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콘텐츠 큐레이션 공간 [틈]에 내가 쓴 글이 언급되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브런치 팝업 스토어까지 다녀왔으니 브런치스토리에서 운영하는 [틈]이라는 공간을 알고는 있었다. 온라인 팝업 전시회라고 생각하고 쓱 둘러본 적은 있지만 찾아 읽지는 않았다. 입장했으나 머물진 않은 셈이다.직장생활을 하며 틈틈이 글 쓰느라, 그렇게 쓰고 발행한 글에 흔적을 남겨주신 작가님들의 글을 찾아서 읽느라 [틈]을 들여다볼 틈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사실 이건 가장 좋은 핑계고, 새로운 관점을 들여다볼 정신적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 게 맞겠다. 브런치에 양질의 글이 가득하다고 해도 내게 있어서 브런치는 읽는 공간보단 쓰는 공간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내가 쓰고 있는 글과 비슷한 주제의 글, 혹은 내가 쓴 글에 마음을 남겨준 작가들의 글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브런치에서 글로 만난 우리에겐 어떤 연결고리가 있다고 믿었고, 어느새 브런치는 그것을 공고히 하는 SNS으로서의 기능이 강화되고 있었다.
그러다 [틈]에서 나를 언급했다는 알림을 보고 슬며시 큐레이션 글을 들여다보았다. 알고 보니 10주간 큐레이션에 참여한 브런치 작가들은 브런치에서 글을 쓰며 출간까지 한 작가들이었다. 내가 읽어본 책을 집필한 작가님들도 계셨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고수리 작가님까지! 쟁쟁한 10명의 작가들이 한 주씩 돌아가면서 큐레이션을 하는데 그중 내 글이 언급된 week3, week4 큐레이션을 어떤 작가분이 담당했는지는 알 수 없다. 누구라도 그저 영광일 뿐이다.
기념으로 캡쳐해두었다!
[틈]에 언급되고 나서야 [틈]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건, 뭐랄까. 하나의 예시로 들자면 아주 자연스러우면서도 부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 나를, 혹은 나의 것을 들여다봐주는 존재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있을 것이다. 이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작은 연결고리로 시작되었다가 마음을 나누다 보면 언젠가 나의 일부와 같게 여겨질 수도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으로는, 나와 직접적으로 관계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얼마나 무심한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마음을 열고 다른 이들의 글을 들여다보기란 꽤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새삼 느꼈다. 큐레이션의 흐름을 따라가는 해도, 그것에서 소개하고 있는 콘텐츠를 일일이 클릭하기는 어쩐지 내키지 않았다. 읽을 게 얼마나 많은데. 회사에서도 수많은 자료 위에 박혀있는 텍스트를 하루종일 훑고, 의미를 해석하고, 표현한다. 브런치에서도 어느새 나의 의미 있는 한 부분이 된 '답방' 과정에서 읽어내고 싶은 글이 한가득이다.
이런 측면에서 [틈]의 큐레이션은 상당히 열린 마음과 사고를 요구한다. 글 속의 글이라니, 들여다보는 것 치고는 시간도 상당히 소요되는 여정이지만 분명 의미가 있었다.브런치에서 글을 쓰다가 출간까지 한 작가들이 제공하는 새로운 시선, 그 시선들로 큐레이션 한 글은 모두 브런치에서 발행된 글이라는 것도 어쩐지 새로웠다. 브런치에서 시작해 어쩌면 조금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 작가들이 다시 이 물에 돌아와 노니는 기분. 노닐다 만난 나의 글을 수면 위로 길어내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특정 주제의 맥락에 맞는 콘텐츠 위주로큐레이션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소개했다는 점에서 [틈]과 나는 '글로 만난 사이'까진 아니지만, '글로 통한 사이'라고는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사람들이 무엇을 어디까지 글로 써내는지 그저 궁금한 독자들에게, 혹은 아직 무엇을 써야 할지 몰라서 망설이고 있는 예비 작가들에게우리는 하나의 호흡을 더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그저 글자와 문장들의 틈 사이로 들랑날랑할 수 있는한 줌의 바람이라도,아니면 바람 타고 날아가 누군가의 마음에 심기운 하나의씨앗이라도될 수 있었을까?
글쎄다. 열린 문틈 사이로 아무리 무엇이 비친대도, 열어보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아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모른다. 바람에 흩날리는 수많은 민들레 홀씨들도 틈이 없다면 꽃 피우지 못한다. 그러니 어쩌면 틈은 쓰는 자가 만드는 게 아니라, 읽는 자가 내어주는 것일지 모른다. 내어준 시간과 눈길과 마음에 비로소 문장이 자리 잡는다. 감동이든 교훈이든 읽는 자가 내어준 마음의 틈에서만 피어날 수 있다.
글을 읽기 위해선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글, 나와 다른 삶을 써 내려간 글을 읽어낼 수 있는 넉넉한 마음이 필요하다. 눈과 귀를 재빠르게 훑고 가는 콘텐츠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맥락을 이해하고 의도를 파악하고 문장을 음미하며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아름답다. 그것은 마침내 그의 인생과 나의 존재를 조용히 받아들이는 존중의 손짓이자 발짓이다. 틈을 내어주고 또한 틈으로 들어서는.
결국브런치의 [틈]은 읽는 자들의 몫이다. 브런치는 작가를 만들어내는 플랫폼이라 알려졌지만 독자가없이는 유지될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쓰는 기쁨을 경험하길 바라 마지않으나 읽고 사색하는 시간이 없이는 넘친 것이 없어 쓸 수 없을지 모른다. 김종원 작가님이 말한 것과 같이 진정성 있는 글쓰기가 우리 안에서 넘친 것을 쓰는 거라면.
출판계가 불황인 이유도 읽는 사람보다 쓰는 사람이 더 많아서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브런치 [틈]이 다양한 큐레이션으로 읽는 사람들을 널리 만족시키는 콘텐츠 저장소가 되길 응원한다. 그리고 작가를 양성해 내는 것처럼 훌륭한 독자를 배출해 내는 플랫폼이 되길 바란다. 제목을<브런치 작가 10인의 선택>이라 썼지만,큐레이션에 참여한 작가들도 독자의 시선을 고려한 독자로서 참여했으니 결국 <브런치 독자10인의 선택>인 셈이다. 나는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전에타인을 넉넉히 읽어낼 마음을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