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내게 물었다. 너는 아빠를 왜 미워하느냐고. 미워하더라도 아빠에게 맞아서 상처까지 남은 자기가 더 미워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표면적으로는 그랬다. 나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은 내면적인 이유들을 언니에게 다 말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내게 늙고 쇠약해진 아빠에 대한 인정을 구했다.
그녀는 유일한 자매인데도 나를 잘 모른다. 많은 경우 내가 (MBTI의) T라서 그런 거라고 결론짓는다. 나 역시 그녀를 잘 모른다. 그녀가 F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그녀가 별로 내게 공감하는 것 같지는 않다. 우리는 많이 다르기 때문이다. 얼굴도, 키도, 성격도, 말투도. 같은 부모를 두었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별로 없다.
그래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은 아빠, 내가 한동안 눈길을 주지 않았던 아빠가 언니 눈에라도 담겨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에 대한 나의 감정에 언니가 공감할 수 없어서 다행이었다. 같은 부모의 자녀였지만 같은 마음을 갖진 못했다. 부모님에 대한 언니와 나의 생각은 일견 같으면서도 다르다. 같아서 다행인 것도, 달라서 다행인 것도 있었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그랬다. 양쪽 모두에게 외면받는 것보다는 나았을 것이다.
어떨 땐 엄마나 아빠에 대한 그녀의 연민이 거북스럽기도 했다. 예컨대 부모님께 짜증을 낼 때, 언니는 감정을 지나치게 쏟아놓으며 그들을 휘둘렀다. 언니에겐 독한 말들과 기운을 내뱉으며 모두를 꼼짝 못 하게 하는 힘이 있다. 동생인 나를 비롯해서 유약한 엄마와 늙어서 힘이 빠져버린 아빠는 학을 뗄 정도였지만, 그러고 나서 언니가 두 분께 갖는 연민의 감정은 더욱 깊어졌다. 일말의 죄책감이 연민으로 작용한 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부모님께 그 정도로 감정을 쏟아내지도 못했고, 쓸어 담지도 못했다. 이미 한바탕 휘저어진 폐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저 그것을 지켜보는 일. 내 마음까지 폐허가 되지 않도록 간신히 지켜내는 일이었다. 자기 마음 하나 지키지도 못하면서 폐허를 재건해 내려는 언니의 무리한 시도를 볼 때마다, 그리고 그것을 내게 강요할 때마다 나는 버거웠다. 어쩌면 욕심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기본적인 대화도 안되면서 남들과 같은 가족의 형태를 유지하려는 게 우습기도 했다. 그러나 그 자체가 소통의 시도였으리라.
나는 걱정을 끼치지 않는 자녀가 되는 게 차라리 효도라고 생각했다. 부모님께 영향받지 않고 내 삶을 잘 꾸려나가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의도적으로 부모님을 외면하기도 했다. 언니는 장녀로서 그 여백을 채우느라 애썼을 것이다. 보고 싶지 않은 꼴을 봐야 했을 것이고, 그것이 짜증으로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언니의 물음은 마치 내게 아빠를 미워할 자격이 있는지를 묻는 것 같았다. 꽃 피워보려는 의지가 좀 더 있다는 이유로 가장 많은 양분을 차지했던 내가, 막내라는 이유로 그에게서 한 대도 맞지 않고 자란 내가 그를 가장 미워할 자격이 있는지.
자격은 차치하고서라도 이유를 알고 싶었다. 언니의 말마따나 아빠도 결혼 전의 생활에 비해 아버지로 사는 동안 나름대로 노력했으며,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안다. 폭력은 지속되지 않았고, 우리가 태어나기 전 피우던 담배를 한 번에 끊었다고 한 걸 보니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에게는 분명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를 미워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하고 싶어서 글을 쓴다. 그를 미워해도 되는 합당한 이유들을 찾아내서 합리화하고 싶진 않다. 이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해 글을 쓰며 마음을 꺼내놓았을 때, 나는 무엇을 볼 수 있을까. 무엇을 알 수 있을까. 누구를 이해할 수 있을까. 적어도 미워하는 마음이 조금은 휘발되기를 바란다.
*사진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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