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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이 May 31. 2024

미국에서


파리에서 떠나던 날엔 비가 내렸다. 나는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있었고 짐도 있어서 이동이 편치 않았다. 그래도 언제 다시 올지 모를 곳, 파리를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싶어서 광장 구석에 앉았다. 가벼운 차림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나는 이곳을 떠나지만 저들은 여기 있을 것이다. 나는 이방인이다.


내가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 잠시라도 머물렀다는 사실에 감사하기도 했지만 일주일도 안 되는 시간은 너무 짧게 느껴졌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파리가 아니라도 좋으니 외국에서

 달이라도 살아보면 좋겠다.'


그건 기도가 아니었다. 속으로만 생각한 바람이었다. 차마 하나님, 이라고 부르지도 않았다. 원하는 게 있으면 그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면 될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겐 어떤 의지도 없었다. 그러니 기도할 자격도 없다고 생각했다.


외국에서 살아보는 것, 찾아보면 어떤 식으로든 방법이야 있었다. 내가 포기했던 교환학생을 비롯해 워킹홀리데이나 오페어라는 제도로 외국에서 지내다 온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좌절감과 열등감이 생겼다. 그런 기회는 내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내게 무모함이자, 주제와 분수를 모르는 행동같이 느껴졌다.


그 시절의 나는 쇠사슬에 묶였던 코끼리와도 같았다. 성인이 되고 덩치도 커졌는데, 마음만 먹으면 자유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그 자유는 나는 것도 뛰는 것도 아닌, 그저 여기서 저기만큼이라도 갈 수 있는 이었는데, 나는 여전히 힘이 없고 선택의 권한이 없는 어린아이처럼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의 속마음을 들으신 듯했다. 파리를 다녀오고 나서 육 개월쯤 되었을 때, 알고 지내던 집사님으로부터 미국으로 건너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분은 한국에서 사업을 하다가 공부를 하기 위해 미국으로 가신 상태였다. 내가 휴학을 결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를 초대해 주셨다. 내가 유일하게 마음을 나누던 어른, 집사님의 권면으로 인해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미국에서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는 기간은 3개월이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바랐던 한 달의 세 배가 되는 기간 동안 미국에서 '살게' 되었다. 집사님 가족이 살고 계셨던 곳은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의 바인이라는 도시였다. 그곳은 미국 내에서도 부촌이라서 안전하고 깔끔했다. 그곳에서 나는 산책을 했고, 바인 칼리지에서 청강을 했다. 주말에는 공연도 보고 외식도 했다.


미국은 땅이 워낙 넓어서 미국 사람들도 서부와 동부를 오가며 여행하는 게 쉽지 않다는데, 나는 그 어려운 것을 했다. 로스앤젤레스, 샌프란시스코, 그랜드캐니언, 요세미티, 뉴욕, 워싱턴 D.C, 필라델피아 외에도 많은 곳을 여행했다. 그 과정에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이 있었다.


"너는 뭐 먹고 싶니?"

"너는 뭐 하고 싶니?"

"너는 어디 가고 싶니?"


가장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는 내게 저런 질문을 한 적이 별로 없었다. 나는 나의 부모님으로부터도 저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매우 드물었다. 우리 가족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모든 선택의 기준은 돈이었다. 물어보지도 않았지만 먼저 이야기해도 돈이 어디 있어서 그걸 하니, 돈 없어서 못한다. 그런 말이 늘 따라왔다. 그 말이 듣기 싫어서 돈을 벌어야겠다,라는 투지가 아니라 질문 자체를 하지 않는 어리석음을 장착하고 살았다.


그런데 나는 미국에서 생활하는 3개월 동안, 집사님 가족으로부터 저 질문을 가장 많이 들었다. 그리고 집사님은 늘 주저하는 나를 위해 A와 B를 둘 다 주시거나, 풍성하게 주시거나, 먼저 좋은 것들을 제시해 주셨다. 그리고 항상 나의 소감을 물으셨다.


그분은 내게 관찰의 힘을 알려주셨다. 그것은 나를 살피고 주변을 살피는 힘이었다. 나는 미국에서 머무는 동안 많은 곳을 다니고 경험했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그분의 집에서 가정의 문화를 배운 것이다. 그것은 내가 가정을 이루는 것에 대한 소망의 구체적 배경이 되어주었다.


내가 미국에 머물렀던 삼 개월이라는 시간이 아직도 꿈만 같다. 내게 이런 경험이 있다는 것이 아직도 놀랍다. 미국에서 살기엔 짧은 시간, 이미 살고 있던 가정에 머무르며 안정된 생활을 하게 하셨다. 그곳에서 가정을 보게 하셨고, 나를 보게 하셨다.


나의 작은 신음과 한숨에도 응답하셨던 하나님이, 나의 작은 바람에도 응답해 주셨다. 하나님, 하고 부른 기도가 아니었지만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던 내 얼굴을 보셨던 걸까. 차마 말은 못 하고 엄마 얼굴을 바라보는 아이와 같은 얼굴을. 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뵙진 못했지만 내 모든 시선에는 주님이 계셨다.


"조이야, 너도 이곳에 있을 수 있단다."


하나님은 나를 다시 한번 옮겨주셨다. 프랑스 파리에서 내면으로부터 올라왔던 따뜻한 음성이, 본인의 음성이 맞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처럼.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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