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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23. 2024

쓰고 읽고 먹는 것


배고팠나 보다. 드디어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공간이 생기자, 허겁지겁 먹듯 글을 썼다. 아니, 토해내듯 글을 쓰면서도 허기졌던 마음에 살이 붙는 기분이었다. 먹는 것인지 쓰는 것인지 뱉어내는 것인지 모를 신기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전시된 글들을 읽었다. 브런치에는 상처받은 영혼의 글들이 있었다. 담담하게 쓴 글도 있었고, 여전히 울면서 쓴 것 같은 글도 있었다. 나는 그 글들에 감히 '좋아요'와 댓글을 달 수가 없었다. 먹먹했다. 글을 쓴다는 건 참 용기가 필요한 일이구나. 이것을 꺼내놓기까지, 그리고 상처받은 마음에 활자를 입히는 동안 오래도 매만졌을 그 용기에 조심스레 '좋아요'를 눌렀다.


블로그와 인스타에서는 텍스트를 채 끝까지 읽지도 않고 '좋아요'를 누르고 다녔다. 관심사 밖의 포스팅이었지만 상대방의 게시물 파워와 계정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암묵적인 '품앗이'였다. 나의 포스팅을 끝까지 읽지 않은 것 같은 댓글들도 보였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나의 계정을 방문하여 조회수와 인게이지먼트 지수를 높여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할 일이었다. 온라인에서 우리가 쓴 글들은 그런 식으로 확산되고 소비되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브런치의 글들은 달랐다. 글에 담긴 것은 생생한 사람과 사랑과 삶이었다. 상처였고 영혼이었다. 그런 글들은 읽는 데 시간이 걸렸다. 끝까지 읽지 않고 좋아요를 누르기란 어쩐지 미안했다. 상대방의 말을 다 듣지도 않고 대답한 기분이었다. 읽기만 하는 것도 어쩐지 송구했다. 상대방은 내게 이다지도 쓸쓸한 마음을 들려주었는데, 나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기분이었다.


'응답하라, 조이.' 


누군가 내게 무선을 보내오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연재하는 책을 쓰기로 했다. 브런치에서는 글을 먼저 쓰고 그것을 묶어내는 형태로 책을 만드는 것을 권하고 있었지만, 먼저 책을 만들기로 했다. 나는 이런 이야기를 해볼게. 하는 마음으로 목차를 정하고 책을 만들었다. 이것도 조금은 쓸쓸한 이야기야. 우리 수요일에 만나. 하고. 그러다가 목요일에도 만나. 금요일에도 만나자. 아니, 매일 볼까 우리? 나는 그렇게 브런치와 서서히 친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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