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책은 뜬구름을 잡는 것 같았다

정영욱,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될 것이다>

by 조이


언젠가 퇴근길 지하철에서 기관사님의 감성 가득한 멘트를 들은 적이 있다. 연식이 오래되어서 냄새나고, 잔고장이 많아 연착도 잦지만 사람들로 가득 찰 수밖에 없는 1호선 지하철. 몸을 애써 구겨 넣은 채 지친 마음으로 맞이했던, 반짝이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


분명 지하철이지만 옛날에 지어진 선로를 따라 1호선 지하철은 한강을 가로지른다. 바깥에는 작열하던 태양빛이 사그라든 대신 하늘과 한강을 벌겋게 들이고 있었다. 지하철 안에 퍼진 멘트 덕분에 그 풍경이 황홀했는지, 그 풍경 덕분에 위로의 말에 물들었는지 모를 일이다. 그저 마음속에 따뜻한 장면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기관사의 감성 멘트를 중단해 달라는 민원이 있었다고 한다. 고단한 퇴근길, 아무 생각 없이 편히 쉬며 가고 싶은데 괜한 감성을 자극하는 소리가 불편했을까. 아니면 원체 오글거림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 MBTI의 T(라고 읽고 t라고 쓴다) 성향인 나로서는 그 마음 이해도 된다.


<잘했고 잘하고 있고 잘될 것이다>


이 책을 처음 접한 순간 그때가 생각났다. 살짝 오그라든 마음을 다시 펴보고 마침내 책장까지 펼칠 수 있었던 건, 그때 우리를 위로하고 싶었던 기관사님의 마음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기관사님의 말에 조금 더 반짝였던 그날의 한강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모두를 향한 막연한 응원이 별로 달갑진 않았다. 역시나 책에는 괜찮다는 말도 여러 번 쓰여 있었다. 대체 뭐가 괜찮다는 걸까. 심드렁했다. 이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왜 이런 말을 건네는 걸까. 그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불쑥 건네받았던 기관사님의 멘트 속 그것과도 같을까.


나도 가끔 얼굴도 모르는 불특정 다수에게 위로를 건네고 싶을 때가 있다. 내 곁에 머무는 한 사람을 사랑하는 건 어려워하면서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결국 나를 사랑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니까 나를 위로하고, 나와 같은 이들을 위로하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다.


그러나 뜬구름 잡는 식의 글이 아닐까, 하며 나는 섣불리 위로하지 못했다. 괜찮다고 하면 뭐가 괜찮다는 거야, 내 안에서 들리는 냉소적인 목소리가 바깥에서도 들려올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좀 더 적나라한 삶을 쓰기 시작했다. 연필을 뾰족하게 하듯 뭉뚱그려진 표현을 벗겨내며 글을 썼지만, 그것은 또 다른 누군가를 불편하게 했다.



뜬구름 잡는 것 같았던 그의 책은, 읽다 보니 구름이 뜬 하늘과 바다와도 같았다. 그는 애써 구름을 잡으려 하지 않았다. 그가 책에 쓴 것처럼 실질적으로 변하는 것은 전혀 없는데도, 힘든 일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는데도 바다에 가고 하늘을 바라보면 그럭저럭 마음이 괜찮아진다. 또 그 괜찮음으로 다시 나아갈 기운을 얻는다.(158p, <바다 가고 싶다>)


그의 책은 바다와 같이 너른 마음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바다와 같이 너른 문장들을 선사하는 책이었다. 느슨한 문장들 속에서 잠시 쉬어가라는 것이 그가 건네는 사랑의 방식이었다. 잡을 수 없는 것을 잡으려 하지 말자고, 잡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우리에겐 분명 필요하다. 이런 책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책이 아니더라도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다는 반증일 것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든 안 읽든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왠지 그도 이렇게 생각할 것 같다.


