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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30. 2024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해


싸이월드,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에도 내 이야기를 종종 써왔다. 그런데 브런치에서 쓰는 내 이야기는 훨씬 더 깊고 구체적이다. 무슨 차이일까 생각해 보니, 판부터가 다르다. 브런치에서는 단편적인 글들도 하나의 책으로 구성할 수 있다. 내 이야기를 책으로 쓰는 것만큼 가슴 설레는 일이 또 있을까?


그러나 무엇을 쓸 것인가. 인생을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는 본인의 스토리를 책으로 내고 싶어 한다는 점이었다. 회고록, 자서전 그런 것은 인생에서 어떤 획을 그은 사람들이나 쓰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게도 책을 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비록 서점에 깔리는 종이책이 아니더라도, 아무도 봐주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이 책은 세상에 내놓을 가치가 있었다. 이 책을 간절히 원하는 독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최초의 독자는 나였다.


나는 나를 위해 이야기를 써 내려갔다. 연재 중인 책의 주제와 맞지 않는 이야기는 매거진으로 발행했다. 대부분 나의 구겨진 과거와, 뭉뚱그린 현재에 대한 이야기였다. 오랜 시간, 삼키지도 뱉어내지도 못하고 목구멍에 걸려있는 이야기였다. 구겨서 던져버린 과거를 천천히 펴내며 글을 썼다. 과거로부터 점프하듯 도달한 현재의 시간에서 다시 한 발자국씩 돌아갔다. 그것은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이었다.


글을 쓰는 동안에도, 글을 발행하고 나서도 나는 나의 글을 몇 번이고 읽고 또 읽었다. 처음에는 문장이나 이야기의 흐름 등에 대한 퇴고를 위해서였다. 두 번째로는 글로써 나를 포장한 부분은 없는지 검열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글에서만큼은 진실하고 싶었다. 나의 글에는 한 톨의 거짓도 없길 바랐다. 마침내 수정할 것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적어도 지금의 내가 표현할 수 있는 최대의 진실과 예의로 써낸 나의 이야기였다. 나의 이야기를 쓰는 동시에 나를 읽었다. 그러면서 나는 나를 이해하고 있었다. 나를 읽으며 소화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제적당할 위기에 처했던 대학 시절, 처음으로 심리상담이라는 것을 신청했다. 상담 선생님께서 내게 동의를 구하고 상담내용을 녹음하셨다. 그리고 내게 그것을 보내주셨다. 나의 목소리는 어쩐지 낯설고 어색했지만, 그래서였는지 들을만했다. 나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듯이 그것을 듣고 또 들었다. 이후에는 상담에 가지 않았다. 학교도 알바도 다시 나갔고, 이듬해 나는 무사히 졸업했다. 내가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던 그때가, 내가 나를 받아들여주었던 몇 안 되는 순간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이제 나는 그때의 심정으로 글을 쓰고 읽는다. 나의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쓰는 동안 구질구질한 시절을 지나온 나에게 심심한 위로를 건넨다. 눈부시게 찬란한 이십 대를 보내지 못했고, 돌아가고 싶은 과거의 순간은 하나도 없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과거를 들춰보는 한 제자리걸음은 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브런치를 먹는 동안 탈이 나지 않도록 활자로 잘게 잘게 썰어내고 잘근잘근 씹어 삼킬 것이다. 브런치는 오늘도 내게 말없이 소화제를 건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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