와 고민하는 그 지점에서 보고 알만한 것들이다. 그럼으로써 관객이 자기 내면을 보고 알게 하는 것이다. 


사연을 제보하지 않은 관객들조차 그 삶과 진심에 감화된다. 같은 문제를 지니진 않았지만 또 다른 모양의 삶의 무게가 있기에,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고 응원한다. 비록 표면으로 드러난 모습들은 이해할 수 없어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표출되는 내면의 문제들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있다. 우리는 쉽지 않은 인생을 살아가는 같은 인간이기 때문이다.


김창옥쇼에 나오는 사연 관객들은, 방송 출연을 통해 유명해져 보려는 사심은 하나도 없어 보이는 소박한 우리네 이웃이다. 오히려 후폭풍이 두려울 정도의 사연을 공유한 그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나와 가족만, 혹은 가까운 지인들만 알고 있던 상처들을 동네방네 아니 전국구에 공개하는 셈이니까 말이다. 내가 이곳 브런치에 얼굴도 이름도 공개하지 않고 쓰는 이야기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그 정도의 용기를 낼 수 있게 만드는 김창옥 씨는 더 이상 김창옥쇼의 호스트가 아니다. 김창옥 씨를 보기 위해 모여드는 사람들은 결국 자신을 보기 위해 모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용기만큼 커다란 용기가 있을까. 그러므로 인생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 힘든 사람들은 김창옥쇼를 보시길 추천한다. 울다가 웃다가 엉덩이에 뿔나겠지만.


* 사진 출처: 디글 유튜브 채널

[김창옥쇼 3] 엄마의 쓰레기 왕국 집


딸의 입장이 나와 비슷했기에 더 눈길에 갔던 사연이다. 고민 자체에는 공감이 가면서도 웃으며 공유할 수 있는 상황에는 공감이 되지 않아 기분이 묘했다. 차라리 부러웠다고 말하는 편이 솔직할 것이다. 차마 이미지로는 공개할 수 없어 글로나마 묘사했던 내 엄마의 쓰레기 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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