잘하고 있습니다. 잘 살고 있고요. 스스로에게 말해 주지 못했지만 말이에요. 나 자신에게 말해 주지 못하는 이유는 '잘'의 기준이 완벽함이어서 그렇습니다. 간단한 예로 우린 맛있는 것을 먹고 "잘 먹었습니다." 이야기하지만 그것이 그 어떤 식사보다 완벽한 식사였음을 뜻하진 않습니다.
-34p, <분명 잘하고 있습니다>


그는 '잘'이 가진 의미는 완벽함보다는 만족감에 가깝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얼마나 많은 순간 완벽할 수도 없으면서 완벽을 추구했던가. 그래서 누가 내게 '잘하고 있다'라고 위로를 건네면 '아니'라고 하기 바빴다. 이게 무어 잘하는 거람. 저 사람은 뭘 모르고 하는 말이겠지. 마음속에서 키질을 하며 쭉정이 같은 가벼운 위로라고 골라내버리기 일쑤였다. 나름의 진심을 버리려 한건 아니었지만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것들은 결국 내게서 날아가버리고 사라져 버렸다.


내가 유일하게 완벽함보다 만족감에 가깝다고 받아들였던 건 글쓰기였다. 완벽하게 쓰려했다면 글 한 편도 발행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 순간엔 내가 쓸 수 있는 최선의 글이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발행한 뒤에도 왕왕 고쳐쓸 적마다 나는 더 나은 표현을 발견한 것에 그저 기뻤다. 고쳐 쓰지 못한 글도 '잘' 읽었다고 말해주는 사람들 덕분에 나는 지금껏 글을 '잘' 쓰고 있다.


자연 속에서 커피 한잔 하며 읽었던 시간


이 책을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언어와 관계에 대한 통찰이었다. 그의 말마따나 봄과 가을의 기온은 절대적 수치만으로 보면 비슷한데도, 봄에는 '따뜻해졌다'라고 하고 가을에는 '쌀쌀해졌다'라고 한다. 이처럼 그는 말과 관계에도 분명한 온도가 존재하며, 절대적 수치보다 상대적인 감각이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고 했다.


그 말은 곧, 상대가 나에게 감동을 한다고 해서, 내가 대단히 따뜻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단 뜻이겠죠. 내가 큰 위로를 건네준 사람이 아닐 수 있겠습니다. 받아들이는 이가 아주 추운 계절에 머물렀을 뿐이니까요. 또, 내 생각엔 별일 아닌 걸로 서운해한다 해서 쪼잔한 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상대는 제법 포근한 계절을 보내왔을 수도 있는 거니까요.

서로의 계절에 따라 지금의 말과 관계는 포근해지거나, 서운해지거나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나도 모르게 미움받는 이유일 수도 있겠습니다. 상대의 이전 상태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고, 나의 이전 상태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겠지요. 272p


나는 대단히 따뜻한 사람은 아니지만, 내 삶에는 그저 따뜻한 마음으로 써낸 문장들이 있다. 그 문장에 위로를 받는 독자가 있다면 그는 내가 지나왔던, 혹은 지나가고 있는 시절만큼 추운 계절을 살아왔거나 살아가고 있으리라. 어쩌면 위로하거나 위로받는 자로 나뉠 수 없는 우리는, 그저 온도를 공유하는 사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향한 노력이 서로의 계절에 제법 어울려서, 서로에게 좋은 의도로 다가오는 것' 273p


나의 브런치 이웃들에게 감사함을 느꼈던 대목이다. 애써 써낸 글을 도마 위에서 썰어내기보단 그 속에서 서로를 읽어주려는 노력. 그 노력이 서로의 계절에 제법 어울려서 좋은 의도로 다가왔으니 말이다. 또한 나도 모르게 사랑받은 것처럼 나도 모르게 미움받을 수 있겠다고, 그럴 용기가 생기는 건 사랑이 채워졌단 뜻이겠다고 생각하며 나는 그의 문장을 즐거이 받아들였다.



그의 책은 읽기 쉽다기보단 먹기 쉬운 책이다. 내가 주기적으로 <브런치 타임>을 외치며 이곳 브런치에서 먹는 따뜻한 진심처럼, 그의 책에는 마음이 담겨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이 괜찮았으면 하는, 잘 되었으면 하는 진심이.


당신이 그의 진심을 베어 먹어보길 바란다. 나의 세세한 사정만큼이나 그의 삶도 복잡다단하겠지만, 그런 것들을 일일이 다 쓰지 않아도 연결되어 있다 느끼는 건 우린 같은 풍경 속에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멀리서 봐야 눈에 들어오는 풍경도 있다. 그 풍경을 보고 싶은 사람은 바다에 가거나 그의 책을 읽어보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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