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쓴 글이 <요즘 뜨는 브런치북>으로 플랫폼에 노출되었다. 구독자가 조금 늘었다. '구독' 행위를 할 정도로 누군가의 마음을 움직였다는 사실이 기쁘고 황송하다.
나를 구독해 주는 사람들이 내가 구독하는 작가의 수와 비등해지고 있다. 이 숫자들의 의미와 간격에 대해 고민이 되기 시작했다. 나를 구독해 주는 사람을 나도 구독해야 할까?
브런치를 시작할 때 다짐했던 것이 있다. 블로그와 인스타계정을 키우며 알고리즘에 지쳐있던 터라, 브런치에서만큼은 알고리즘 위주의 행위를 하지 않기로 했다. 알고리즘을 파악하는 이유는 이웃 수와 팔로워 수의 증가와 무관하지 않다. 계정이 성장하는 데 유의미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알고리즘 위주의 행위를 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은, 구독자 늘리기에 급급해 무의미한 클릭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뜻이다. 글을 쓰는 행위에도, 글을 읽는 행위에도.
그러나 브런치에 처음 글을 올렸을 때 나의 글을 읽어주고 '라이킷' 반응을 남겨주신 몇몇 작가님들을 바로 '구독'했다. 지금 내가 구독하는 작가의 90%는그날 형성되었다. 브런치라는 플랫폼에서 처음 만난 분들이라는 의미가 있었다.
브런치에 글을 쓰고, 읽는 시간이 늘어날수록플랫폼 내 홈 화면에 내가 구독하는 작가분들이 자주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글을 읽어 내려가다가도, 마지막엔 조용히 문을 닫고 나오듯 말없이 퇴장하게 되었다. 그의 글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기보다는 나와의 연결점을 찾을 수 없었을 뿐이다.
어제는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머리가 희끗한 신사분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실례합니다만."
"네?"
"여기 이 책을 제가 썼거든요. 한번 읽어보시겠어요?"
내가 앉아있던 자리가 신착도서가 꽂혀 있던 서가 근처였는데, 본인께서 출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책을 권하셨던 것이다. 책을 권하는 태도와 눈빛은 정중했고 난 기분이 좋아졌다.
"아, OOO 씨?"
꽂혀있던 책이 여러 권이라 혹시 잘못짚을까 싶어서 확인한다는 게, 제목이 아닌 작가 이름으로 되물었다. 나보다 훨씬 어른이신 그분의 성함을 OOO님도 아닌 OOO 씨라고 하다니. 나의 말실수에도 그분은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 축하드려요!"
읽어보겠다는 약속보다는 우선 책 출간에 대한 축하인사를 먼저 건넸다. 책을 쓴다는 건, 게다가 출간까지 한다는 건 실로 엄청난 일이니까. 내가 정말 그 책을 읽을지(읽고 싶어 질지) 확신이 서지 않아서 약속은 하지 않았지만, 그분이 자리를 뜨고 난 뒤 조심스레 책을 집어 들었다. 무려 상, 중, 하 세 권으로 출판된 장편소설이었다. 내가 집어든 책은 상 권이었는데도 두께가 상당했다. 소설은 흡인력이 있으니까 이야기 속에 빠져든다면 금세 읽기도 할 것이다. 숨을 크게 들이쉬고 몇 장 읽어보았다. 애석하게도 조심스레 펼쳐든 책을 조심스레 서가에 꽂아놓고 나왔다. 나는 원래 소설을 잘 읽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것이다.
책 읽는 사람은 책 읽는 사람을 괜스레 좋아하듯, 글 쓰는 사람은 글 쓰는 사람이 공연히 반갑다. 있는 모습 그대로의 자신과 그 감정을 마주하느라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을 보냈을지, 적확한 단어와 표현을 골라내느라 얼마나 많은 고민을 했을지, 얼마나 반복된 퇴고의 시간을 거쳤을지 그 자체로공감대가 형성된다. 그런 관점으로 본다면 모든 글에 '라이킷'을 남기고 싶다.
그러나 나의 흔적을 남긴다는 점에 있어서 나는 좀 더 신중해졌다. 꼭 같은 경험을 하지 않았더라도, 반드시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더라도 하나의 문장 안에서 글쓴이를 만날 수 있는 신기한 경험을 하는 순간에 나의 흔적을 남기고 싶었다. 그가 느낀 어떤 감정과 표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글에 오롯이 담겨있을 때, 그 글을 통해 내게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올 때.
혼자서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브런치와 친구가 되기로 했을 때, 블로그나 인스타와는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모든 일에 진심을 담는 편이지만 조금은 더 진지하게. 내가 꺼내놓은 이야기만큼이나 조금은 더 묵직하게.
묵직한 돌을 옮겨놓는 일에는 약간의 각오와 시간이 필요하듯, '라이킷'과 '구독'으로 내 마음을 전하고 흔적을 남기는 일에는 시간차가 발생할 것이다. 그 사이에 누군가 내게 남겨준 마음은 식어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괜찮다. 내가 붙잡고 싶은 것은 일정한 구독자 수가 아니라 내 글을 읽게 된 사람들의 마음이니까. 지나치는 찰나의 마음에도 내 글이 어떤 흔적을 남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의 문장에 대한 반응이 아닌, '글 쓰는 사람의 글'에 대해서 응원을 베풀어준 따뜻한 마음들도 부디 괜찮기를 바란다. 따뜻한 그 온도에 내가 미처 제때 반응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이 공간에서 글이라는 브런치는 식어도 맛있을 것이다. 내가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먹게 될 것이다. 치워버리지만 않는다면,거기 계속 있어준다면, 글을 계속 쓰고 있다면, 우리는 다시 만날 것이기에.식어도 괜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