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세의 배우 김수미 님이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부고를 듣고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76세인 나의 아버지다. 내 나이도 헷갈리기 시작했는데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아버지 연세를 따지며 살 리 없다. 숫자가 커질수록 부담만 될 뿐이다. 그래도 칠십 줄에 접어든 지 오래인데 정확히 몇 세인지, 작고한 그녀의 연세보다 몇 살이나 더 많이 잡수신 건지 계산해 보니 역시 그러하다.
그녀의 부고 소식을 전하는 기사에 슬퍼하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연일 보도되었다. 장례식에 다녀가는 많은 사람들과, 슬퍼 보이는 그들의 표정보다도 내가 궁금한 건 그녀의 가족들이었다. 슬프겠지. 가족이니까.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슬프겠지? 가족이니까.
이런 생각이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떨치려 해도 하루 중 한 번 이상, 어느 날은 그보다 더 생각이 났다. 얼마 전 출장을 핑계 대고 고향에 다녀온 날에도 교회 앞에서 잠깐 얼굴만 보았다. 약속이 있다며 알아서 피해 준 아버지가 고마웠다. 그게 피차 서로에게 좋다고 생각했다. 애초에 예약해 둔 숙소도 2인 전용이라 아빠의 자리는 없었다. 바꿀 생각도 없었다. 역시 핑계대기 좋다고 생각했다.
나의 아빠는 늦은 나이에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엄마와 결혼했다. 나는 아빠가 노총각으로 늙어 죽을 팔자였다고 생각한다. 그 정도 책임감과 한량 같은 태도로는 가족을 건사하면 안 되었을 거라고. 아빠는 경제적인 이유로 위장이혼을 제안했다가 반대하는 엄마를 때리기도 했다. 큰 소리가 나더니 방에서 뛰쳐나와 도망가는 엄마를 기어이 잡고, 넘어진 엄마를 발길질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아주 나중에서야 엄마로부터 그 발길질의 이유를 듣고 나서는 참 어이가 없었다.
대신 아빠는 그 일에 대해 두고두고 사과하셨다. 그때 그 흉악한 모습을 지켜보던 나의 눈빛을 잊을 수 없노라며, 다시는 폭력을 쓰지 않겠노라 다짐했다고 한다. 그 뒤론 정말 엄마가 맞는 모습을 본 적은 없다. 손까지 올라가는 모습은 봤지만, 올라간 손을 내리는 것에도 많은 힘이 들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사춘기였던 언니에게 손찌검을 몇 번 한 뒤에도 아빠는 많이 후회하셨다.
후회한대도 상처는 남았다. 언니의 얼굴에는 찢어져서 꿰맨 흉터가 남았다. 반면에 나는 아빠에게 한 대도 맞지 않고 자랐다. 그 험악한 장면들을 목도했던 터라 자연스레 눈치를 보기도 했고, 아빠 스스로도 손찌검 후 다짐한 바가 있었을 것이다. 부부로서, 부모로서 한계를 경험하며 결심했던 그 다짐이 내게 적용된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세명의 여자 중 아빠를 가장 미워하는 사람이 되었다. 세명 중 한 대도 맞지 않은 내가 이래도 되는 걸까. 미워해도 내가 가장 덜 미워해야 하는 것 아닐까. 나는 왜 이다지도 그를 미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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